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클로젯 김광빈, 2020

by.김봉석(영화평론가) 2020-07-16조회 8,553
벽장 속의 괴물. 익숙한 소재다. 동화처럼 따뜻한 이야기도 가능하고, 아이를 잡아가는 섬뜩한 괴물도 가능하다. 단순하게 귀신의 통로로만 이용할 수도 있다. 김지운 감독의 <장화, 홍련>(2003)에 등장하는 옷장 장면은 정말 섬뜩했다. 리메이크작 <폴터가이스트>(2015)에서는 아이가 벽장을 통해 원령들이 사는 세계로 끌려간다. 밤에 잠을 자다가 혹은 일이나 공부를 하다가 뒤에 있는 옷장이나 벽장문이 끼익하고 열리는 순간의 공포를 대부분 알고 있을 것이다. 익숙한 것이 한순간에 이면을 드러내거나 기괴한 것으로 변할 때의 공포다.

교통사고로 아내를 잃은 상원과 딸 이나는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상원은 공황장애가 있고, 이나는 마음의 문을 닫아버렸다. 이나의 치료를 위해 교외의 저택으로 이사를 갔지만 벽장에서 이상한 일들이 벌어진다. 전형적인 설정이다. 과거의 상처가 있는 가족이 새로운 집, 공간에서 초자연적인 존재나 살인마를 만난다. 공포영화가 익숙한 설정을 갖는 것은 나쁘지 않다. 전형적인 설정과 캐릭터, 장면을 가지고도 섬뜩한 공포를 만들어내는 것이 호러영화의 매력이니까.
 

그러나 클리셰를 명확한 이유 없이, 흐름에 관계없이 마구잡이로 갖다 쓰는 것은 최악이다. 무서운 장면이었으니까, 관객이 좋아한 설정이니까, 라는 이유만으로 기존 호러영화를 뒤죽박죽 베끼면 재미가 없다. 한국 공포영화의 태반이 그렇다. 공포영화에 관심 없는 제작자와 감독이 만나 공포영화 히트작의 익숙한 장면들을 다 끌어오면서 엉터리를 만들어낸다. 재미도 없고, 공포도 없다. 한두 번 놀라는 장면이 있어도 그뿐이다. <클로젯>(김광빈, 2020)을 보고 있으면, 다 어디선가 본 장면들이고 설정이다. 그것들이 합이 맞지 않고 삐걱거린다. 클라이맥스도 맥이 빠진다. <컨저링> <인시디어스> <애나벨> 등 제임스 완 연출, 제작 영화들이 계속 떠오른다. 벽장 속 이계는 <폴터가이스트>, 학대 받은 아이들의 복수는 시미즈 다카시의 <코도모츠카이>가 연상된다. 

<클로젯>의 도입부는 벽장 안에 있는 무엇인가 때문에 이나의 성격이 변하고 어딘가로 사라지는 이야기다. 까마귀가 창으로 날아들고, 벽장문이 끼익 거리며 분위기를 잡는다. 그리고 이나를 찾는 상원 앞에 퇴마사 경훈이 나타난다. 프롤로그에 나와 굿을 하다 죽은 무당의 아들이다. 경훈은 동양의 퇴마의식을 기본으로 하면서도 첨단 과학 장비를 활용하여 초자연적 존재를 추적한다. 농담과 너스레가 끊이지 않는 경훈이 등장하며 분위기가 조금 바뀐다. 지금 상황에서 웃어도 되는 것일까? 그러면서 영화의 톤이 오락가락한다.

<클로젯>은 이나가 변하고 사라진 후, 경훈이 나타나 이나를 데려간 존재를 찾아가는 초자연적 미스터리로 볼 수도 있다. 상원과 경훈은 명진의 존재를 알게 된다. 왜 원한을 갖게 되었는지도 알게 된다. 1998년, 아마도 IMF 금융위기로 모든 것을 잃은 아버지의 학대로 명진은 옷장에 갇혀 목숨을 잃는다. 그 원한 때문에 죽은 후에도 ‘클로젯’을 통해 학대받는 아이들을 이계로 데려간다. 그렇다면 상원과 경훈은 명진의 한을 어떻게 달래줄 것인가.

상원은 이나를 구하기 위해 이계로 들어간다. 그런데 하는 일이 없다. 자신이 의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나를 학대했음을 알게 되는 정도다. 그것은 좋다. 상원이 트라우마에서 벗어나는 계기를 주니까. 하지만 그뿐이다. 모든 것은 갑자기 명진의 엄마가 나타나면서 해결된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다. 엄청난 원한을 가지고 아이들을 이계로 데리고 간 명진은 엄마를 만나 원한을 내려 놓고, 모든 것이 해결된다. 사회적인 문제를 다루는 것 같으면서도 결국은 개인적인 문제 특히 모성애로 진부한 답을 내리고 끝난다. 
 

<클로젯>은 한국 공포영화가 지지부진한 상태로 놓여 있는 이유를 잘 보여준다. 무서운 장면 몇 개를 만드는 실력만으로는 부족하다. 스릴과 코미디와 신파를 다 섞어 놓은 공포영화를 만들겠다는 시도는 어리석다. 대부분은 실패한다. 장르물은 우선 장르의 본질을 확실하게 파고드는 것이 기본이다. 공포영화를 만들어 놓고도 미스터리와 드라마라고 우기지 말고. <기담>(2007)과 <곤지암>(2017)의 정범식, <검은 사제들>(2015)과 <사바하>(2019)의 장재현 감독은 공포물에 대한 지식과 애정으로 전형적이면서도 자신만의 색깔을 담은 공포영화를 만들고 있다. 그런 공포영화들을 더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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