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지난여름, 젊은 감독 3인과 나눈 케케묵을지 모를 이야기에 대해

by.하성태(오마이뉴스 기자) 2011-09-26조회 4,474

몇 미터만 걸어도 땀이 삐질삐질 흐르던 지난 7월 초, 올 상반기 개봉작 중 1만 관객을 돌파한 독립영화의 젊은 피 3인과 자리를 함께 했었다. <혜화, 동>의 민용근 감독, <파수꾼>의 윤성현 감독, <무산일기>의 박정범 감독이 그들이었다. 상복도 많았고, 관객들의 사랑도 담뿍 받은 만큼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인터뷰가 진행됐다, 고 기억된다. 세 감독 모두 서로 동년배 친구사이거나 이미 영화제 등을 통해 얼굴을 익힌 사이인지라 따로 인사를 나눌 필요가 없을 만큼 인터뷰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상반기에 특히나 사랑을 받았던 만큼 각자의 소회도 남달랐다. 상처받은 스물 셋 혜화의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했던 민용근 감독은 이제는 독립영화계에서 유행이 되어버린 ''''찾아가는 GV''''에 대한 뒷얘기를 들려줬다.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았던 터라 매일 자신의 데스크톱 컴퓨터를 켜 트위터로 약속을 잡고 관객들을 만나는 ''''출퇴근 생활''''의 반복이었다는 토로를 들을 수 있었지만 그 기저엔 당시의 설렘과 데뷔 감독으로서의 흥분이 묻어나고 있었다. 

연이은 국제영화제에서의 수상으로 받은 상금을 바탕으로 차기작을 만들 수 있게 됐다는 박정범 감독은 탈북자를 친구로 둔 고등학생에게 지속적으로 메일을 받았노라 털어놨다. 그만큼 <무산일기>가 탈북자를 둘러싼 한국사회의 비정함을 기민하게 포착했다는 반증이리라. 박정범 감독은 민감한 주제인 만큼 탈북인들에게 누가 되지나 않을까, 또 탈북인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에 나쁜 영향을 끼치지나 않을까 걱정하는 눈치였다. 그렇기에 박정범 감독은 ''''작가가 가져야 할 사회적 책무''''란 표현을 썼을 터다. 

전날 새벽까지 이어진 작업 덕에 이날 가장 늦게 도착한 윤성현 감독은 할 말이 가장 많아 보였다. 세 사람의 젊은 피 중 가장 혈기왕성하다랄까? 기사에서는 전부를 실을 수 없었지만, 그가 첫머리부터 꺼낸 화두는 배급환경에 대한 문제였다. 독립영화 감독이라면, 아울러 독립영화를 사랑하고 지켜주고 싶은 이라면 누구라도 생각해 봤을 바로 그 문제. 데뷔작에서 남다른 주목을 받은 것은 차치하더라도 감독이라면 제 새끼와도 같은 완성품을 더 많은 이들에게 보여주고픈 마음, 그 누구도 다르지 않으리라. 

사실 이 세 명의 감독과 얘기를 나누며 귀결되는 것 또한 바로 이 배급환경의 문제였다. 천만 관객 시대에 1만 돌파가 큰 뉴스거리가 될 수밖에 없는 독립영화의 배급환경 말이다. 첫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영화진흥위원회가 직접 운영하는 인디플러스가 개관한 것이 올 3월이다. 많은 독립영화인들이 전용관의 복구를 안도해야 할지 반신반의했던 것은 점점 축소되고 있는 독립영화, 작은영화 상영관의 숫자들 때문이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일 터다. 

그렇기에 이 자리에서도 자연스레 독립영화를 상영하는 지방극장들의 브랜드화랄지, 멀티플렉스를 소유한 거대 배급사들의 적극적인 움직임과 같은 실질적인 논의가 오고갈 수밖에 없었다. 

개인적으로 언제, 어떤 독립영화인과 이야기를 나누어도 솔깃하고 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방안은 시군구 단위 구청이나 시민회관 등의 스크린을 이용, 독립영화를 평소 접하기 힘든 관객들과의 만남을 실질적이고 효율적으로 추진하는 내용일 수밖에 없다. 독립영화를 지속적으로 지지하는 관객들만큼 향후 힘을 보태줄 수 있는 관객들이 바로 독립영화를 처음 접하고 그 오묘한 맛을 알아가는 대중들일 테니 말이다. 

며칠 전 해외의 작은영화를 수입하는 한 영화인을 만났다. 그는 이제 더 이상 ''''독립영화''''란 정의가 유효한가 물어왔다. 그러면서 좋은 영화를 알아보는 관객의 힘은 변함이 없다, 그런 만큼 멀티플렉스에서 운영하는 예술영화전용관들에 힘을 실어주는 기사를 좀 더 많이 쓸 필요가 있는 것 아니냐고 힘을 주듯 말했다. 

관점은 다를 수 있겠지만, 결국 질문은 하나로 귀결되는 듯 했다. 멀티플렉스가 점령한지 오래인 현 지형도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관객들과의 접점을 넓혀갈 수 있을까. ''''좋은 영화는 결국 관객이 알아본다''''식의 낙관주의에 빠져있는 독립영화인은 분명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비관주의에 빠지기엔, 상업영화들의 게으름을 반성케 하는 독립영화들이 예나지금이나, 더욱이 요 몇 년 연이어, 더 활발히 출현하고 있다. 

지내온 시간만큼 향후에도 지속적으로 배급환경에 대한 다양하고 성숙한 논의들이 쏟아져 나오길 기대해 본다. 물론 이 배급환경을 어떻게 만들어갈지에 대한 열쇠를 함께 쥐고 있는 문화부와 영진위 그리고 관련 민간 자본들의 자성과 변화가 수반되어야 할 터다. 개인적 바람이 있다면, 내년 여름 이 세 감독과 다시 만나 개선된 배급환경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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