[초이스]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홍원찬, 2020

by.김보년(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2020-10-08조회 3,216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2>가 궁금하다

*스포일러가 많습니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홍원찬, 2020)를 보았다. 타격감을 강조한 액션 연출이나 황정민, 이정재, 박정민 배우의 강렬한 연기도 좋았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건 사건의 무대가 되는 국가마다 폭력의 전개 양상, 또는 강도가 크게 다르다는 점이었다.

일본에서 야쿠자와 싸우는 인남(황정민)은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아지트에 잠입하고 총은 최대한 사용하지 않으려 한다. 특히 최종 목표를 노릴 때는 줄로 목을 조르는 방법을 택했으며, ‘일’을 끝낸 뒤에도 위장한 채 얌전히 현장을 벗어난다. 레이(이정재)도 마찬가지다. 레이는 언뜻 앞뒤 가리지 않고 일단 저지르고 보는 캐릭터 같지만 시마다(박명훈)를 죽일 때는 다른 이들의 손까지 빌려가며 가능한 신중하게 남들의 눈을 피하려 한다.

한국에서는 폭력의 세기가 좀 더 약해진다. 인남의 동료들은 소음기가 달린 총으로 어두운 밤에 비밀스럽게 사람을 죽이며, 레이의 살인 과정은 아예 생략된다(아마 몰래 잠입해 칼로 죽인 것으로 보인다). 플래시백으로 등장하는 인남의 총격신 역시 엘레베이터 안의 한정된 공간에서만 벌어진다. 이 폭력들은 작은 규모로 빠르게 일어나며 폭력 후의 수습에 더 많이 신경쓰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남들의 시선을 끌지 않는 걸 목표로 한다.
 
반면 태국에서는 상황이 갑자기 크게 변화한다. 레이는 일본이나 한국에서와는 달리, 마치 자신의 정체를 숨길 생각이 없는 사람처럼 큰 칼과 중화기로 무장한 채 도심을 휘젓고 다니고 지금까지 비밀스럽게 행동했던 인남 역시 레이에 맞서 폭력의 강도를 높인다. 그 결과 관객이 보게 되는 건 거리를 가득 채우는 총성, 화염이 치솟는 폭발로 쑥대밭이 된 골목 그리고 널부러진 시체들이다. 즉, 태국에서 벌어지는 폭력들은 일본과 한국에서와는 완전히 다른 규모와 성격으로 그려진다.
 

이때 한 가지 더 눈여겨볼 건 주인공들이 국경을 넘는 순간, 다시 말해 한 국가에서 다른 국가로 이동하는 장면이 전혀 그려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주인공들은 일본에서 한국, 한국에서 태국, 태국에서 파나마로 옮겨다니지만 감독은 이들이 비행기나 배를 타는 이동의 순간을 단 한 숏도 그리지 않는다. 숏이 바뀌면 인물은 이미 그 국가에 도착해있으며, 국가 간 이동은 마치 순간 이동처럼 간단하고 빠르게 이루어진다.
 
이처럼 한 국가에서 다른 국가로 이동하는 과정을 과감히 생략한 연출로 인해 주인공이 도착한 국가에 따라 폭력의 세기가 달라지는 특징이 더욱 도드라진다. 다시 말해 레이와 인남은 어디서든 자신의 일관적인 행동 양식을 고수하는 캐릭터가 아니라 장소에 따라 행동 양식을 즉각 바꾸는 예측 불가능한 캐릭터로 그려진다.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으려 폭력의 강도를 신중하게 조절하던 일본과 한국에서의 레이가 태국에 도착하자마자 얼굴에 피를 잔뜩 묻힌 채 거리를 돌아다니는 장면을 생각해보자. 적어도 폭력에 관한 행동 양식만 놓고 보면 일본-한국의 레이와 태국의 레이가 같은 캐릭터라고 보기 어렵다. 인남 역시 딸의 구출을 알리바이 삼아 일본-한국에서 보여주지 않았던 과감하고 거친 행동을 선보인다. 특히 레이가 범죄 조직은 물론 국가 공권력인 경찰 특공대와 아무 예고 없이 전면전을 시작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약간 당혹스러운 느낌이 들 정도이다.

그러니 태국에서 펼쳐지는 액션 장면들을 캐릭터 구축의 개연성 관점에서 비판할 수도 있다. 단지 다른 국가에 갔다는 것만으로 다른 캐릭터처럼 행동하는 모습은 분명 납득하기 힘든 면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를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의 단점으로 지적하고 싶지 않다. 오히려 이런 불균질한 측면이 쉽게 예측하기 힘든 긴장을 서사에 부여하고 예고 없이 터져 나오는 폭력이 어떤 쾌감을 만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특히 태국 범죄 조직의 두목 앞에서도 일단 폭력부터 먼저 행사하고 보는 레이의 모습에서는 일본-한국에서 응축한 긴장을 일순간 폭발시키는 것 같은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했다.
 

물론 지금도 예외적 폭력을 위한 간편한 무대를 마련하기 위해 태국이란 이국적 공간을 손쉬운 도구로 사용했다는 의심이 들긴 하지만, 세 개의 국가를 무대로 펼쳐낸 서로 다른 성격의 폭력 묘사, 또한 이 과정에서 자신의 행동 규범을 그때그때 손쉽게 바꾸는 인물을 보는 건 정말 즐거웠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의 독특한 개성 역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맥락에서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의 속편이 보고 싶어졌다. 만약 다음 이야기의 중심이 태국이나 다른 외국이 아닌 한국이라면 감독은 과연 어떤 폭력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장르는 언뜻 리얼리티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상상을 펼칠 수 있게 해주는 좋은 장치 같지만, 결국 모든 영화는 현실의 조건을 (무)의식적으로 반영할 수밖에 없다. 적어도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의 한국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액션에 어떤 제약을 부여하는 공간이었고 이 때문에 본격적인 활극의 무대가 되지 못했지만, 만약 한국이 이야기의 중심이 됐을 때 그 영화의 주인공들이 어떤 성격의 폭력을 보여줄 수 있을지 보고 싶다. 즉, ‘여기가 아닌 다른 곳’이 아닌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 땅에서도 감독은 예외적인 강렬한 폭력의 순간을 그릴 수 있을까? 비록 영화는 파나마의 이국적인 풍경으로 끝났지만 한국에서 펼쳐지는 또 다른 인물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더욱 강렬한 흥미로운 장면을 선사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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