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전히 입소문과 호기심만으로 영화를 찾아본 게 오랜만이다, 라는 점이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이유다.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상황. 이 혼란에도 영화제를 ‘onsite’로 지켜낸 올해 인디다큐페스티벌(에게 존경과 격려를!)에서 아이돌 콘서트 티켓팅보다 표를 구하기 힘들었다는 입소문이 돌았고, 어떤 감독은 영화 보는 내내 언제
전지현이 나오는지 기다렸지만 끝내 등장하지 않아 제목이 왜 저런지 아직도 알지 못한다는 농반진반.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에서 관객과 감독이 주고 받은 문답들이 알 수 없는 암호들이었다는 전언. 본 사람들은 다 재미있게 봤다며 말하지만, 막상 어떤 게 좋았는지 물어보면 영화 외적인 이야기만 하더라는 점이, 게으른 몸을 움직여 영화를 찾아보게 만들었다고 고백해야겠다.
카오스가 지구에 떨어져 고대인은 절멸의 위기에 봉착했다. 카오스가 통제하는 어둠의 별이 되어버린 지구지만 살아남은 소수의 고대인들은 영력을 하나로 모아 이곳 일랜시아를 창조하고 대피했다. 언젠가 지구로 돌아갈 날을 기대하며. 저곳 세상에서 일랜시아를 창조한 이들은 생존한 소수의 고대인들이지만, 이곳 세상에서 일랜시아를 창조한 이들은 게임회사 넥슨이다. 1999년에 출시된 게임이니 이제 20년이 되었고 넥슨의 방치로 업데이트는 물론 아무런 서비스도 제공되지 않는 구시대의 유물이 되어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추억의 게임이 되었지만, 생존한 고대인들인 양 일랜시아를 지키고 있는 지구인들이 있다. 전쟁을 피해 산속 깊은 곳 동굴로 숨어들었다가 종전소식을 전해 듣지 못한 탈영병처럼, 일랜시아를 지키는 이들은 기술과 자본이 결합해 창조하는 새로운 게임에는 관심이 없다. 약간의 자조와 은밀한 연대감과 결속력, 그리고 추억이 더해져 유지되는 일랜시아 공동체 일원들은 대부분 20대 중. 후반인데, 그 공동체에 속해 있는 감독이 직접 길드원들을 만나 각자 본캐들의 사연과 이유를 카메라에 담아낸다.
영화는 일랜시아를 지탱하는 세계관과 규칙을 보여주고, 이 세계를 창조한 게임회사 넥슨의 방치와 무관심에 분노를 표하고, 그 방치로 인해 형성된 그들만의 공동체에서 어떻게 놀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컴퓨터 화면이 종종 등장하고, 인터뷰와 길드원들의 MT장면들이 날 것처럼 담긴 영화. 어떤 게임이든 중독의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야, 라는 이 영화에 대한 누군가의 평에 공감하려면 게임이든 뭐든 중독의 경험이 있어야 할 터. 화면 가득 등장하는 컴퓨터 게임화면과 난무하는 그들만의 용어라는 장벽을 건너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내공을 절감하며 좌절하는 순간들이 있다.
물론 쉬운 유혹들과 떡밥들은 존재한다. 98년 IMF시절에서 시작해 넥슨 노동조합의 이야기까지, 일랜시아라는 게임이 거쳐온 20년의 세월에 담긴 한국사회의 변화와 등장하는 청년세대의 불안의 징후들은 영화에 대한 충분한 사회적 맥락과 층위들을 제공한다. 이들에게 반칙은 매크로라는 신기술이고, 노력해서 성취한다는 기본 규칙에 위배되는 행위들. 이런 행위들은 현실세계뿐만 아니라 일랜시아라는 곳에서도 쉽게 통용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와 일랜시아를 맞대어 비교하면서 이 영화를 이해해보려는 시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왜 이들이 일랜시아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지켜내고 있는지를 명확히 설명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졸업영화로 만들어진 이 영화가 여기저기서 입소문을 타면서 게임 유저가 만든 최초의 게임다큐로 화제를 모으고 있다는 기사를 접했다. 게임회사 넥슨의 임원진들이 영화를 봤고, ‘버려진 게임’ 일랜시아와 같은 클래식 게임에 대한 이벤트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일랜시아를 지켜온 이들은 이런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이지가 너무 궁금해지는 대목. 전쟁을 피해 동굴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탈영병은 사회로 복귀해서 과연 행복해졌을까? 이렇게나 사랑스런 영화로 완성해낸 감독이 원하는 게 이런 변화들이었을까? 문득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