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밸런스 크리스토프 라우엔슈타인 , 볼프강 라우엔슈타인, 1989

by.전승일(애니메이션 감독) 2011-05-30조회 2,020
밸런스

어디인지 알 수 없는 빈 공간의 작은 판 위에 다섯 명의 남자가 서 있다. 남자들은 똑같이 생긴 기다란 검은 외투를 입고 있고, 등에는 서로 다른 숫자가 적혀 있다. 허공 속의 판 위에서 한 사람이 움직이면 균형이 깨져 한쪽으로 기울어지고, 또 다른 사람은 판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반대편으로 이동해야 한다.

이윽고 남자들은 품에서 낚싯대를 꺼내 허공에 던지고, 한 사람이 나무상자를 낚아 올리는데, 이로 인하여 판에는 새로운 균형 관계가 생긴다. 태엽장치로 음악이 흘러나오는 이 나무상자는 남자들이 위치를 옮길 때마다 균형의 원리에 따라 이리저리 움직인다. 남자들은 판의 균형을 깨뜨리고 또 다시 맞추면서 이동하는 나무상자를 서로 차지하려고 싸우기 시작하고, 결국 한 사람과 나무상자 만이 판 위에 남게 된다.

단편애니메이션 <밸런스 Ballance>는 독일의 쌍둥이 형제 애니메이터 크리스토프 라우엔슈타인(Christoph Lauenstein)과 볼프강 라우엔슈타인(Wolfgang Lauenstein)의 1989년 작품으로 그 해 아카데미 어워드에서 최우수 단편애니메이션 상을 수상한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이다. 1962년 독일의 작은 도시 힐데스하임에서 출생하여 1985년 함부르크 예술학교에 입학한 라우엔슈타인 형제는 당시 27세의 신예 감독으로 16미리 카메라를 사용하여 학생 작품으로 이 의미심장한 주제를 담고 있는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다.

소유와 정복을 향한 전쟁의 허망함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한 캐나다 NFB의 애니메이션 감독 노만 맥라렌(Norman McLaren)의 단편애니메이션 <이웃 Neighbours>(1952)을 연상하게 하는 <밸런스 Ballance>는 불길하고 우울한 유머를 담고 있는 블랙 코미디 애니메이션으로 인간의 이기심과 소유욕에 대한 비판적 메시지를 담고 있는 정치적 우화(寓話)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시놉시스에 ‘floating platform’으로 표기되어 있는, 아무 것도 없는 허공에 마치 시소처럼 떠 있는 작은 ‘판’ 위에서 밖으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 또 나무상자를 차지하기 위해 균형을 맞추면서 이리저리 자리를 옮겨 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은 여전히 분쟁과 대립이 멈추지 않고 있는 지구촌 인간 군상에 다름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결국은 아무도 갖지 못하는 음악이 나오는 나무상자는 어떤 아름답고 이상적인 것에 대한 공유와 공존의 중요성을 새삼 묵직한 울림으로 제기한다. 

라우엔슈타인 형제는 <밸런스 Ballance> 이후 MTV, 나이키, Zeit TV, 코카 콜라 등과 같은 상업 광고와 TV 스팟 제작을 통해 그들만의 독특한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스타일을 구축해나간다. <밸런스 Ballance>에 대한 비평적 분석과 제작 뒷이야기는 감독이자 저술가인 올리비에 코트(Olivier Cotte)의 (국내에서는 <오스카 애니메이션>으로 출간됨)에 수록되어 있다.

작품 보기 : http://www.youtube.com/watch?v=vZiEt5RUYS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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