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다시 개봉한 <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류승완, 2000)를 보면서 걱정이 앞섰다. 과연 이 영화가 세월을 견딜 수 있을까? 이 작품을 2016년 전주국제영화제의 폐막작으로 선정할 때에도 비슷한 질문을 했던 것 같다. ‘데뷔작의 신화’는 관심사가 아니었다. 이미 류승완 감독은 한국을 대표하는 중견감독이 되어 있었다.
신화적인 평가들은 다음과 같다. 오늘날 한국영화를 이끌고 있는 형제 류승완 감독과
류승범의 놀라운 데뷔작이다. 한국영화에서 자주 시도가 되지 않는 한 명의 감독이 만든 옴니버스 영화다(여러 명이 참여하는 경우는 흔하다). 각각의 작품들인 ‘패싸움’, ‘악몽’, ‘현대인’,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는 액션, 공포, 십대, 조폭 및 형사 등 오늘날 한국영화의 주류로 자리잡아 온 다양한 장르를 보여준다. 독립영화로서 보기 드물게 흥행에 있어서도 성공을 거둔 작품이다. 당시에도 그랬지만 오늘날 저예산 혹은 독립영화가 이 정도의 흥행을 거두기란 어려운 일이다. 류승완 감독은 이 작품으로 제21회 청룡영화상에서 신인감독상을, 배우 류승범은 제38회 대종상 영화제에서 신인남자배우상을 수상하였다.
이외에도 수많은 신화적 평가가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을 다시 보면서 가장 먼저 다가왔던 것은 데뷔 자체가 아니라 데뷔 이후 류승완 감독이 어떻게 현재까지 나아올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잘 알려졌다시피 이 작품은 처음부터 4편의 옴니버스로 구상한 것이 아니었다. ‘패싸움’이 먼저 만들어졌고, 이후 전체 이야기를 구상하였다. 이 과정은 류승완이 영화를 어떠한 방식으로 전개하는가를 보여주는 실마리가 된다.
‘패싸움’을 두고 날 것 같은 액션이라고 하지만 이 작품의 진가는 다른 데 있다. 날 것 같은 액션으로 따지자면 영화의 마지막에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가 더 생생할 수 있다. ‘패싸움’의 매력은 오히려 제한된 공간 안에서 철저히 계산되는 장면의 촬영과 이를 시도해 보았던 류승완 감독의 계산된 연출력을 볼 수 있다는 것에 매력이 있다. 좁은 장소임에도 불구하고, 당구장 전체를 보여주는 롱쇼트가 쓰이면서 사소한 이유로 시작하여 끝내 살인이 벌어지는(이와 비슷한 대사가 영화 속에서 나온다) 장편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를 관통하는 비극적인 결말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당구장에서 일어나게 된 살인사건은 ‘악몽’에서 복역을 하고 나온 주인공 성빈이가 끝내는 ‘건달’이 되는 이유가 된다. 이후 에피소드에서 성빈은 경찰이 된 친구 석환(류승완)의 동생 상환(류승범)을 자신의 부하로 거둬들이고, 조직의 총알받이로 활용한다. 그것은 석환에 대한 성빈의 복수극이다. ‘패싸움’에서 친구로서 한 편이 되어 당구장에서 패싸움을 벌였던 두 친구는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에서 경찰과 건달이 되어 대결을 펼친다. 어릴 적 친구가 오늘날의 원수가 된다는 고전적인 비극은 이후 류승완 영화를 관통하는 강력한 주제의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당구장의 패싸움은 영화의 세계를 결정짓는 하나의 기원이자 주인공 성빈에게는 끝내 타락으로 이끄는 ‘죄의식’의 근원이다. 류승완 감독은 ‘패싸움’ 이후 새로운 이야기를 덧붙이면서 이날 벌어진 살인 사건이 주인공들뿐만 아니라 주인공 주변의 인물들에게도 강력한 영향력을 끼치는 ‘무대장치’가 되도록 하였다. 첫 번째 에피소드 ‘패싸움’은 소포클레스의 비극에 등장하는 ‘아폴론의 예언’이 된다.
그러나, 이 작품이 고전적인 스타일이 아니라 뭔가 일그러지고 삐딱하게 느껴지는 것은 이를 일그러뜨리는 형식적인 실험에 있다. ‘패싸움’에는 당구장 주인이 인터뷰 형식을 통해 그날의 사건에 관여하고, 논평을 한다. 이러한 시도는 세 번째 에피소드 ‘현대인’에서 경찰과 건달의 대결에서 집약되어 다시금 등장한다. 우리는 경찰과 건달의 액션이 아니라 두 신화를 둘러싼 자신들의 논평과 현실의식을 엿본다. 고전적인 스타일의 원형을 따라가면서도, 이를 다루는 방식에 있어선 새로운 시도를 하고자 하는 충돌이야말로 놀라운 데뷔작의 근본적인 에너지다. 이후 <
아라한 장풍대작전>(2004), <
주먹이 운다>(2005), <
짝패>(2006)와 같은 초기작들이 고전적인 대결 구도로 펼쳐지는 비극적 세계관의 변주였다면, 2010년에 선보인 <
부당거래>와 <
베를린>(2012), <
베테랑>(2014)은 현대극인 동시에 현대사를 관통하는 인물들에게 일정한 논평을 가한다. 이를 통해 선과 악의 경계들은 자주 무너진다. ‘현대인’에서 싸움을 벌이는 경찰과 건달 중 그들이 어떤 인물인지는 액션 뒤 인터뷰를 통해 이해하게 되는 것처럼, 선과 악의 대결을 벗어나 현대 사회의 모호함을 적극적으로 끌어안는다. ‘패싸움’이 장편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를 관통하는 프리퀄의 기능을 했던 것처럼, 이후 류승완 감독의 영화 전체를 아우르는 프리퀄은 장편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를 디지털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처음 접하는 관객들에게 류승완의 스타일과 세계의 기초를 확인하는 것은 중요하지가 않다. 고전적인 필름 누아르의 비극적 스타일과 그것을 모던하게 보여주려고 했던 것 사이의 충돌 사이에서 배우로 등장하는 류승완 감독과 류승범의 모습이 인상깊게 새겨진다. 그것은 아주 중요한 영화의 감정을 남긴다. 제아무리 형식적인 고민이나 영화 장르 자체에 대한 심도 깊은 열정이 있어도,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에서 가장 강렬했던 것은 그것을 보여주는 인물들의 클로즈업과 액션을 펼치는 롱쇼트 사이를 오가는 얼굴과 장면 사이의 긴장감이었다는 것을. 그리하여, 인물과 캐릭터로 이해될 수밖에 없는 지극히 영화적인 지점을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가 훌륭하게 성취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보여준다. 세월이 흘러가도 남는 것은 인물을 통해 드러나는 세상의 얼굴이자 영화의 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