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원 나잇 스탠드 민용근, 이유림, 장훈, 2009

by.김이환(소설가,독립영화 칼럼니스트) 2010-03-02조회 3,708
원 나잇 스탠드

<원 나잇 스탠드>는 민용근, 이유림, 장훈 세 감독이 하룻밤의 섹스를 소재로 만든, 서로 다른 단편을 하나로 묶은 옴니버스 영화이다. 꼭 원 나잇 스탠드라는 소재에 집중하기 보다는 그 단어를 들었을 때 상상하는 에로티시즘에 근접하려 노력하는 영화들이면서, 어느 순간 관객의 예상을 배반하고 멀리 나아가며 결론을 내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이런 공통점이 영화의 성격을 구축한다.

이를테면 민용근 감독의 에피소드는 자극적인 소재를 차용하고 있으나 이야기는 예상과 다른 방향으로 흐른다. 검은 선글라스를 쓰고 방에 틀어박혀 있는 여자가 있고 매일 밤 이웃집 여대생의 집에서 나는 소리를 청진기로 엿듣는 청년이 있다. 영화는 자극적인 이야기를 풀어놓기 보다는 인물들의 일상이 천천히 교차되면서 서로에게 다가가는 상황을 보여주고 있으며, 그럴수록 영화가 집중하는 것은 섹스 보다는 두 인물의 감정을 처연하게 드러내는 것임을 확인한다. 여자가 생라면을 케첩과 함께 씹어 먹는 장면이 가장 대표적인 순간일 것이다. 저 인물이 도대체 왜 저러는지 갖게 되는 의문은 이야기의 흐름과 함께 인물에 대한 감정으로 변화하는데, 마치 여자와 청년의 관계가 영화와 관객의 관계로 전이되는 것 같다. 이런 성격은 민용근 감독의 이전 영화들과도 겹쳐지는 부분이다.

이유림 감독의 에피소드는 소설 <보바리 부인>을 모티브로 삼고 있으며, 갓 결혼한 남자와 그의 젊은 부인이 주인공이다. 남자의 꿈과 욕망과 상상과 의심이 뒤섞여 있는 이 이야기는 이유림 감독의 이전 영화들이 그랬듯 선형적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이미지와 대사가 어긋나고 편집이 이야기를 흩어놓는 동안, 영화는 평범한 신혼부부의 평범한 아침으로만 보이던 장면에서 바람난 부인의 이야기로 넘어갔다가, 나중에는 스와핑 이야기로 변하더니 갈수록 더 짙은 에로티시즘을 향해 다가간다. 확실한 건 부인이 자신의 생각을 전혀 드러내지 않아 남편이 괴로워할수록 부인은 더 멀리 도망가면서 성적으로 일탈한다는 것이다. 결국 남자도 관객도 부인의 심리를 알 수 없는데, 이는 남자가 그녀를 자신의 욕망을 통해서만 바라보기 때문에 마치 부인이 논리 없는 욕망을 가지고 행동하듯이 보일 뿐이며, 그런 오해를 되돌아보기를 원하고 있다. 어찌 보면 영화는 남편의 방황을 통해 관객 역시 방황하기를 바라는 듯하다.

장훈 감독의 에피소드는 에로티즘과 그다지 상관없어 보이는 지점에서 출발한다. 한국에 찾아온 영화 평론가 장 끌로드 로메르 씨의 여행담으로 시작하는 이야기는, 배우 권해효의 나레이션이 상황을 너무나 천연덕스러운 유머로 덮으면서 다른 생각할 틈 없이 관객을 웃기기 시작한다. 장 끌로드 로메르 씨는 목욕관리사에게서 때를 미는 문화를 좋아하는데, 타인에게 알몸을 내맡기고 몸 구석구석에 손을 대도록 허락하는 이 문화는 민망함과 에로틱함이 결합된 긴장 가득한 소재이다. 그리고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하듯이 영화는 동성애 코드를 삽입하면서 긴장감을 극적으로 끌어올린다. 이 긴장감이 엉뚱한 방향으로 터지면서 만들어지는 유머가 이 영화의 중심이다. 주인공으로 보이던 장 끌로드 로메르 씨가 아닌 ‘때밀이’ 진영이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변화 되면서, 진영이 만드는 난처한 상황들의 유머는 정말 완벽하게 관객을 휘어잡는다. 장훈 감독의 이 마지막 에피소드는 에로티시즘을 기대했건 기대하지 않았건 관객에게 큰 즐거움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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