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지브리의 열풍 그쳤는가

by.한승태(애니메이션박물관 수석학예연구사) 2014-08-25조회 9,530
지브리의 열풍 그쳤는가

지브리 애니메이션의 위기라는 말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보자면, 명작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1) 이후 사실상 지브리 애니메이션은 위기였다. 그럼에도 10여 년 가까이 버텨온 것이다. 부자는 망해도 3년은 먹고산다는 말이 있다. 아무래도 지브리가 그런 듯하다. <벼랑 위의 포뇨>(2007)는 “하야오가 마침표를 찍어버린 작품”이라고 스즈키 토시오 프로듀서는 말했다. 그래도 우리는 지브리 스튜디오에서 새로운 열풍(‘지브리’의 어원이 된 ‘ghibli’란 사막에서 불어오는 열풍을 뜻하는 리비아어다)이 불어오길 기대했다. 

지브리의 열풍 그쳤는가

미야자키 하야오는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제 역할은 한정돼요. 씨를 뿌리고 물을 줄 순 있지만 나지 않는 싹을 억지로 꺼낼 순 없죠.” “선배와 후배가 3각 구도를 이뤄야 이상적인데 지금의 지브리는 그저 고령화되어 늘어졌다” 그는 그들을 이을 젊은 감독의 부재를 아쉬워하면서도 이를 시스템으로 극복하려 하였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스튜디오 지브리를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최적의 시스템으로 만들어 왔다. 매년 정기채용과 별도로 애니메이터를 뽑아 일정 기간 연수를 진행하고, 이를 통해 신인을 발굴했고, 외주를 주는 미술과 촬영도 직접 팀을 꾸렸다. 지브리에선 더빙 작업을 제외한 애니메이션의 모든 작업이 가능하다. 이로써 스튜디오 지브리는 하야오와 함께 굳건하게 관객들의 마음에 자리를 잡아 왔다. 

미야자키 하야오와 다카하타 이사오는 1984년 스튜디오 지브리를 설립해 운영하면서 수많은 명작을 산출해 왔다. 하지만 하야오와 이사오의 노령화에 신선한 피를 수혈할 젊은 인재가 필요했다. 몇 번의 시도에도 그들은 후계자를 내지 못했다. 하지만 위기의 원인은 후계자만의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창작은 이런 공장 시스템만으로 되는 것은 아닌지도 모른다. 나로서는 새로운 스토리의 신선함과 그에 맞는 스타일의 창작이 부족한 것 때문이 아니었나 한다. 

지브리 애니메이션의 위기와 해체는 곧 수작업 애니메이션, 혹은 셀 애니메이션의 위기라는 것과 결부된다. 하야오는 줄곧 장인정신에 의한 작품을 고집해 왔는데, 이는 지브리 시스템 운영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애니메이션을 꿈꾸는 이들에게 최고의 스튜디오로 선망되던 곳이다. 1989년부터 지브리는 좋은 애니메이션을 만들 수 있는 환경 조성에 공을 들였다. 지브리가 스태프 전원을 정사원으로 고용한 일은 유명하다. 애니메이션 업계에서는 누구도 시도하지 않는 부담을 짊어진 것이다. 애니메이션의 제작은 보통 제작 스태프들이 작품별로 모이고 작품이 끝나면 해체된다. 이런 기존 제작 시스템을 뒤엎고, 당시 대기업 평균 월급이 16만 엔 수준일 때, 스튜디오 지브리는 제작 스태프들 월급 20만 엔의 정규직으로 채용한다. 이는 “편안하게 여유를 갖고 작업하지 못한다면 좋은 애니메이션이 나올 수 없다는 하야오와 이사오의 지론에 따라 것이었다. 
 
지브리의 열풍 그쳤는가

지브리 시스템은 매년 스튜디오 내의 애니메이터들에게 작품 아이디어 공모를 받고, 선정되면 파일럿을 제작하여 반응을 보고 괜찮으면 제작으로 이어진다. 이를 통해 발굴된 감독이 <귀를 기울이면>(1995)의 콘도 요시후미다. 하지만 콘도 요시후미는 감독은 1996년 동맥류 질환으로 일찍 죽고 만다. 하야오와 이사오, 그리고 프로듀서 스즈키까지 인정한 후계 구도가 이렇게 무너지고, 이후 새로운 후계 감독으로 모리타 히로유키(<고양이의 보은>(2002))를 발굴하였으나 후계자가 될 것 같았던 그는 다시는 작품을 못 만들 것 같다며, 이후 TV 애니메이션 쪽으로 방향을 선회하여 지브리를 떠났다. 

이후 하야오의 장남 미야자키 고로가 <게드전기: 어스시의 전설>(2006)로 뒤를 잇는다. 하지만 그의 작품은 하야오도 인정하였듯이 기대에 못 미쳤다. 시스템이 뒷받침 된 미술이나 음악 등은 좋았으나, 연출의 기본인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방식에 있어 허점을 보이며 작품 형상화에 실패하였고, 이는 흥행 실패로 이어진다. 장편으로 이야기를 끌어가기에는 역부족이었던 작품이다. 주인공에 대한 몰입도는 물론 스토리의 긴장관계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이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미야자키 고로는 지브리가 아닌 다른 곳에서 충분한 수업을 했어야 했다.

지브리의 열풍 그쳤는가

다음 주자는 10년 넘게 지브리에서 애니메이터로 일했던 요네바야시 히로마사였다. 그의 <마루 밑 아리에티>(2010>도 지브리의 시스템이 잘 드러난다. 그림 스타일은 섬세하고 조밀하게 그 안을 채우고, 캐릭터의 동작도 유려하게 표현되었다. 하지만 이는 하야오의 아류작이었다. 아니 하야오의 옷을 입은 요네바야시 히로마사였다. 신인 감독의 새로움이 보이지 않았다. 물론 그 정도만 해도 훌륭했다. 프로듀서 스즈키의 말 그대로 “감독에게 초점이 있었다기보다 스태프 전체가 힘을 합쳐 만들어낸” 것이다. 요네바야시 감독도 “미술은 내가 모르니까 미술감독에게, 색은 색채 담당 스태프에게 맡겼다”고 말한다. 이는 하야오 스타일을 모든 스태프들이 창출해 낸 것이다. 누가 감독하더라도 이 스타일을 벗어나기 힘든 것이 오늘날 지브리 몰락을 불러왔는지 모른다. 그래도 지브리의 명성으로 이 작품은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근 10여 년간 지브리의 작품과 하야오의 작품은 있었어도, 누구누구 감독의 무슨 작품은 없었다. 그 누구누구 감독이 열과 성의를 다해 작품을 만들었어도 이 시스템에 의해 지브리 공장의 작품으로 못 박혔던 것이다. 모리타 히로유키감독을 떠나게 만들었던 압박감의 실체가 이것이 아니었을까! 이는 하야오의 그늘에서 벗어나 새로운 스타일의 창조가 힘들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한 번 성공해서 정해진 스타일은 벗어나기 힘들다. 실패했을 때는 회사가 망할 정도로 출혈이 크기 때문이다. 모리타 히로유키에 의하면 지브리 시스템은 하야오나, 이사오의 인정을 받아야 하고, 기존에 만들어 왔던 명성을 이어가야 한다는 부담이 상당히 큰 것이었다고 한다. 

어쨌든 지브리의 몰락은 애니메이션 팬들에게는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개인적으로는 셀 작업 애니메이션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것이 더 큰 상실이다. 그러면서도 하야오와 이사오의 스타일과 스토리 전략에서 벗어난 새로운 애니메이션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애니메이션이 유아 시장만 있다고 말하고 있지만, 스토리만 좋다면 연령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걸 지브리는 보여주었다. 이는 지브리의 애니메이션을 보면 자명하다. 좋은 작품은 연령을 초월한다. 유아에만 맞고, 청소년에게는 안 맞는 스토리는 없다. 심지어 좋은 이야기는 연령을 초월하는 힘이 있어 누구나 빠져들게 한다. 그러니 이런 위기가 닥치면 내 이야기가 재미없나 고민해야 한다. 이건 지브리 스튜디오도 마찬가지다. 이야기는 그 시대의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걸 해야 한다. 그리고 새로운 이야기는 그에 맞는 새로운 스타일을 요구한다. 아무리 훌륭한 스타일이어도 스타일은 이야기의 옷일 뿐이다. 이야기에 맞는 옷을 잘아 입어야 산다.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창작자에게 남의 옷은 어울리지도 않을뿐더러 편하지도 않다. 

지브리 내의 많은 애니메이터가 미야자키의 연출 제안을 받고 한 달이 안 돼 손을 뗐다고 한다. “다들 장에 탈이 나서 입원을 했어요.” 미야자키 하야오라는 압박을 견뎌내지 못한 것이다. 요네바야시 히로마사도 “두 번 다시 연출은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최근 개봉한 <추억의 마니>(2014)를 두 거장의 간섭없이 연출하였다고 한다. 그의 작품이 어떻게 변했을지 관심이 가는 이유이다. 

지브리의 열풍 그쳤는가

“스튜디오 지브리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을 위해 만든 곳이에요.” 스즈키 토시오의 말처럼 스튜디오 지브리는 곧 미야자키 하야오다. 하야오와 이사오의 작품 이외의 감독들이 만든 작품들도 미안하지만 하야오의 스타일을 입은 하야오의 작품이다. 이것이 우리가 지브리가 문을 다는 까닭이 아닐까. 

작년 하야오의 마지막 작품 <바람이 분다>(2013)가 발표되었다. 그에게 그것이 마지막 열풍이 되고 말았다. 창작자는 늘 느끼는 것이지만 창작의 어려움이 이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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