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생긴 나무 옆에 지어진, 예쁜 집으로 숙녀들이 하나 둘 모여든다.
찬찬히 들어와 서로를 마주하는데, 건네는 인사말이 예사롭지가 않다.
“늙었네. 내가 아줌마가 되면 이렇구나”
하룻밤, 언제일지 언제인지 모를 그 하루 동안 ‘나’ 들이 서로를 보러 온다.
부러움이 뭔지 모르던 8살부터, 많은 것들을 감싸 안을 수 있는 손을 가진 서른 여섯까지.
각각 자라온 시간 속의 소녀들과 아가씨들로, 여섯 명의 숙녀들이 함께 자리한다.
그리고 그녀들이 내어놓는 이야기들.
피아노를 배우고 싶었던 아이와 내방이 갖고 싶었던 꼬마 숙녀, 예쁘고 인기 많던 부러운 친구 이야기 그리고 처음 생리한 날. 그 때, 첫 느낌, 기쁨과 오해들 실망과 상처들.
아마도 기억들 중에서도, 깊은 자국이 남은 시간 속 그녀들이 모여든 것 같다.
작은 아이의 눈물을 좀더 자란 소녀가 닦아주고, 또 소녀의 상처를 더 큰 그녀가 감싼다.
꼬마에게 검지만큼 커다랗고 아팠던 가시가, 몸이 자라며 새끼 손톱 마냥 작게 느껴지고, 상처에 앉은 딱지도 떨어져 결국엔 흉터마저 흐릿한 나이가 된다.
그 사건의 순간들이 이 숙녀들을 자라나게 만드는 것인지, 그저 흘러가는 시간이 그녀들을 키워낸 것뿐인지 알 수는 없지만, 어쨌거나 이야기는 소녀가 건강하게 잘 자라날 거라는 든든한 약속을 하듯 다정하게 들어온다.
서른 여섯의 숙녀는 이제 지나온 시간들을 끌어 안고 보듬어 낼 수 있게 된 것 같다.
자라난 손바닥 뼘만큼 더 크게, 살아낸 시간의 양만큼 더 깊이,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게 된 것 이다. 이만큼은 자라야 비로소, 나의 과거들에 초대장을 보낼 수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단짝보다 나를 잘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 쌍둥이 자매보다 더 가까이 공감해 줄 수 있는 존재가 있다면, 아마 바로 자신뿐일 것이다.
그런데 왠걸, 그녀들의 대화가 매끄럽지 못한다 싶더니 비난하고, 소리지르고 돌아서기까지 한다.
시간 속에서 쌓여가는 순간들은 나를 자라나게도, 또 바뀌어 가게도 하는 것이다. 가장 소중하다 여기던 것을 뒷줄에 세우기도 하고, 부럽고 크다 여기던 것을 한줌처럼 보이게끔, 좋아하던 것을 더 많이 좋아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렇게 시간은 어떻게든 우리를 나아가게 만든다.
이 이야기를 크게 관통하는 주제는 ‘꿈’이다. 조그맣고 예쁜 꿈. 자유롭고 멋진 꿈.
그런데 그 꿈들이, 이루어내지 못한 옛 다짐들이 지금의 내게 비난을 퍼붓는다. 열아홉 청춘의 꿈이, 날 선 원망으로 가슴 속을 파고 들려 한다.
그리고 이 모든 꿈들에 초대장을 보낸 숙녀는, 이 시간 또한 보듬어낸다.
하룻밤. 언제일지 언제인지 모를 그 하루 동안 ‘나’ 들이 서로를 보러 왔다. 만나러 왔다. 확인하러 왔다. 안아 주려 왔다.
그 하룻밤이 다 지나고 이제 각자의 시간으로 돌아가야 할 때가 왔다.
가장 뜨거운 순간을 살고 있을 스무 살을 앞둔 숙녀가, 가던 걸음을 돌이켜 서른 여섯의 자신에게 외쳐 묻는다.
“그럼- 이젠 더 이상 꿈꾸지 않아-?”
당신의 옛 꿈들이 당신에게 물어온다. 이젠 더 이상, 꿈꾸지 않아?
당신은 뭐라고 대답할까 그 숙녀는 뭐라 답했을까.
그녀의 대답이 궁금하다면, 숙녀들의 하룻밤 이야기를 한번 찾아보는 것도 좋겠다.
현재(리뷰작성시기준)까지는
유튜브에서도 시청이 가능하다.
가쁘게 살아가다, 잠시 쉼표를 찍어두고 잠잠히 앉아있고 싶은 날, 이 이야기를 추천한다.
20분 정도의 짧은 이야기와 또 그보다 긴 여운으로 잠시 쉬어 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