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영국 출신의 프로그레시브 록의 거장 그룹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는 반전, 반파시즘, 반 제도교육, 현대사회의 단절과 소외 등 철학적이고 사회 비판적인 메시지를 담은 기념비적 더블앨범 「더 월 The Wall」을 발표하였다. 이 음반은 당시 미국 빌보드 앨범차트에서 500주 이상 머물렀으며, 영국 앨범차트에서는 무려 911주(17년 이상)동안 머물렀고, 전 세계적으로 2,300만 장 이상 판매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핑크 플로이드의 「더 월」은 1982년 알란 파커 감독에 의해 동명의 영화로 만들어졌는데, 영화 <
핑크 플로이드의 벽 Pink Floyd: The Wall>은 음반 「더 월」의 주요한 컨셉을 가져와 전쟁에서 아버지를 잃은 주인공 ‘핑크’의 과거와 현재, 현실과 환상 그리고 실사 영상과 애니메이션의 교차 편집 등 실험적이고 충격적인 영상으로 표현하여 수많은 록음악 팬들과 영화 마니아들의 뇌리 속에 잊지 못할 강렬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영화 <
핑크 플로이드의 벽>은 배우들의 대사가 거의 사용되지 않았고 음반에 수록된 곡의 순서대로 전개되는데, 자유로운 상상을 억압하는 획일적 교육과 이를 반대하는 학생들의 데모, 정육점 고기 분쇄기로 쑤셔 넣어지는 학생들의 모습, 전쟁터로 나가는 힘없는 사람들과 반전 시위대에 가해지는 경찰들의 폭력, 외부와 단절된 ‘핑크’의 의식과 자학적인 행동, 환상 속에서 파시스트 부대의 우두머리가 되는 ‘핑크’의 섬뜩한 모습 등 파격적이면서도 정교하게 짜인 영상기호로 전체주의와 개인 소외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 또한 주인공 ‘핑크’의 성년시절을 연기한 가수 밥 겔도프는 이디오피아 난민을 돕기 위한 프로젝트 그룹 ‘밴드 에이드’를 조직하여 다양한 음악 활동을 하였는데, 이로 인해 그는 노벨 평화상 후보에 오르기도 하였다.
특히 <
핑크 플로이드의 벽>에서 제랄드 스카페(Gerald Scarfe)가 1975년부터 4년여 동안 디자인과 연출을 맡아 만든 4편의 뮤직 비디오 애니메이션은 실사 영상을 훌쩍 뛰어넘는 강렬하고 섬세한 영상으로 현대사회의 혼돈과 인간소외에 대해 근원적인 문제 제기를 하고 있는 앨범 「더 월」의 주제를 너무나도 선명하게 표현하고 있다. 일러스트레이터, 만화가, 디자이너, 무대미술가로도 활동하고 있는 제랄드 스카페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
헤라클레스>의 캐릭터 디자인과 미술을 맡아 작업한 바 있기도 하다.
가정과 학교를 상실한 소년 ‘핑크’에게 더욱 커다란 단절과 소외의 계기가 되는 전쟁의 공포를 표현한 <맑은 하늘이여 안녕 Goodbye Blue Sky>, 꽃으로 은유된 성행위 장면으로 시작해, 모든 것을 파괴하며 질주하는 벽과 현대 자본주의 소비사회의 단절감을 그린 <텅 빈 공간 Empty Spaces>, 파시스트의 우두머리가 된 ‘핑크’의 정신적 분열과 공황을 ‘해머군단’(그 유명한!)을 통해 보여주는 <벌레들을 기다리며 Waiting For The Worms>, 재판에 회부되어 유죄판결을 받는 소년 ‘핑크’를 상징하는 인형과 기괴한 이미지의 판사와 교사가 등장하여 한 편의 오페라를 보는 듯한 <재판 The Trial> 등 영화 <
핑크 플로이드의 벽>에 담겨있는 4편의 애니메이션은 연출자이자 아트 디렉터인 제랄드 스카페 특유의 미술적 왜곡과 과장, 그로테스크와 정교함이 잘 어우러져 있다. 그리고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이 4편의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시각적 기호들은 영화 <핑크 플로이드의 벽>을 대표하는 이미지로 각종 포스터와 여러 가지 매체에서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다.
음반 「더 월」은 엄청난 규모의 벽을 실제로 쌓아서 무너뜨리는 공연으로 더욱 유명한데, 특히 팀이 해체되고 독일이 통일된 직후 로저 워터스(Roger Waters)를 주축으로 베를린 광장에서 공연된 「더 월」 라이브는 록 음악 공연사상 가장 웅장하고 충격적인 무대로 기억되고 있다. 이 공연은 ‘The Wall - Live in Berlin’이라는 DVD 타이틀로 출시되어 있으며, 올해로 72세를 맞이하는 핑크 플로이드 출신의 로저 워터스는 여전히 왕성하게 「더 월」의 공연을 이어나가고 있다. 빌보드 차트에 따르면 2011년 기준으로 전 세계 콘서트 투어에서 ‘네 번째’로 많은 수익(1600억 원)을 올린 뮤지션이 바로 로저 워터스였으며, 매 공연마다 예외 없이 <
핑크 플로이드의 벽>의 애니메이션들은 공연 무대와 거대한 ‘벽면’에서 관객들과 만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