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미산 마을에 살고 있다. 생면부지의 열 가족과 함께 돈을 모아 대지를 구입해 소행주(소통이 있어 행복한 주택) 4호(먼저 지어진 건물이 3개가 있다)라는 이름의 공공주택을 지었다. 성미산 마을 주민들이 대개 그렇듯이 마을에서 이름 대신 불리는 별명도 생겼다. 과메기를 좋아해 과메기라고 지었다. 몇몇 코흘리개들은 ‘꽈배기’라고도 부른다. 이 마을에 이사 온 지 딱 1년 됐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까닭에 집단보다는 개인 생활이 훨씬 편했던 내가 이곳에 온 건 거창한 이유나 사명감이 있기 때문은 아니다. 아이가 없기 때문에 공공육아는 큰 관심이 없다. 마을 생활을 하고 싶다는 대단한 로망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천정부지로 치솟는 전셋값과 이것을 붙잡을 마음조차 없는 정부의 주택정책에 신물이 나 있던 차에 공공주택 입주자를 모집한다는 전단지를 우연히 보고 참여하게 됐다. 덕분에 내 생활은 많이 달라졌다. 다큐멘터리 <
춤추는 숲>처럼 음식을 나눠 먹고, 마을 체육대회에 참여해 함께 운동하며, 문제가 생기면 함께 고민해서 해결하고 있다.
그런데 이 ‘마을 살이’라는 걸 해보니 여간 피곤한 일이 아니다. 때로는 무척 귀찮다. 먼저 요청하지 않았는데도 이웃이 음식을 선물해주면 그 고마운 마음에 보답해야 하고, 주말에 체육대회 같은 행사가 있으면 낮잠은 포기해야 한다. 공공주택이나 마을 일에 큰 문제가 생기면 언제라도 시간을 내서 머리를 맞대야 한다. 신경 써야 할 일이 곱절은 늘었고, 그 과정에서 이웃과 소리를 높일 때도 많다. 혼자서 온갖 짜증을 내다가 이 집과 마을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게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던 중 마을에 살기 전에 봤던 <
춤추는 숲>을 최근 다시 감상했다. 예전에 알고 있던 그 작품과 너무나 달랐다. 다시 본 <춤추는 숲>은 서울에 이런 공동체 마을이 있다는 호기심, 내가 살고 있는 동네는 성미산 마을과 다르다는 상대적 박탈감과 질투심, 마을이 자본주의의 대안이라는 교훈 등 이런 메시지를 말하려는 작품이 아니었다. 남들과 함께 살려면 노력과 수고로움이 동반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다큐멘터리였다. 특히, 마을 사람들이 단체로 모여 성미산 개발 반대 운동을 하는 장면은 사람들이 공동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고, 여러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생각이 다른 이웃끼리 많은 갈등을 겪었는지, 추운 겨울에 아이를 데리고 밖에 나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수고로움을 들였는지를 함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노력을 기울여 개발의 광풍으로부터 산을 지켰다고 생각하니 공동체 생활에 익숙하지 않는 나로서는 무거운 책임감 때문에 머리가 아찔해진다. 뭐든지 간절히 바라기만 해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아주 냉혹한 현실을 깨달으면서 말이다.
이 다큐멘터리를 만든
강석필 감독과
홍형숙 감독은 2015년 부산국제영화제와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신작 <
소년, 달리다>를 선보였다. 이 다큐멘터리는 <
춤추는 숲>에 이은 성미산 마을 3부작 중 2부작에 해당되는 작품이다. 성미산 개발 반대 운동 당시 어렸던 민수와 상호, 두 소년이 성년이 된 이야기인데, 일 핑계로 아직 보지 못했다. 지나온 시간 동안 두 소년이 어떻게 자랐을지 벌써부터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