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평도 사건이 일어난 뒤 정부는 바로 '확전을 막아라'고 지시했고, 다음날에는 '막대한 응징을 하라'며 말을 바꾸었다. 사람들은 보온병을 폭탄으로 착각한 이를 두고 농담을 짓껄였고, 위정자들은 이런 일이 터질 때마다 매번 그렇듯 반북 분위기를 고조시키며 안보 강화와 전쟁을 부축이는 글들로 가득했다. 한 신문의 논설위원은 '국민이 3일만 참아주면' 북한을 공격하여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다고 했단다. 누군가는 기사에 `전쟁시 우리들 모두가 목숨을 받혀 싸우자. 그렇지 않은 놈들은 매국 겁쟁이들`이란 댓글을 달았다. 끔찍한 건 그 댓글이 그 기사의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글이었다는 점이었다. 곧이어 각종 인사들의 병역기피가 다시 논란이 되었고, 기다렸다는 듯 계획되었던 군복무 기간단축은 없던 논의가 되었고, 물론 대체복무제도 다시 한번 기약없이 미뤄졌다. 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 최근 이 반도에 드리워진 그림자를 체감하며 떠오른 이들.
다큐멘터리 <
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은 2001년 12월 오태양씨 병역거부선언에서부터 시작한다. 지금은 익숙해진 양심적 병역거부란 이름으로 군복무를 공식적으로 문제제기한 그. 그를 통해 지난 10년간 우리는 모두에게 양심적 병역거부란 이름이 더이상 낯설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그 이전부터 남한은 매해 종교의 신념으로 500여명이상 집총을 거부해온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수의 병역거부자를 감방에 처넣은 국가로 기록되어 왔다. 바로 여호와의 증인들이다. 삼형제가 종교인으로서 병역거부를 한 집안에 여인은 말한다. '앞으로도 상황이 바뀌지 않는다면 아들도 미래에 감옥에 가야되니 걱정'이 된다고. 몇대에 걸쳐 그들은 같은 운명에 처해질까? 또 다른 여호와의 증인은 7년 10개월이라는 기간 동안 여호와의 증인로서 최장기수로 살았다. 24살에 들어가 34세가 되어 끝난 옥살이. 의대생이었던 그는 이제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70년대 그 이후보다 더 가깝게 느껴져요. 내 삶에서 80년대는 없어요. 사람들은 7년이 뒤쳐졌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 이상이예요. 내가 감옥에 있는 동안 난 제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뒤로 가고 있었어요.' 그의 잃어버린 시간은 누가 보상할 수 있는가?
이후 미국의 이라크전이 발발하며 파병국가로 전쟁을 참여한 국내 반전 열기와 함께 많은 정치적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이 나타나며 영화는 병역거부를 둘러싼 사회의 좌/우의 명사들이 나와 지지/반대의 의사를 표명하기도 하고, 남한의 징병제의 역사를 간단히 맵핑해주기도 하지만, 오히려 이 많은 이야기를 단편적으로 드러내면서 주제에 깊이 천착하지 못한 채 맴돌며 영화를 평범한 병역거부 브로슈어처럼 보이게 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 영화가 아직 우리에게 병역을 거부할 권리란 것이 무엇인지도 몰랐을 때 제작되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역사상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평화 시기는 한국전쟁 이후 현재가 가장 길다고 한다. 평화 시기? 그렇지 않다. 60년간 남북간 직접적 공격은 없었을 지언정 남한에서는 지속적으로 군사주의와 전쟁 이데올로기에 `전쟁`해온 이들이 있다. 말마따나 그들은 겁쟁이고 병역기피자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전쟁을 지지하고 두려움의 공포로부터 생존을 지키려하는 당신 역시.
'의사이면서 평론가였던 마쓰다 미치오는 아시아태평양 전쟁에서 일본군으로의 병역을 거부한 사람들의 증언을 읽은 후, 비전향을 관찰하는 굳은 의지가 고통과 죽음에서 어떻게든 벗어나고자 하는 두려움이 바로 병역 거부를 낳았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또한 침략전쟁에 가담하게 된 것도 사실은 이 두려움 때문이라고 기술한다. 병역 거부와 전쟁 참가. 두려움은 역사를 구성하는 어떤 쪽의 세력도 될 수 있는데, 많은 일본국민은 전쟁에 가담하는 쪽으로 기울었다.' (도미야마 이치로 [폭력의 예감] 중)
추신: <
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과 함께
김환태 감독의 <
708호, 이등병의 편지>, <
원폭 60년, 그리고...>도 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