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제가 좋아하는 영화를 만듭니다

by.김조광수(청년필름 대표) 2011-06-07조회 3,820

“상업영화도 제작하세요?”

지난 1월이었다. 청년필름이 제작한 <조선명탐정>의 시사회 때 기자들에게 잘 좀 보이려고 나갔더니 여러 기자들이 물었다. 여기 왜 나와 있느냐고. 내가 제작자라고 했더니 다들 고개를 갸우뚱, 눈을 껌뻑이며 다시 물었다. “이런 영화도 제작해요?”

내가 대표로 있는 청년필름은 영화제작사다. <해피 엔드>로 시작해서 <와니와 준하>, <질투는 나의 힘>, <귀여워>, <분홍신> 줄줄이 충무로자본이 투여되고 스타들이 출연했던 말 그대로 충무로영화, 상업영화였다. 그런데 첫 작품인 <해피 엔드> 외에는 흥행을 하지 못했다. 상업영화의 미덕이란, 잘 만든 영화도 아니고 재밌는 영화도 아니고 관객이 많이 들어 돈을 잘 버는 영화여야 한다. 영화 앞에 괜히 상업이란 글자를 붙여 놓았겠나! 그런데 돈을 벌기는커녕 한 작품 당 수억씩, 수십억을 까먹었으니 상업영화라는 수식이 부끄럽게 되었다. 게다가 <해피 엔드>를 보고 밀어주었던 투자사들도 하나 둘씩 멀어져 갔다. 그러다 제작한 영화가 <후회하지 않아>다. 

독립영화 감독을 모셔다가 독립영화 방식으로 제작비를 끌어오고 독립영화 방식으로 제작했다. 그래서 당연하게도 독립영화라 불리게 되었고 2006년에 한국독립영화협회가 선정하는 ‘올해의 독립영화’에 뽑히기도 했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충무로영화제작사가 상업영화 만들어서는 흥행도 못하고 쪽박을 차다가 독립영화를 만들어서는 대박을 터트렸다. 같은 해에 만든 상업영화가 한 편 더 있었다. <올드미스 다이어리>. 이 영화도 또 흥행에 실패했으니 말 다한 거다. 그 다음부터는 줄줄이 독립영화 뿐이었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색화동>, <은하해방전선>, <>, <탈주>까지. 상업영화를 기획하지 않은 건 아니었는데, 상업영화는 투자도 캐스팅도 잘 되지 않았다. 흥행을 못한 제작사가 처하게 되는 가혹한 현실이었다. 반면에 <후회하지 않아>의 성공 덕분에 독립영화제작은 활기를 띠어 갔다. 그래서 그런 소리를 들어야 했다. 상업영화도 제작하느냐는.

“독립영화도 제작하세요?”

<조선명탐정>이 흥행에 성공하고 곧바로 하정우, 박희순, 장혁 주연의 <의뢰인>을 제작하면서 이제는 역으로 독립영화도 제작하느냐는 소리를 듣는다. 반년도 안 지났는데 세상 참 빠르게도 변한다. 다시 얘기하지만 청년필름은 영화제작사다. 매일 하는 일이 영화를 기획하고 제작하는 일이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다들 그러하듯 우리도 우리가 좋아하는 영화, 취향에 맞는 영화를 만들어 왔다. 그것이 때로는 큰 자본이 투여되고 스타들이 출연하는 상업영화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적은 자본에 신인배우가 출연하는 독립영화가 되기도 한다. 상업영화만 해야지 거나 독립영화만 해야지 생각하지는 않았다.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각각의 영화가 자기 정체성을 가지게 된다.

요즘 난 감독으로서의 장편데뷔작인 <두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이란 영화를 준비하고 있다. 게이와 레즈비언이 위장결혼을 하면서 겪게 되는 소동을 유쾌하게 그리는 퀴어영화다. 퀴어영화는 든든한 매니아 관객층은 있지만 아직은 대중적인 호감을 끌어내기는 힘든 한계가 있다. 그렇다보니 큰 자본을 끌어오기가 쉽지 않다. 시작부터 독립영화였다. 

독립영화를 제작하는 건 상업영화보다 열배 스무배는 힘들다. 제작비가 적으니 과정이 힘들고 스타배우가 없으니 알리기가 힘들고 배급력이 딸리니 극장에 걸기도 쉽지가 않다. 그런데도 왜 굳이 독립영화를 또 만드느냐고 묻는다. 이제 상업영화로 잘 나가는데 왜 그러느냐고. 거창한 이유 같은 건 없다. 그저 내가 좋아하는 영화, 취향에 맞는 영화를 만들고 있을 뿐이다. 그게 대로는 상업영화가 되고 대로는 독립영화가 될 뿐이다. 아니다, 이유가 하나 있다. 독립영화를 만들 때 더 즐겁다. 에너지도 솟는다. 큰 자본이 투여되면서 갖게 되는 상업영화의 여러 제약들에서 벗어난 활기가 있다. 그래서 더 행복하다. 힘든데도 즐거우니 변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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