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을 할 수 있을 것만 같았지만,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시절. 몸은 담배도 먹고 술도 먹지만 마음만은 숭둥이었고 애기였던 시절. 우물 안 개구리였던 시절...
영화 <
경복>(
최시형, 2012)은 그 우물 안으로 카메라를 가지고 들어간다. 이제 막 경복고등학교를 졸업한 주인공 형근은 그의 고등학교 친구 동환과 함께 룸메이트를 하면서(그래봤자 형근 부모님이 운영하는 슈퍼마켓 위에 달려있는 조그만 쪽방에 얹혀사는 것이지만) 문득 독립을 해보기로 결심하지만, 하지만 웬걸... 정작 독립을 하려고 해도 딱히 대학도 못갔고 마땅히 할 일도 없는 그들에겐 돈이 없네. 기타 치고 술을 먹고 담배도 피면서 그들은 자신들이 살던 쪽방에 세를 주고(보증금은 듬뿍!) 목돈을 모아보기로 하지만, 하지만 웬걸... 세입자 후보마다 보증금 좀 깍아달라며 칭얼대고, 하지만 웬걸... 경복고등학교 동문선배라는 자가 담배를 사러 왔다가 젊은이들은 세계를 향해 나아가야한다며, 자신은 비록 광화문에서 양꼬치를 팔고 있지만, 청춘의 본질은 세계를 꿈꾸는 것에 있다며 주사, 하지만 웬걸... 저기 저 중국에서도 공허를 견디지 못한 몇몇 젊은이들이 폭탄테러를 감행했다는 이야기가 들려오고, 계속해서 웬걸... 웬걸...
<
경복>의 모든 나지막함이 이 “웬걸”에 있다. 짐짓 어른인 척 흉내내는 행보다는, 그 행과 행 사이에 스며드는 공백, 즉 행간에 <경복>의 모든 고뇌와 우수와 아름다움이 자리를 편다. 술을 먹고 담배를 피우고 기타를 치는 행은 성장할 것이다. 그러나 그 성장의 마디마디마다, 켜켜이 참견하고 겐세이를 놓던 어린 친구들의 불안한 표정들, 겉으로는 아닌 척해도 어쩔 수 없이 상처받는 마음과 떨고 있는 손과 다리, 그들이 미래의 불투명성에 내주었던 눈물들... (영화 내에 몹시도 맛깔난 대화씬들은 이 행간으로 구성되었다. 그것은 코믹이기도 하면서 우수이기도 하다.) 우물 안에서 올려다본, 그래봤자 손바닥만했던 하늘은, 경복을 졸업했기에 어른이면서도 아직은 어린이인, 그래서 어른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린이도 아닌, 어른과 어린이의 “사이”의 색깔이다. 경복고등학교 졸업자인 그들에게 길이란, 교차로의 집합인 것이다. 우린 아닐까? 다 성장했고, 다 컸다고 착각하는 우리는? 우리가 꿈꾸는 저 하늘은 우물의 POV가 아니고?
이 모든 것은
최시형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이다. 그는 스스로를 바라보고 그렇게 자신의 시선이 자신에게로 돌아오는 회귀의 궤적으로부터, 나(보는 자)와 자아(보여지는 자) 사이의 행간을 추출하고, 또한 쑥스럽고도 솔직하게 고백한다. 그 때 자신은 행간을 흐르는 개구리의 눈물이었다고. 개구리 최시형 감독의 본명이, 경복 고등학교 졸업자 유형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