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공사의 희로애락 장윤미, 2018

by.권은혜(한국독립영화협회 비평분과) 2019-03-25조회 4,620
공사의 희로애락 스틸

“실험적인 다큐멘터리 작업을 좋아한다.” 이삼 년 전, 어떤 지면에 내 소개로 쓴 문장이다. 다큐멘터리는 극영화와 비교하면 말하고자 하는 주제가 뚜렷한 작품들이 다수인 장르다. 하지만 그 틀을 조금만 벗어나면 극영화보다 훨씬 자유롭고 풍부한 경험을 선사하는 장르이기도 하다. “실험적인”이라는 표현은 그래서 붙인 표현이었다. 흥미롭고 신선했다. 짜인 틀을 벗어난 작품들, 실험영화라 불려도 될 작품들, 형식이 곧 주제가 되는 작품들. 그 형식 안에 답이 있는 것만 같았다. 다양한 무빙 이미지들이 범람하는 현실 속에서 영화가 가야 할 길에 대한 길을 탐험하고 제시하는 것 같아 보였다. 장윤미 감독의 영화에 대한 최초의 관심도 이런 방향 위에 놓여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녀의 영화를 보면 볼수록 생각의 방향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콘크리트의 불안>(2017)이라는 작품을 제외하면 형식이 두드러지는 작품은 없었다. 장윤미는 무심하고 대충 찍은 듯 보이지만 실은 직관적이고 순발력 있는 캐치로 대상을 포착하고, 그렇게 해서 얻어낸 생생함을 자연스럽고 천연덕스럽게 관객에게 건넬 줄 아는, 보기 드문 능력을 가진 감독이었다. 이는 실험적이라기보다는 감각적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그녀가 자신의 어머니를 다룬 <어머니가방에들어가신다>(2014)나 할머니를 찍은 <늙은 연꽃>(2015)은 별사건이 없는 가족의 일상을 스케치한 작품임에도 보는 이가 흥미를 잃지 않고 끝까지 영화를 볼 수 있게 한다. 
 

 
<공사의 희로애락>(2018)은 아버지를 찍은 영화다. 건설 노동자로 평생을 살았고, 지금도 공사 현장에서 일하는 아버지에게 가장 좋았던 기억과 힘들었던 기억에 관해 묻는다. 아버지가 들려준 이야기 중 인상 깊은 것은 광주 삼성증권 사옥을 지었을 때의 일화다. 대구에서 자재를 만들고 이를 광주로 실어 날라 건물을 올리는 방식으로 일을 진행했는데, 건물이 완성되기까지 대구와 광주를 백번이 훌쩍 넘게 오간 길을 모두 아버지가 운전했다는 것이었다. 옆 좌석에서 잠을 자는 동료에게 느꼈던 야속함과 2차선이기 때문에 사고가 곧바로 죽음으로 이어지는 88고속도로에 대한 아버지의 이야기는 아무런 감정 없이 서 있는 한 건물을 완성하는 인간의 노동이 구체적으로 얼마나 큰 희생과 고단함을 담고 있는지를 새삼 느끼게 했다. 영화의 다른 하나의 줄기는 돌아가신 지 얼마 되지 않은 할머니에 대한 아버지의 마음이다. 할머니의 죽음은 늙은 자신의 얼굴, 육체적 쇠락과 맞물려 아버지의 마음에 황혼의 우울감을 드리운다. 평소 과묵하셨으리라 짐작되는 아버지는 자신을 촬영하는 딸에게 이러한 마음을 곧잘 표현했다. 영화를 본 후 관객과의 대화에서 아버지의 안부를 여쭙지 않을 수가 없다. 아버지의 특별할 것 없는 기억과 황량해진 마음을 가만가만 돌아보던 영화가 예술만이 할 수 있는 마법을 부리는 것은 영화의 후반부, 할머니 산소 장면에서다. 소주 한 병과 소보로 빵 하나를 가지고 산소에 인사를 올리는데 하얀 꽃잎이 흩날리기 시작한다. 촬영한 때가 초여름이었나 보다. 산소를 둘러싼 아카시아나무에서 꽃잎들이 눈처럼 흩날린다. 화면은 차츰 전환되어 연꽃무늬의 커튼으로 바뀌고 상엿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돌아가신 할머니의 방이다. 아직 정리되지 않은, 할머니의 온기를 품고 있는 그 방에서 장윤미 감독의 카메라는 아버지의 눈길이 머물듯 할머니의 물건들을 고이고이 담아낸다. 아버지의 마음을 자기 자신의 방법으로 이보다 더 잘 위로할 수가 있을까. 아카시아가 흩날리며 떠오른 관객들의 미소는 할머니의 방과 함께 한 방울의 눈물이 된다.
 
지난해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공사의 희로애락>이 최우수한국다큐멘터리상을 받았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넉넉지 않은 다큐멘터리 감독들의 사정을 알기에 상 자체보다 상금이 더 축하스럽게 느껴졌는데, 상금 일부는 부모님께 드리고 나머지는 돌보던 길고양이를 구조하고 편집 장비를 마련하는 데 썼다고 들었다. 하던 일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에 전념하면서부터는 일 년에 한 편씩 새 작품을 내놓은 꾸준한 감독이긴 하지만 장비도 마련했으니 새 작품을 더 자주 볼 수 있길 바라는 관객으로서의 욕심을 지면을 빌려 조심스레 전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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