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봄베이 비치 알마 하렐, 2011

by.문정현(다큐멘터리 감독) 2011-11-08조회 1,625
봄베이 비치

최근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에 반대하는 단편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의 자연이 그리고 그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는 우리네 마음이 얼마나 황폐해지고 있는지를 기록한 영화다. 영화를 만드는 중 인터뷰의 대상이었던 어머니가 ‘넌 왜 항상 이렇게 어둡고 힘든 것만 이야기 하냐?, 세상 사람들 다 자기들이 힘든 거 알고 있거든, 너만 알고 있는 게 아닌데 왜 계속해서 이런 이야기만 고집하는지 모르겠다. 밝고 희망적인 것을 찍어야지!’ 라고 말씀하셨다. 영화 속에서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값싼 감동이나 희망은 누구든 이야기 할 수 있지만 정말 우리의 절망적인 현실을 보지 보여주지 못한다면 그 절망을 딛고 만들어질 희망도 없는 거야, 그래서 내 영화는 항상 이렇게 어둡고 힘들고 날이 세워져 있는 것 같아”. 나는 항상 이런 식이다. 그래서인지 값싼 희망을 이야기하는 소위 1세계 출신 감독들 혹은 프로덕션의 다큐영화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아프리카 혹은 동남아시아의 아프고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이야기들을 포획하듯 가져와 그들의 시청자들이 좋아할 만한 이야기로 가공하는, 이런 식의 이야기는 깊이 있는 문제의식을 담보하지 못할뿐더러 시청자들의 속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진정함을 확보하지 못한다. 사실 이들의 이야기는 태생자체가 방송을 기반으로 하기에 감독들은 시청자들의 취향과 구미에 맞는 소재를 선택할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감독의 문제의식은 이 소재에 함몰되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많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최근 제작하고 있는 다큐에서 나 역시 비슷한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뉴타운 개발에 희생되고 있는 세입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이들의 고통을 단지 관심을 끌 수 있는 하나의 소재로 택하고 있는 건 아닌지, 보편적인 감성을 담보하지 못한 채 이 천박한 자본의 구조에 대해 날을 세우고만 있는 건 아닌지, 많은 고민을 하게 되었다. 2011년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본 알마 하렐 감독의 <봄베이 비치>는 이런 나의 혼란스러움에 큰 자극을 주었다. 

영화는 한 때 최고의 휴양지였던 캘리포니아 남부의 봄베이 비치의 현재를 기록한다. 감독은 이 황량한 사막도시에 살아가고 있는 가난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작은 카메라에 담는다. 화면에 보이는 것만으로도 이들의 삶이 얼마나 주류사회에서 이탈되어 있는지, 그리고 소위 정상의 기준으로 이들의 삶이 과연 상식적으로 해석 가능한 것인지, 감독은 열악한 그들의 삶을 그리고 그 사실을 극사실로 만들어가고 우리는 마치 꿈을 꾸듯 이들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이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 매우 곤란한 지경에 이르게 된다. 그런데 묘하게도 이들을 대하는 카메라는 따뜻하고 아름답기만 하다. 그들 안에 산적한 많은 문제와 갈등, 심한 소외와 고립에도 불구하고, 이들 역시 숨을 쉬고, 밥을 먹고, 노래를 하고, 춤을 추고, 사랑을 하고, 서로를 위로하고 돌보는, 지극히 평범하고 보편적인 인간의 삶을 살아가고 있음을 카메라는 증언한다. 값싼 동정이 아닌 이들을 위로하고자 하는 제작자의 태도 때문인지,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의 여유와 정직, 따뜻함 때문인지 피사체가 되는 대상들은 감독과 함께 마치 뮤직비디오 한 편을 찍는 것처럼 때로는 연기를 하고 때로는 자신들의 거칠고 열악한 삶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영화는 전반적으로 한 편의 뮤직비디오나 극영화처럼 보인다). 힘들고 절망적인 현실을 그저 바라만보고 분석하는 사람이 아닌 하지만 바로 나와 우리의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다면 그 안의 삶의 숨소리가 그리고 그 연속함이 바로 희망의 단초가 되는 것이 아니냐고. 이것이 삶의 진정한 순간이 아니겠냐고, 이 영화의 감독과 봄베이비치 사람들은 입을 맞추어 함께 이야기한다. 그래서인지 너무나 슬프지만 아름답고 긍정적인 이 노래가 부조리한 우리네 현실을 재인식하게 해주는 그리고 나와 우리가 실천 할 수 있는 영역을 고민하게 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머니가 말했던 나의 영화가 ‘가난과 차별과 소외에 관한 사회, 구조적인 조건들’에만 초점을 맞추는 이야기였다면 <봄베이 비치>는 이를 전제로 하되 그 안을 살아가는 주체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과 따뜻한 시선을 통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매우 능동적이고 전략적인 영화였다. 다큐영화의 소재가 가지는 선정성과 자극함이 영화 전체를 좌우하는 경우도 있지만, 정작 겸손한 자세로 대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고 감독 자신의 철학과 미학으로 이를 재가공하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창작의 영역이자 우리가 찾고자 하는 진실로의 긴 여행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현재를 질문할 수 있는 영화를 위해 세상과 충돌하고 대상과 교감하며 이를 아우를 수 있는 나만의 화법 혹은 재현의 방법에 대해 깊이 있는 고민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내가 편협하게만 바라봤던 소위 1세계 감독의 영화에서 배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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