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종로의 기적 이혁상, 2010

by.권우정(다큐멘터리 감독) 2011-05-17조회 2,932
종로의 기적

‘여전히 우리에게는 해야 할 말과 행동이 있다’
이 영화를 보고 난 첫 느낌이 그러했다.

액티비즘과 일상의 경계에서 새로움에 대한 갈증으로 주관적 다큐, 성찰적 다큐, 모큐멘터리 등... 다양한 이름들로 채워지고 있는 현 다큐영역의 변화도 안에서 ‘종로의 기적’은 여전히 우리들에게 아직도 해야 할 말들과 행동이 있음을 묵묵히 게이들, 그들의 목소리에 올곧이 귀 기울인 영화다

영화는 영화를 통해 공식적으로 커밍아웃한 당당한 5명(영화감독 소준문, 인권운동가 장병권, 요리사 최영수, 직장인이자 인권운동가 정욜 그리고 감독 이혁상)의 게이들의 삶과 사랑 이야기다. 어찌 보면 일상적 로맨스로 상큼하게만 느껴질 수 있는 이야기들이 게이이기에 아직은 특별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들로 영화는 채워져 있다  대규모 영어 학원가이자 밤늦도록 취할 수 있는 직장인들의 술자리, 혹은 노인들의 휴식처로만 익숙한 ‘종로’가 게이들에게는 자신들의 삶을 사랑할 수 있도록 ‘동지’를 만날 수 있는 치유의 공간이기도 하다.  영화제목 그대로 종로는 5명의 주인들에게 ‘기적’으로 자신들의 인생의 황금기를 만들어 나가는 장으로서 역할을 해내고 있는 것이다 

영화의 첫막은 소준문 감독에서 시작한다. 단편영화 감독으로 자신의 입지를 굳히고 있던 소준문 감독은 영화 현장 안에서 감독이라는 위치에서 강요되는 권력이 못내 부담스럽다. 이는 소준문 스스로가 이야기 했듯이 감독이 아닌 게이로서 영화 현장 안에서 자신을 매순간 공식적으로 게이임을 커밍아웃해야 되는 현실이 버겁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히 감독만이 아니라 일상의 현장에서 소통의 단절이 항상 이반들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매 순간 강요시키게 되는 모습임을 볼 수 있는 부분이기도 했다. 영화가 중간에 엎어지기도 하지만 소준문은 끝내 다시 영화 현장으로 돌아오고 새롭게 영화를 시작한다. ‘끝나지 않은 숙제’라는 영화 소제목처럼 영화제작이 그에게는 자신의 예술적 표현만이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시키고 일반과 소통하는 숙제임을 받아들이는 과정이기도 했다. 

소준문 감독과 더불어 이 영화에서는 4명의 주인공이 각 주인공간의 개연성을 갖기 보다는 각 파트별로 영화가 전개되는데 영화를 보면서 가장 인상적으로 다가온 주인공이 3번째 막의 주인공인 최영수라는 인물이다. 인권운동가로 영화감독으로 자신의 위치를 공고히 하고 있는 다른 주인공들과 달리 최영수는 자그마한 식당을 운영하는 요리사로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물이다. 20살에 경북 영주에서 서울로 상경하여 십여년 동안 이반 친구 하나 없었던 그에게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된 것은 바로 종로의 기적처럼 종로에서 우연히 만난 ‘친구사이’ 선배를 통해서다. 30대 중반의 최영수는 G보이스 합창단을 통해 주말 저녁 영업까지 포기하며 노래 연습에 매진하고 술과 춤을 즐긴다. 말 그대로 인생의 황금기를 맘껏 만끽하고 있었다. 자신에게 맞춰지는 촬영에 부담스러워 하면서도, 귀여운 욕들을 퍼부으며 머쓱해 하는 그가 문득문득 진중하게 때로는 열정적으로 자신의 삶을 사랑하고 있는 모습이 보는이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미소를 머금게 한다. 영화의 후반부, 뜻밖에 소식으로 관객들에게 놀라움을 선사 하는데 감독은 죽음이라는 파장보다는 최영수 인생의 황금기에 더욱 집중하며 안타까움이 아니라 행복했던 그의 모습의 더 많이 각인되길 원하는 듯하다.  영화는 주인공들과의 만남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간 감독의 긴 기다림과 소통이 있 있었기에 조금은 대상화 되거나 선정적으로 비춰질 수 있었던 게이들의 이야기가 삶의 평범함으로 다가올 수 있게 만들었던 거 같다.

중간 중간 밥도 같이 먹으며 챙겨주는 김밥도 먹어가며.. 이들의 삶의 친구처럼 함께한 감독과 주인공들의 유대감이 틈틈이 엿보인다.  사실 영화를 보는 내내 영화 이후의 주인공들의 삶이 더욱 궁금해졌다. 아직은 직장 내에서 자신을 커밍아웃하지 못한 정욜이 공식적으로 영화를 통해 커밍아웃한 이후의 모습들.. 그리고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어떠한 깨달음과 변화들을 가져갈지도.... 그만큼 5명의 주인공들이 자신의 안정된 공간을 너머 영화를 통해 대중들과 소통하고자 하는 용기와 의지.. 또 그 안에서 겪어야 될 다름이라 포장된 차별을 어떻게 부서내고 당당하게 커밍아웃할지가 그 행보가 더욱 중요해지는 영화다.  그러하기에 6월 개봉을 앞두고 종로의 기적 앞에 붙여진 ‘최초의 게이 커밍아웃 다큐멘터리’라는 화두는 다름이 아니라 다양성이라는 이름으로 소통하기 위한 첫 액션일지 모른다. 

일상이 아닌 기적으로 게이들에게 종로가 다가오듯이 ‘다름’이 일상이 아닌 ‘차별’로 비쳐지는 한, 이 영화는 여전히 우리에게 아니 우리들은 해야 할 말과 행동이 있음을 이야기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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