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영화들은 그 스스로가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영화 자체의 힘으로 시작과 끝을 맺으며, 감독은 이 영화가 이렇게 끝맺어 짐을 조용히 지켜볼 수밖에 없는 영화들 말이다. 희망버스 투쟁기를 다룬 <
버스를 타라>도 그런 생명력을 지닌 영화다. 영화 안의 다양한 주인공들(희망, 사람, 연대)이 저마다의 생명력으로 모여 해피엔딩으로 이어질 때 우리는 극적 반전이 아닌 것에 안도하며, 세상에 대한 희망을 안고 객석을 떠날 수 있는 영화. <버스를 타라>는 바로 그런 영화다.
영화는 평범한 부산 도심을 비추면서 시작한다.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 움직이는 자동차, 그리고 한 기업 건물(한진 중공업). 그렇지만 화면에 입혀진 오디오와 투쟁 승리를 알리는 플래카드는 결코 이 거리가 평범하지 않았음을 알려준다. 영화의 시작과 함께 들리는 오디오는 바로 희망버스를 탄 사람들의 목소리로 그들이 이곳에서 어떤 희망들을 이야기 했는지 영화는 말해준다.
노동자들의 연이은 죽음이 더 이상 충격으로 다가 오지 않는 세상, 한 여성이 크레인에 자신의 생명을 걸고 고공 농성을 벌인다. 한진 중공업 사태 해결을 위해 크레인에 몸을 실은 김진숙 지도위원의 모습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액션’을 취하게 만들었다. 크레인 농성 150여일째, SNS로 모여진 익명의 사람들이 희망버스라는 이름으로 내려온다. 이들은 영화 안에서 이야기 했듯이 어떠한 소속도, 어떠한 배후도 없다.
또한 그 어디서도 보지 못한 난장을 한진중공업 안마당에서 신나게 벌인다.
한진 중공업 사태가 해결되기까지 수차례에 걸쳐 내려온 희망버스는 영화 소제목 그대로
1. 넘어서다 -기존 집회와 참여자들의 틀을 넘어서면서 2. 몸으로 알다 - 경찰의 강경진압으로 최루액을 맞아가며 세상의 모순을 몸으로 알게 되고, 3. 축제- 인식과 이해의 과정을 넘어 하나의 축제로 귀결된다.
세상을 단절시키는 인터넷이 역으로 익명의 사람들을 한자리로 묶어 내고 희망버스가 움직일수록 참여자들과 노동자들 가슴에 희망의 싹이 점점 커짐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김진숙 지도위원이 1연녀 만에 크레인에서 지상으로 첫 받을 힘차게 내딛는 모습을 감동적으로 전하며 영화는 끝난다. 희망버스가 어떠한 배후와 세력 없이 스스로가 지닌 생명력으로 진화하듯 이에 맞춰 영화도 희망을 이야기 하며 끝을 맺고 있다.
지난 국회의원 선거를 보며 개인적으로 많이 실망하고 우울했다. 투표 결과가 내 주변의 사람들과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보편적이지 않음을 확인 시켜주었기 때문이다. <
버스를 타라>라는 영화 안에서도 김진숙 지도위원을 빨갱이로 몰거나 지역주의와 가족주의로 포장되며 희망버스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모습들로 다른 시각을 보여준다. 그러나 영화 초반부, 거대 플래카드에 쓰인 ‘사람이 꽃이다’라는 선언처럼 “김진숙을 살려야 겠다”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모여진 익명의 사람들이 만들어낸 힘은 보편적이진 않아도 타당한 가치임을 또다시 사람에게 희망을 걸게 만든다.
이는 2012 인디다큐페스티발에서 세상에 대한 무력함이 다시 희망으로 바뀌는 과정을 우직하고 성실하게 기록한 영화라는 심사평과 함께 <
버스를 타라>를 올해의 다큐멘터리로 선정한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영화 에필로그 장면, 남겨진 94명의 노동자들과 희망버스 관계자 두 명에게 구속 영장이 발부됐음을 보여주며 마지막으로 올라가는 타이틀 <버스를 타라>는 세상 밖 다양한 현장에서 다시금 희망버스에 탈 때가 왔음을 선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