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강철비2: 정상회담 양우석, 2020

by.주성철(영화평론가) 2020-09-08조회 2,928
강철비2 스틸
천만 관객을 돌파한 <변호인>(2013)을 시작으로 <강철비>(2017)와 <강철비2; 정상회담>(이하 <강철비2>, 2020)로 이어지는 양우석 감독의 작품들을 접하면서 느끼는 점은 이른바 ‘대중영화’라는 이름의 덕목이다. 그는 흔치 않게 선명한 장르에 기대기보다 무엇보다 우리의 ‘현실’, 그중에서도 ‘정치’라는 영역으로부터 소재를 끌어올리는데, 세 작품 모두 직접 시나리오를 쓰기도 했다. 물론 우민호 감독의 <내부자들>(2015) 이후 한재림 감독의 <더 킹>(2017)을 거쳐 ‘검사’가 주된 캐릭터로 등장하는, 굳이 표현을 갖다 붙이자면 ‘정치 스릴러’ 영화들이 한때 적잖이 붐을 이루긴 했으나, 그의 영화들은 이들과도 궤를 달리 한다. 특히 <강철비> 시리즈는 <공동경비구역 JSA>(2000) 이후 <웰컴 투 동막골> <의형제> <간첩> <용의자> <베를린> <공조> 등으로 역시 붐을 이뤘던 ‘인간적인 얼굴을 한 북한 사람’이 등장하는 남북 소재 영화들의 연장선에 있는 것처럼 보이나, 그런 캐릭터보다 남북 관계라는 역학 관계에 더 치중한다는 점에서 마찬가지로 궤를 달리 한다. 그런 점에서 악착같이 자기만의 길을 걸으려 노력하며 동시대 대중영화가 쉽게 품기 힘든 스토리텔링으로 향한다는 뚝심의 감독이라고나 할까. 

<강철비>가 쿠데타 발생으로 치명상을 입은 북한 1호(김정은으로 예상되지만 실명을 쓰지는 않는다)가 남한으로 오게 된다는 가정에서 출발했다면, <강철비2>는 2021년을 배경으로 남북미 세 지도자를 한 곳에 모은다. 북미 평화협정 체결을 위해 대한민국 대통령(정우성), 북한의 최고지도자인 위원장(유연석)과 미국 대통령(앵거스 맥페이든)간의 남북미 정상회담이 북한 원산에서 열린다. 북미 사이에서 좀처럼 이견이 좁혀지지 않는 가운데, 핵무기 포기와 평화체제 수립에 반발하는 친중 성향의 북한 호위총국장(곽도원)의 쿠데타가 발생하고, 납치된 세 정상은 북한 핵잠수함에 인질로 갇힌다. 그렇게 좁은 함장실 안에서 예기치 못한 진정한 정상회담이 벌어지게 된다. 
 

<강철비>의 전략과 마찬가지로 <강철비2>도 가정법의 상상력으로 밀어붙인다. 흥미로운 지점은 영화 속 사건의 발생 가능성이라는 측면에서 <강철비>가 보다 현실적이지만 낯설었던 반면, <강철비2>는 오히려 비현실적이지만 왠지 낯설지는 않다는 것이다. 그것은 아무래도 벌어진 사건과 무관하게 영화 속 남북미 세 지도자가 현실의 그 세 지도자를 직접적으로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빨간 넥타이의 미국 대통령은 누가 봐도 트럼프 대통령을 떠올리게 하고(식성부터 성격까지 구구절절 유사점을 찾는 것 자체가 피곤할 정도로 싱크로율이 높다), 외모는 상당히 다르지만 북한 위원장 또한 김정은으로 연결짓는 것이 적절하며, 하늘색 넥타이의 대한민국 대통령도 외모나 연령대는 다르지만 ‘빨갱이 북에 가서 돌아오지마라’라는 글이 청와대 게시판에 올라왔다는 설정만 봐도 대략 속한 정당과 투영된 인물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게다가 지금의 우리 관객은 판문점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먼저 만나고, 싱가포르에서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만난 뒤인 2019년 6월 30일, 트럼프 대통령이 판문점 군사분계선에서 김정은 위원장과 함께 북측으로 넘어가 기념촬영을 마치고 다시 남측으로 내려와 문재인 대통령과 3국 정상이 얼굴을 맞대는 모습을 연출한 것을 기억하고 있다. 

그처럼 <강철비2>의 픽션은 현실의 논픽션과 어우러져 힘을 발휘한다. 북한의 내부 붕괴라는 시나리오가 1편과 2편을 모두 관통하고 있다면, 2편에서는 미국까지 끌어들여 현실의 트럼프 대통령이 최초로 북측 땅을 밟은 것처럼 ‘(또 하나의) 최초로 해외에서 죽은 미국 대통령을 얻을지도 모른다’는 상상력이 끼여든다. 그것이 오히려 소속 정당에 대한 이미지 개선과 동정론에 힘을 실어줄 것이란 얘기다. 물론 이 모든 것들을 황당하게 느끼는 관객이라면 ‘만화적 상상력’이란 표현을 떠올리게 되겠지만, <강철비2>는 통역가나 비서관도 없이 남북미 세 정상이 강제적으로 한 방에 갇혀 동고동락하는 설정을 밀어붙이는 모양새가 꽤 쓸모 있는 풍자란 생각이 들게 한다. 방귀를 뀐 누군가를 질타하고, 실내 흡연 문제로 다투는 모습을 보자면 그야말로 ‘애들 싸움’이나 다름없다. 이제껏 보아온 근엄한 ‘정상회담’이란 온데 간데 없다. 
 

사실 그 빈자리를 채운 것은 보통의 북한 병사들이다. 순수하게 ‘공화국 영웅’을 꿈꾸며 마음 한구석에서 평화를 향한 열망이 있는 그들은 폭주하는 호위총국장에 대한 반감으로 가득 차 있다. 어쩌면 이 팽팽한 밀실 스릴러가 보여주는 미덕의 대부분은 바로 거기 있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인간적인 얼굴을 한 북한 사람’이 등장하는 남북 소재 영화는 많았으되, 그 영화들의 북한 사람은 하나같이 대한민국 주인공의 시선에서 관찰당하는 북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강철비2>는 <강철비>의 최정예요원 엄철우(정우성)보다 더 그 북한 사람들의 시점을 담아낸다. 북한 잠수함에서 벌어지는 일이기에 어쩌면 처음으로 북한 그 자체를 공간적 배경으로 삼았다고 해도, 혹은 북한에 가서 로케이션 촬영을 한 영화라고 적당히 거짓말을 보태도 크게 틀린 얘기는 아니다. 이제껏 보아온 남북 소재 영화들처럼 대한민국으로 온 누군가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거기 사는 그들의 이야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가장 인상적인 지점은 영화 속에서 북한 사람들이 얘기할 때 그 자막을 넣어준 것이었는데, 그것을 이른바 ‘서울 표준말’로 자막을 넣지 않고 그냥 ‘북한말’을 소리 나는 그대로 썼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다소 어색했으나, 가령 한국영화에서 제주도 사투리 장면이 나올 때 서울 표준말 자막을 쓰는 것처럼, 북한영화에서 북한 타 지역 사투리 장면에서 평양 표준말 자막을 쓰는 것이라도 봐도 될 것이다. 그래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남과 북의 영화가 서로의 영화관에서 자유롭게 동시 개봉을 하게 될 때, 평양 사람들이 <강철비2>를 보게 되면 어떤 마음이 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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