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의 못다 한 이야기는 인물들이 살아가는 '도시 공간'에서 계속되기도 합니다.
조금의 시차는 있지만, 카메라가 남긴 이미지와 함께 그 이야기를 돌아봅니다.
영화를 볼 때, 첫 3분에서 5분 가량의 도입부는 그 영화의 인상을 결정짓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현대의 도시 공간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라면, 그 공간을 이미 경험해 본 관객에겐 “아 바로 저기!”라는 친근감과 그에 따르는 몰입감을 단박에 이끌어내는 장치로서도 기능한다. 앞선
칼럼들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영화 속 배경이 배우에 버금가는 역할을 해내는 것이다. 나아가 지금과 같이 영상 기록 매체가 발달하지 않았던 20세기, 특히 1960~70년대의 우리나라의 도시 공간이라면 구도나 촬영 기법에 대해서 심도 있게 논의하기에 앞서서 당대의 도시 모습을 있는 그대로 관찰할 수 있는 1차 사료로서 더욱 크나큰 가치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시선에서,
도입부에 담긴 도시 공간의 시퀀스가 특히 인상적인 영화를 살펴보도록 하자.
격변의 현장, 서울을 담다
먼저 살펴볼 영화는 1961년 작, <
서울의 지붕밑>(이형표 감독)이다. 6.25 전쟁이 끝난 후 10년도 채 지나지 않았던 시기, 그것도 5.16 쿠데타 직후 혼란스러웠던 시절의 서울의 전경을, 초반 2분 동안의 도입부에 멋지게 담아낸 영화다. 50초 경부터 1분까지, 카메라는 8층 높이로 당대의 ‘고층 멋쟁이 빌딩’이라 불렸던 개풍빌딩, 광화문우체국, 종로소방서, 덕수궁 북쪽의 옛 화신백화점 연쇄점 창고를 훑는다.
개풍빌딩, 광화문우체국, 종로소방서가 한 컷에 담긴 타이틀 씬
1961년의 시선에서는 하나같이 ‘도회지스러움’을 발산하는 으리으리한 건축물들이었지만, 채 30년도 지나기 전에 이 건축물들은 모두 헐려 없어졌다는 사실을 상기해보면, 서울이 얼마나 급격한 변화를 거쳤는지 새삼 놀라게 된다. 이윽고 카메라는 1분 42초 경에, 제법 정성들여 꾸며진 서울시 1기 휘장(1947년 제정, 1996년 교체)의 팔각 모양 화단을 비춘다.
(좌) 1947년~1996년까지 사용된 서울시 휘장 (우) 시민회관에서 내려다 본 서울시 휘장 모양의 화단
구도 상 아마도 시민회관의 옥상에서 촬영된 것으로 보이는데, “서울의 지붕밑”이라는 영화의 타이틀 답게, “서울”의 상징을 일부러 담고자, 분명히 감각적으로 의도된 씬이라 해석할 수 있겠다. 마침 1분 58초 당시 5.16 쿠데타 세력으로 구성된 국가재건최고회의의 청사(옛 문공부 청사, 現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파사드 또한 잠시 모습을 비추는데, 당대의 시대상이 은연중에 드러나는 컷이기도 하다.
영화가 촬영되던 바로 그 시점에 5.16 쿠데타 주도 세력이 입주해 있던 옛 문공부 청사(現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도입부의 서울 전경 시퀀스는 2분 20초 경, 지금의 통인동 일대를 비추며 끝이 나는데, 도시형 한옥이 빼곡히 늘어선 모습은 1978년 자하문로가 개통되면서 완전히 사라진 지 오래이다.
통인동의 도시형 한옥 밀집 지역. 자하문로가 개통되면서 오른편 상단의 자교교회 종탑 이외에는 이 시기의 흔적이 거의 대부분 사라졌다.
단 2분 만에, <서울의 지붕밑>은 ‘서울 도시경관 아카이브’로서 훌륭히 기능을 해 낸 셈이다.
서울의 하늘이 높아졌다
<서울의 지붕밑>으로부터 약 10년이 흐른 1972년에 제작된 <
0시(영시)>(이만희 감독) 또한 도입부에서 인상적인 시퀀스를 보여준다. 서울역 앞, 남대문 경찰서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인만큼, 초반 3분 동안 서울역과 고가도로, 건축가 김중업이 설계한 도큐호텔(現 단암빌딩), 남대문 너머 서소문 일대의(당대 기준으로는) 고층 오피스 빌딩군을 세련되게 잡아낸다.
1970년에 개통된 서울역 고가도로 사이로 담아낸 서울역의 모습
남대문 주변의 일제강점기 당시의 근대건축물과 서소문로의 고층 오피스 빌딩이 대비를 이루는 모습
1970년대 영화답게 총천연색으로 담긴 남대문 주변의 풍경은 의외로 50년이 흐른 지금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1960년대 후반부터 서울에서는 10층 내외의 ‘고층 오피스 빌딩’이 우후죽순 들어서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날로 높아져가는 서울의 하늘은 1971년, 바로 이 영화가 촬영되던 시점에 절정기를 맞는다. 1971년 건축가 김중업이 설계한 두 채의 꺽다리 빌딩(31층의 삼일빌딩, 그리고 이 영화에 등장한 25층의 단암빌딩)이 등장하면서 서울의 스카이라인을 완전히 바꿔놓은 것이다. 남대문 바로 옆의 25층짜리 빌딩을 역시 필름에 담지 않고는 못 배겼던 것일까, 카메라는 단암빌딩을 틸트 쇼트로 멋드러지게 잡아낸다. 한국 건축사에 길이 이름을 남긴 김중업의 작품이, 영화 속에 최초로, 그것도 우아하게 등장한 순간이 아닐까.
낯익은 그곳, 회현사거리
마지막으로 서울의 인구가 500만을 넘어서 700만 명을 바라보던 1975년에 제작된 <
바보들의 행진>(하길종 감독)의 시퀀스를 들여다보자. 영화가 시작되고 9분 경부터 약 1분 동안 진행되는 장발 대학생 두 사람과 장발 단속 경찰의 추격씬은 이 영화의 명장면 중 하나이다. 두 명의 장발 대학생들은 명동 신세계 백화점과 제일은행 앞, 회현사거리를 누비다가 신촌로터리 앞 육교에서 결국 경찰에 잡히고 만다.
명동 신세계백화점 본점과 제일은행을 배경으로 호쾌하게 연출된 도보 추격씬
신촌로터리의 육교에서 담아낸 신촌로의 모습. 거꾸로 매달린 등장인물의 시선을 그대로 반영한 씬이다.
시가지 한복판에서 촬영된 시퀀스이니만큼, 버스 정류장에서, 인도에서, 육교 주변에서 촬영 현장을 구경하는 인파가 오롯이 담겨있으나, 마치 실제로 일어난 해프닝인 것 마냥, 인파들은 전혀 어색하지가 않다. 오히려 의도된 엑스트라로 보일 정도이다. 두 사람이 힘껏 질주하는 회현사거리-남대문로의 풍경은, 실은 1960~70년대 한국 영화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1961년 작 <
오발탄>(유현목 감독)에서 주인공 철호가 미도파 백화점(現 롯데 영플라자) 앞을 거니는 씬, 1966년 작 <
워커힐에서 만납시다>(한형모 감독)에서는 시골뜨기인 두 주인공이 대도회지 서울에 적응을 못하는 해학적인 시퀀스에서 회현사거리 일대는 약방의 감초처럼 제 역할을 톡톡히 해 낸다.
이상으로 세 편의 영화에 드러난 1960~70년대 서울의 도시경관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살펴보았다. 불과 5~10년 간격을 두고서, 서울의 하늘이 급격히 높아지고, 기록 매체 또한 흑백에서 총천연색으로 바뀌었다는 점에서 이 시기가 서울에 있어서 얼마나 격변의 시기였는지를 쉬이 짐작할 수 있었다. 다음 칼럼에서는 보다 최근, 1980~90년대의 서울의 도시경관을 영화를 통해 들여다보고자 한다.
김영준(도시공학 연구자)ㅣ일본 도쿄대학에서 일제강점기 서울의 도시계획사로 박사학위 취득 후,
연구원으로 일하며 '서울의 현대를 찾아서'라는 필명으로 도시 경관을 기록해오고 있다.
영화의 또 다른 '등장인물'이라 할 수 있는 배경 속 도시 공간을 읽어내는 법을 계속해서 탐구한다.
『영화와 서울: 영화로 보는 도시 공간』(2022), 『새시각 #01 : 대전엑스포'93』(2021) 집필(공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