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명태, 마이 리틀 텔레비전 이홍매, 2017, 2019

by.임종우(영화평론가) 2020-07-21조회 2,658
마이 리틀 텔레비전 스틸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확산이 멈추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영화계, 특히 극장 관람 문화가 빠르게 위축되는 상황이다. 이러한 조건 속에서 다양한 문화생태계 구성원을 연결하는 영화제의 고민은 깊어져간다. 대부분의 영화관 상영이 온라인 스트리밍으로 대체되고 ‘관객과의 대화’와 같은 부대행사는 길고 짧은 인터뷰 영상콘텐츠로 전환되었다. 나는 상반기 영화제에서 생산된 “온라인 GV”를 보면서, 영화제 참여자를 향한 감사함과 별개로, 그것에 대한 기획과 설계가 얼마나 오랜 시간 안일했는지 다시금 느꼈다. 매개에 대한 고민이 누락된 배치 위에서 성사된 관객과 대화하지 않는 ‘관객과의 대화’들이다. ‘질문하기’에 대한 논쟁도 합의도 없다. 그럼에도 영화제는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하고 관객은 기꺼이 그 자리에 참여한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

관습적인 어떤 것의 질긴 생명력을 질문할 때 그 대답은 복잡할 수밖에 없다. 위에서 제시한 문제의식을 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관객과의 대화’가 계속 존재하는 이유를 묻는다면 나는 가급적 긍정적인 방향으로 답변하고 싶다. 여전히 영화를 두고 궁금한 것이 있고 우리는 그것을 계속 물어야하기 때문이다. 다르게 생각하면 모든 관객과의 대화에서 제기되는 질문이야말로 어떻게든 놓치지 말아야할 부분일지도 모른다. 어떤 계기로 이 작품을 만들었는가? 이 영화는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이 작품을 기획한 의도는 무엇인가? 이렇게 몹시 진부한 질문들을 다시 읽어본다. 이 질문은 대화의 시작점인 동시에 도착점이며, 모든 사람이 물어볼 수 있지만 어느 누구도 솔직하게 대답하지 않는 것이다. 
 
2017년 봄과 여름 사이 인천 디아스포라영화제에서 재중동포 영화감독 이홍매의 작품을 처음 만났다. 그곳에는 <명태>(2017)가 있었다. 가상의 재중동포 김수가 한국 정착을 시작하는 시기의 짧은 구간을 재구성한 영화다. 한편 2019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된 <마이 리틀 텔레비전>(2019)은 김씨 성을 가진 또 다른 주인공이 한 재중동포 가정을 방문하면서 겪은 이야기를 담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두 편의 영화는 나를 난처하게 만든다. “이홍매 감독은 <명태>와 <마이 리틀 텔레비전>을 왜 만들었는가?”라는 질문 앞에서 도저히 비평을 시작할 자신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고민은 아래와 같다.
 
<명태>

하나는 재현의 정치학 관점에서 <명태>와 <마이 리틀 텔레비전>의 레이어가 매우 복잡하다는 사실이다. 우선 <명태>의 김수와 <마이 리틀 텔레비전>의 김명학은 이홍매 감독과 성별이 다르다. 여성 영화감독은 여성 주인공을 만드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게 아니다. 연출자 본인과 디아스포라적인 정체성을 공유하는 인물을 구성하는 과정 안에서 꼼꼼한 자기 반영을 의도하기보다는 오히려 자기반영성을 바탕으로 한 해석을 성립시키지 않도록 서사를 만든다는 점이 특이하다. 그리고 김수와 김명학 모두 영화배우 강길우가 맡았다는 것 또한 보다 섬세한 응시를 요구한다. <명태>와 <마이 리틀 텔레비전>을 제작순서에 맞추어 하나의 타임라인에 놓아서 보면 배우가 동일하다는 사실을 차치하더라도 두 작품은 강한 연결성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가령 <명태>의 마지막 장면과 <마이 리틀 텔레비전>의 첫 번째 장면은 조형적으로 흡사하다. 하지만 두 이미지 속에서 유일하게 같은 얼굴을 가진 김수와 김명학은 사실상 모든 지점에서 충돌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이홍매 감독은 어디에 있는가. 인식할 수 없는 작품 속 어딘가에서 스크린 너머의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만 같다. 
 

그가 항상 나를 비평의 시작점으로 돌려보내는 또 다른 이유는 스스로 비평의 자격을 점검할 것을 요청하기 때문이다. 어느 시점에 완결시킨 디아스포라 재현체제 안으로 <명태>와 <마이 리틀 텔레비전>을 포섭하려고 하지는 않는가. 그것에 대항하는 태도를 취하면서도 또 다른 시스템을 만들고 싶은 욕망을 키우고 있지는 않나. 나는 두 작품을 번역할 수 있는 사람인가. 번역의 선행조건으로서 충분한 성찰과 자기비판의 시간을 가졌는가. 나는 이 글이 하나의 포부로 읽혔으면 한다. 작은 두드림으로 다가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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