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엑시트

by.김보년(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2019-09-10조회 6,231
엑시트 스틸
관객의 자리
1. <엑시트>(이상근, 2018)는 용남(조정석)과 의주(임윤아)의 모험담을 그린다. 도시에 독가스가 퍼지자 용남과 의주는 독가스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가능한 멀고 높은 곳으로 도망가려 한다. 이 과정에서 건물 사이를 뛰어넘거나 벽을 타고 오르는 흥미진진한 상황이 연속해서 등장하며, 나는 그런 주인공의 모습을 보며 긴장과 스릴을 느꼈다.
 
그런데 여기서 ‘재미’를 느낄 수 있었던 건 내가 극 중 인물이 아니라 극장 의자에 편하게 앉아 스크린을 바라보는 관객이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영화 속 용남이었다면 절망과 고통을 느꼈을 것이고 겨우 살아남았다 하더라도 심각한 트라우마로 긴 시간 고생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관객이기 때문에 용남의 상황에 몰입을 하면서도 일정 정도 거리를 둔 채 그의 고생을 신나는 볼거리로 받아들였다. 아마 <엑시트>를 본 다른 관객들 역시 나와 같은 이중적이고 모순적인 상황을 자연스럽게 즐겼을 것이다. 
 

2. <엑시트>에서 눈에 띄는 건 용남의 고군분투를 마치 영화처럼 관람하는 등장인물들의 존재다. 이 영화에는 스크린으로 용남을 지켜 보는 인물들이 이상할 정도로 많이 등장한다. 핸드폰의 영상 통화, 드론의 카메라, 인터넷 방송, 공중파 뉴스 등은 다들 용남의 사투를 실시간으로 중계하고 사람들은 스크린 앞에 모여들어 환호성을 지르거나 탄식을 내뱉는다. 생과 사를 넘나드는 긴박한 순간은 물론, 용남이 죽을지도 모르는 끔찍한 순간에도 이들은 스크린을 보는 행위를 멈추지 않는다. 이 모습은 마치 지금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관객의 모습처럼 보이기도 하고 동시대 영상 미디어 풍경의 축약본처럼 보이기도 해서 매우 흥미로웠다.

그런데 이들이 스크린 속의 용남에게 강하게 몰입해 응원을 보낼 수 있는 건 결국 스크린 바깥이라는 안전한 자리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다시 말해 이들은 사건 현장으로부터 안전한 거리를 확보한 채, 즉 목숨을 잃을 상황에 처한 주인공의 행위를 스크린 바깥에서 관람하고 있는 중이다. 
 

3. 이때 영화에 등장한 두 종류의 ‘관객’을 비교하고 싶다. 첫 번째 관객은 용남의 가족이다. 이들은 스스로를 위험한 상황에 몰아넣으면서까지 어떻게든 용남을 보려한다. 이들은 용남의 생사는 물론 일거수일투족을 자기 눈으로 확인하려 하고, 일단 용남이 시야에 들어오면 눈을 떼지 않는다. 자칫 일이 잘못될 경우 아들-형제-삼촌의 죽음을 실시간으로 목격하는 끔찍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지만 포기하지 않는다. 비록 이미지를 보는 것이 괴로울지라도 보는 행위 자체가 용남에게 힘을 실어줄 수 있다고 믿는 사람처럼 끝까지 스크린을 본다(용남의 실시간 위치를 파악함으로써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는 했다). 즉, 이들은 안전한 자리에 앉아 있지만 그 이미지를 자신과 분리된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용남의 가족은 몸은 떨어져 있어도 이미지를 통해 용남과 연결되어 있다고 믿는 것 같다.

또 다른 관객은 일반 시민들이다. 이들은 거리의 전광판, 병원 로비의 TV, PC방 모니터로 용남을 본다. 이들이 보는 이미지 자체는 용남의 가족들이 보는 것과 다르지 않지만 이미지를 받아들이는 방식은 크게 다르다. 간단히 말해 이들 중 울거나 가슴을 치며 괴로워하는 사람은 없다. 이 두 번째 관객은 대부분 약간 흥분한 모습으로 용남에게 응원을 보내며, 용남이 특정 미션에 성공할 때마다 기쁨의 환호성을 보낸다. 특히 인터넷 방송 스트리머의 등장은 두 번째 관객이 지금 용남의 사건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들은 용남의 탈출 과정을 자신의 ‘리액션’과 함께 중계함으로써 이 모두를 하나의 방송 컨텐츠로 만든다. 두 번째 관객의 관람 양식을 모조리 윤리적으로 비난할 생각은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이들이 첫 번째 관객과는 다른 관람 태도를 가졌다는 것이다.
 

4. <엑시트>에 등장한 두 종류의 관객을 보면서 영화를 관람하는 나의 자리와 태도를 다시 점검해야 했다. 앞에서 얘기한 것처럼 극장 의자에 편하게 앉아 있던 나는 용남이 처한 상황을 적당히 안타까워하면서 그의 활약을 신나게 즐기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영화에 ‘몰입한’ 상태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전혀 다른 두 관객 - 용남의 가족과 PC방의 손님이 번갈아가며 등장할 때, 나는 몰입에서 빠져나와 내가 저 둘 중 누구와 더 가까운지, 누구의 자리에 있는지 물을 수 밖에 없었다.

결과적으로 <엑시트>는 스크린 바깥이라는 안전한 자리에서 타인의 위기 상황을 지켜보는 관객의 조건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흥미로운 작품으로 남는다. 나아가 관객에게 서로 다른 두 가지 예를 제시하며 우리가 PC방 손님의 자리에 갈 것인지, 용남의 가족이 될 것인지 묻는다. 그 대답 여부에 따라 <엑시트>는 흥미진진한 모험담으로 남을 수도 있고 악몽으로 찾아올 트라우마로 남을 수도 있을 것이다(영화가 그렇게 했던 것처럼 둘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겠다, 라고 간단히 말할 수도 있지만 그때 관객의 자리는 마지막까지 분열된 상태로 남을 것이다).

올바른 정답이 있는 질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고 잘못된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틀린 질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조만간 <엑시트>를 다시 한 번 극장에서 보며, 이 어렵고 난처한 질문을 처음부터 다시 고민해볼 생각이다. 그때 스크린을 보는 나는 과연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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