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 한강에게 박근영, 2018

by.옥미나(영화평론가) 2019-05-23조회 5,197
한강에게 스틸

최근 개봉한 몇몇 한국영화에서는 전에 없던 주인공들이 발견된다. 이제껏 영화가 비극을 소재로 삼는 경우, 자주 인물은 가해자 아니면 피해자로 분류되었는데, 범죄 사건을 다루는 경우에는 가해자를 추적하고 처벌하여 정의질서를 확립하거나 혹은 가부장적 질서를 회복하는 과정이 영화의 골격을 이뤘다. 그에 비하면 피해자는 구원자의 대활약을 돋보이게 만드는 장치에 가까워서, 무력하고 무고해서 더 가엾은 인물로 묘사되며 관객들의 동정과 연민을 샀다. 가해자를 특정할 수 없는 재해나 전쟁과 같은 특수 상황이 배경이 될 때에는 고통에 시달리던 피해자들이 서로 용서하고 화해하며 용기 내자고 독려한다. 결국 시간이 약이다, 그만 울고 어서 상처를 털고 다시 일어서자, 라는 식의 서사는 고통과 상처의 기억을 서둘러 과거의 미담으로 얼버무렸고, 그 와중에 절망과 우울을 극복하지 못한 소수의 인물들은 도태되기 일쑤였다. 가해자가 되었건 피해자가 되었건 비현실적으로 강렬한 의지와 낙천성을 가진 주체적 인간들이 약하고 여린 인물들을 내치고 내내 주인공 자리를 차지했던 셈이다. 그동안 사건의 1인칭 당사자가 아닌 주변 인물들 혹은 상실과 애도를 견뎌내야 하는 물리적 시간은 자주 이야기의 외부로 밀려나거나 아예 삭제되곤 했다.

그런데 이제 한국영화는 서사의 바깥에서 없는 것으로 치부되었던 그들의 존재를 긍정하고, 그들의 시간을 담기 시작한 것 같다. <생일>, <살아남은 아이>, <봄은 가고> 그리고 박근영 감독의 <한강에게>(2018)는 이제 결코 떼어낼 수 없는 그림자처럼 한 몸이 된 죄책감을 품은 채, 상실감의 고통으로 얼룩진 현재의 시간을 묵묵히 견디고 있는 이들을 주인공으로 삼는다. 조심스럽게 그들의 고통을 헤아리고, 슬픔에 공감하려는 시도는 영화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애도 혹은 한국영화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의 시대와 공명하려는 방식일 것이다. 
 

진아에게는 10년을 사귄 연인 길우가 있고, 그는 알 수 없는 사고를 당해 의식불명 상태에 놓여있다. 이별의 순간은 유보되고 있지만 피할 수 없는 비극은 이미 진행중이다. 진아의 얕은 꿈에는 길우와 함께 했던 행복한 추억들이 끊임없이 출몰하고, 현실은 괜찮냐는 사람들의 질문에 괜찮다고 대답을 반복하며, 내내 길우의 빈자리와 침묵을 마주해야 하는 일상의 연속이다. 시인인 진아는 일상의 무게와 속도를 핑계로 현실을 외면하는 대신,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관찰하고, 타인의 고통과 슬픔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공들여 단어를 골라 생각과 감정을 표현해야 한다. 하지만 자신의 몫이 된 죄책감과 상실의 고통을 온몸으로 오롯이 견뎌내야 하는 그녀에게 예전에 썼던 시들은 이제 거짓말처럼 느껴진다.
 
길우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친구들과 어울려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진아에게 한강은 그 물결의 반짝임이 ‘간질간질하여 어쩐지 기분이 좋아지는’ 공간이었지만, 길우의 사고를 경계로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을 상징하는 것이 된다. 서울을 가로지르는 한강의 존재는 진아의 일상에서 피할 수 없는 것이고, 한강에서 연상되는 생생한 고통과 슬픔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진아는 자기 연민을 토로하거나, 소리내 통곡하지 않는다. 차마 시를 쓸 수 없는 그녀의 무기력, 걸핏하면 잠에 빠져드는 일상이 실은 나름 최선을 다하고 있는 담담한 애도의 시간이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
 
 
<한강에게>에는 감독이 직접 연출하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장면들이 섞여 있다. 광화문 거리에서, 시 낭독회에서 화면에 등장하는 것은 영화 속 인물이 아니라 현실에서 숨쉬고 있는 배우의 얼굴이다. 시나리오의 대사를 외우는 대신, 본인의 이름을 딴 인물을 연기하는 배우들의 즉흥적인 대사에는 온기와 생동감이 넘친다. 특히 전고운, 이요섭 감독 부부가 등장하는 장면에는 그들이 하는 모든 말을 진실로, 진심으로 믿어버리고 싶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영화의 말미, 마침내 진아는 ‘한강에게’ 라는 제목의 시를 완성한다. 자신의 죄책감과 슬픔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말을 건네는 셈이다. 한강 혹은 시간이 흘러가는 것이라면, 시를 쓴다는 것은 기억과 감정이 흘러가지 않도록 단단히 포박하는 결연하고 적극적인 행위다. 흘러가는 것들은 이내 엷어 지겠지만, 상실의 슬픔과 고통 같은 묵직한 감정은 아마도 강물 가장 깊은 곳에 가라앉을 것이다. <한강에게>는 수면에 뜬 작지만 선명한 부표처럼, 드러나지 않는 감정들이 흘러가지 않은 채 여전히 여기 있다고, 버티는 삶에 대한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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