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이것은 영화가 아니다 자파르 파나히,모즈타바 미르타마스브, 2010

by.정지연(영화평론가) 2013-08-27조회 4,176
이것은 영화가 아니다

이란의 영화감독 자파르 파나히가 1997년에 연출한 <거울>에서 가장 흥미로운 장면은 여주인공을 연기하던 어린 소녀, 모하마드카니가 갑자기 카메라를 향해, ‘하기 싫어요. 그만 집에 가겠어요!’라고 외치며 촬영장을 벗어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극 중 소녀가 연기해야 하는 상황은, 학교가 파한 후 엄마가 데리러 오지 않자 혼자 버스를 타고 집을 찾아가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버스는 집으로 향하지 않았고, 뭔가 잘못됐음을 깨달은 소녀는 불안해하는 모습을 연기해야만 했다. 그런데 불현듯 모하마드카니는 영화촬영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소녀는 영화 속 그녀와 달리 집으로 가는 법을 정확히 알고 있었고, 그것은 현실의 자신과 너무 다르다는 것이었다. 소녀를 달래며 곤란해하는 스태프들. 그러나 자파르 파나히 감독은 다른 선택을 한다. 파나히 감독은 소녀가 원하는 대로 촬영장을 떠나게 해주고, 대신 소녀가 실제 자신의 집으로 향하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한 것이다. 이 순간 영화는 창조적 가공이라는 허구적 세계에서, 모하마드카니라는 소녀의 실제 공간으로 옮겨간다. 극 중 캐릭터가 아니라, 그녀 자신으로서 온전한 이란사회를 향해 걸어가는 것이었다. 자파르 파나히 감독은 이때부터 이미 영화와 현실, 극영화와 다큐멘터리, 예술과 정치가 어떻게 마주하고 있는지 탐구하고 있었다. 

2011년 칸 영화제에 깜작 상영된 자파르 파나히의 영화 <이것은 영화가 아니다> 역시, <거울>에서 보여주었던 영화와 현실, 그 경계에 선 작품이다. 2010년 12월 자파르 파나히는 이란 정부에 의해 6년간 수감, 20년간 영화 연출, 각본, 인터뷰 등 모든 행동을 금지당한다. 자파르 파나히의 작품 활동이 이란 정부의 안전과 이슬람 문화에 대한 심각한 위협을 초래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파나히 감독은 2009년 각종 논란 속에서 재선에 성공한 마무드 아메디네자드 대통령에 관한 작품을 진행 중이었다) 법정 판결에 불복한 자파르 파나히 감독은 가택연금 상태에서 법원의 최종 판결을 기다리고 있었고, 이란의 동료 감독들은 물론이고 전 세계의 영화인들, 국제사면위원회, 인권단체 등이 그에 대한 법적 탄압을 중단할 것을 이란 정부에 요구하고 있었다. 

<이것은 영화가 아니다>는 그 논란의 한 복판, 공식적으로 영화 연출은 물론이고 시나리오를 쓰는 행위조차 금지당한 한 창작자의 억눌린 현실과 영화에 대한 열정, 폐쇄된 공간과 뉴스를 통해 들려오는 엄혹한 현실에 대한 영화이다. 신년맞이 행사로 들떠있는 이란 사회. 아내와 자식들은 쇼핑을 나가고 혼자 집을 지키던 자파르 파나히 감독은 다큐멘터리 감독, 모지타바 미르타마숩을 집으로 청해 자신을 둘러싸고 진행 중인 현재적 문제들과 구속 전에 써두었던 시나리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이러한 상황들은 파나히의 디지털 캠코더와 아이폰 등으로 촬영된다. 특히 그는 자신이 찍고자 했던 시나리오를 설명하는 데 집중한다. 전통적인 이란 가족에서 성장한 소녀가 부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대입 시험에 합격하게 된다. 그러자 부모는 소녀가 대학에 가는 것을 막기 위해 소녀를 집안에 감금한다. 대학 등록 마감일, 소녀는 집 밖으로 탈출하고자 안간힘을 쓴다. 자파르 파나히는 그 자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극 중 소녀의 공간과 심리를 설명하기 위해 거실에 가상 공간을 그려놓고, 신 하나하나가 어떠한 앵글과 동선으로 촬영될지 혼신을 다해 설명한다. 그러나 불현듯 허무함을 느낀 자파르 파나히 감독은 “영화를 말로 할 수 있다면, 왜 굳이 영화를 만들겠어..”라고 탄식하며 돌아서고 만다.

<거울>에서 어린 소녀가 영화 속 가짜 캐릭터가 아닌, 현실의 모습으로 돌아서는 순간처럼, 자파르 파나히 감독은 자신 앞에 놓인 카메라를 향해, 허구를 창조하는 감독으로서가 아니라, 창작을 봉쇄당해 부대끼는 인간 자파르 파나히의 모습을 온전히 드러내기로 작정한다. 혼자만의 식사와, 애완 이구아나를 보살피는 모습, 전화를 통해 외부 상황을 전해 듣는 모습, 그러다 동료 감독을 집으로 청해 카메라를 돌리며 소소한 이야기들을 나누고 기록하는 모습. 이것은 흡사 자파르 파나히가 지난 시간 동안 자신의 영화 속에서 은유하고 묘사했던 이란 사회를 자신의 집안으로 옮겨와 스스로 주인공을 연기하는 것과 마찬가지가 되어버린 것이다. 

해가 지고 어둠이 내리자 아파트 외부 공간으로부터 (법적으로 금지된) 불꽃놀이 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한다. 흡사 총성처럼처럼 들려오는 소음들 속에서 파나히 감독은 쓰레기를 수거하러 온 한 청년과 마주하게 된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연말의 흥분에 들떠 집을 비운 아파트. 그 안에 감금된 파나히 감독과 학비를 벌기위해 그들의 쓰레기를 치우는 한 청년의 대화는 파나히 감독의 카메라에 고스란히 기록된다. 예술대학에 다니는 청년의 남루한 노동과 영화 만들기를 금지당한 초로의 감독이 비좁은 엘리베이터에서 소소한 대화를 나누다, 1층 아파트 밖으로 나서게 된다. 어둠이 깔린 도로에서는 불꽃놀이를 위한 화염이 피어오르고, 그곳을 향해 쓰레기를 비우러 가던 청년은 뒤돌아 감독에게 일러준다. “파나히씨, 밖으로 나오지 마세요. 이러다 사람들이 당신이 촬영하는 모습을 보겠어요” 신년을 맞이하는 불꽃의 화려한 열정이 파나히 감독에게는 위협적인 화염으로밖에 비치지 않는다.

이 작품은 칸에서 상영되기까지, 이란 정부의 삼엄한 조치 때문에 통상적인 초청과 상영 절차를 밟지 못했다. 상영정보는 영화제 개최 열흘 전에야 공개됐고, 작품은 이란에서 파리로 운송되는 케이크 속에 usb 상태로 감추어져 공수되었다. 이란 정부는 끝내 자파르 파나히 감독의 영화제 참석을 불허하였고, 대신 그의 아내와 딸이 영화제에 참석하였다. 영화의 제목 ‘이것은 영화가 아니다’는 르네 마그리뜨의 작품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에서 착안한 것임을 감독은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상과 표상(언어, 이미지)은 근원적인 거리를 둘 수밖에 없다. 영화의 중반 “영화를 말로 할 수 있다면, 영화를 굳이 왜 찍겠는가” 라던 그의 탄식은 영화에 가 닿지 못하는 그의 현실적인 제약을 상기한다. 그러나 이것은 동시에 ‘영화’ 촬영을 금지하는 당국에 대한 그의 영화적 응수이기도 한 것이다. “이것은 영화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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