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미 감독으로부터 구미에 있는 KEC 기업의 민주노조를 촬영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순간을 선명히 기억한다. 그녀가 만들 노동 다큐멘터리가 어떨지 무척 궁금했기 때문이다. KMDb를 통해 두 차례 소개한 장윤미 감독 영화의 뚜렷한 특징은 감각적이고 직관적이며 자유로운 카메라의 운용이다. 종종 찾아오지만 소박하거나 찰나적이기에 붙들기 어려운 아름다운 순간을 그녀의 카메라는 결코 놓치는 법이 없다. <
어머니가방에들어가신다>(2014)의 거미줄이, <
늙은 연꽃>(2016)에서 불쑥 틈입한 할머니의 미소가, <
공사의 희로애락>(2018)의 아카시아가 흩날리는 순간이 그랬다. 궁금했다. 그녀의 카메라가 투쟁의 현장을 만나면 무엇을 보여줄까.
금속노조 KEC지회는 2010년 파업 이후 정리해고, 친기업 복수노조 설립, 손배가압류 등 사측의 지속적인 탄압에 굴하지 않고 민주노조를 지켜왔다. KEC지회는 교섭 대표 노조의 지위를 잃었지만, 2018년 임단협에 참여하기로 한다. <
깃발, 창공, 파티>(장윤미, 2019)는 이 과정을 1년여 동안 기록한 다큐멘터리다. KEC지회의 전략은 교섭 단체인 친기업 노조가 사측과 협의한 내용을 전해 듣고 이를 분석하여 전체 조합원들에게 알리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친기업 노조의 조합원들까지도 설득해내는 것이었다. 전략은 성공했다. 사측에 절대적으로 유리하게 나온 임단협 잠정합의안에 대한 전체 조합원 투표에서 60%의 반대를 끌어낸 것이다. 물론 이는 곧 새로운 싸움으로 이어진다. 같은 달, 교섭 대표 노조와 사측이 투표 결과를 따르지 않고 잠정 합의안을 체결했기 때문이다.
노동 운동과 노동 다큐멘터리의 차원에서 볼 때, <깃발, 창공, 파티>의 중요성은 현 KEC지회를 이끄는 노조 간부이자 작품 주인공의 다수가 여성들이라는 데 있다. KEC지회의 지회장, 부지회장, 수석 부지회장 모두 여성 조합원이며 임원급 회의 자리에 참석한 대다수 또한 여성이다. 투쟁의 방식을 고민하고 전략을 짜는 브레인 역할도 여성이자 민주노총 경북본부 교육국장인 배태선이 맡고 있다. KEC의 노조 간 차별, 임금 차별은 물론 이 차별들의 보다 근본적인 요인으로 작용하는 여성 노동자에 대한 차별은 이들의 목소리로 인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영화적 차원에서 볼 때, 흥미로운 점은 역시 장윤미 감독이 택한 형식이다. 영화는 상당히 불친절한 방식의 재현을 시도한다. KEC지회가 처해있는 상황에 대한 짧은 설명과 이 영화가 KEC지회의 입장에서 전개된다는 언급 외에 다른 설명적인 정보들은 없다. 정리와 요약 대신, 관객은 그저 그 상황에 던져진다. 이 회의가 무슨 회의이고 날짜가 언제인지, 발언하는 조합원의 직위는 무엇이고 이름이 무엇인지 가르쳐주지 않는다. 개별 인물들의 인터뷰도, 상황을 설명해주는 내레이션도 없다. 카메라를 든 그녀 자신이 그랬을 것처럼, 회의를 하고 연대 투쟁을 하고 함께 산책하는 그들의 옆자리에 관객을 위치시킨다. 시간이 걸린다. 복숭아, 감, 귤. 계절마다 다른 과일을 먹는 조합원들을 보며 시간의 흐름을 정직하게 체험해야 한다. 관객들에게 뉴스를 보듯 상황을 단번에 파악하고 싶다는 조급함을 버리고, 인내심을 가지라고 요구하는 영화. 그런데 놀랍게도, 그렇게 163분(최초 상영이었던 부산영화제 버전은 168분이다)을 보내고 나면 가랑비에 옷이 흠뻑 젖어있듯, 전체가 한꺼번에 느껴진다. 그녀는 누구이고 그 마음이 어떠한지, 10년이 넘도록 싸움을 지속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큰 승리 혹은 패배에 초점을 둔 노동 다큐멘터리들에서는 삭제되었을 작은 승리와 세세한 고민이 전해진다. 이 모든 것들이 인터뷰를 통한 말로 발화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결을 간직한 덩어리 채 다가온다.
기존의 장윤미 감독의 영화에서 마주할 수 있었던 경이로운 순간은 한두 개의 솟아오른 이미지 혹은 쇼트에서 비롯한 마법 같은 것이었다. <깃발, 창공, 파티>에서 그녀는 자신의 장기를 절제한다. 대신에 KEC지회 사람들과 함께하길, 이들에게 익숙해지길 관객에게 요청한다. 쉽지 않다. 그러나 그 긴 여정을 끝내고 나면 몇 가지가 선물처럼 주어진다. 연대, 존엄, 믿음과 같은 단어들이 떠오른다. 이는 기존에 그녀가 선사해준 영화적 순간들과 다르지 않다. 희미하고 찰나적이지만, 보석처럼 빛난다는 점에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