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최근에 본 독립영화 두 편

by.김이환(소설가,독립영화 칼럼니스트) 2011-05-16조회 5,082
최근에 본 독립영화 두 편

이전 칼럼에서 독립영화와 장르에 대한 글을 썼었다. 많은 독립 영화를 거론한 글이었지만 막상 ''''장르적''''이라는 단어가 무엇을 뜻하는지 딱히 규정하고 말을 꺼냈던 것은 아니었다. 단지 장르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여러 특징들을 뭉뚱그려 가리키는 뜻으로 ''''장르적''''이라는 표현을 사용했고, 독립영화에 대한 색다른 관점을 엿볼 기회로 생각해줬으면 하는 뜻에서 글을 썼다.

이번에는 최근에 본 두 편의 영화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 싶다. 첫번째 영화는 <혜화,동>이다. 이 영화는 지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구축된 영화다. 영화를 감상하는 관객이 상당히 복잡한 사고를 하도록 요구하며, 게다가 관객이 이를 선뜻 받아들이게 하는 놀라운 매력까지 지니고 있다. 영화가 어떤 이야기인지 알기 위해서는 영화가 어떤 논리로 진행되는 중인지 학습하고 이후를 예측해야 하며, 때로는 예측이 불가능한데도 관객은 어쨌든 영화에 압도된다. 
관객을 압도하는 치밀한 논리에서 감정을 끌어내는 것은 장르적이라고 불리는 소설이나 영화에서 반복되는 패턴이다. <인셉션>을 예로 들어보면 어떨까. 토템이 넘어질지 그렇지 않을지 관객이 숨죽이고 기다리게 만들듯이, <혜화,동>도 혜화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혜화의 마지막 표정이 무엇을 뜻하는지 관객이 궁금하도록 만든다. 이런 점이 <혜화,동>에 숨어있는 장르적 경향으로 보였다.

<혜화,동>은 본격적인 장르 영화는 아니지만, 이 영화의 지적인 태도는 모범적인 예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본격적인 장르 영화라고 해서 장르적 경향이 항상 뚜렷이 드러나며 항상 모범적인 결과물을 내놓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아마도 한국에서 장르 영화를 만드는 일은 쉽지 않기 때문에, 수많은 난제가 기다리고 있고 그 문제들을 해결할만한 아이디어를 생각해내고 구체화하기는 너무나 힘들기 때문에, 좋은 장점을 가진 장르 영화가 드문 듯 하다.

두번째로 언급하고 싶은 영화가 바로 이런 ''''좋은 장점을 가진 장르 영화''''이다. 최근 이응일 감독의 <불청객>을 봤다. 이 영화는 B급 장르 영화를, 특히 막장 영화, ''''디시인사이드'''' 스타일의 영화, 극초저예산으로 만든 괴상한 블랙코미디 SF 등을 표방한 영화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진짜 장점은 잘 만든 B급 영화인 것이 아니라 잘 만든 SF 영화라는 점이다.

<불청객>은 위에서 언급한, ''''한국에서 SF 영화를 만들려면 넘어야 하는 어려움'''' 을 감독이 몇년의 시간동안 치밀하게 고민한 결과가 담겨 있다. 영화에 특수효과를 사용하려면 몇백억대의 예산으로만 가능하고, 그렇다면 큰 예산에 맞는 상업적인 이야기가 필요한데, 그 이야기가 감독이 지향하는 이야기와 다를때 어떻게 타협을 할 것인가, 그리고 ''''특수효과 한두장면 넣고 SF/SFX 라고 주장하는 여타의 영화들''''과 다르려면 영화에 특수효과가 어떻게 사용되어야 할 것인가, 등등의 상당히 복잡한 난점에 대한 해답을 감독은 영화를 통해 제시했다. 절반은 상당히 많은 분량의 특수효과를 결국 구현해낸 성실함으로, 나머지 절반은 일본 만화나 B급 장르 영화, 특촬물 등의 영향을 받은 괴팍한 감성으로 이 문제들을 돌파해냈다. <불청객>은 이전의 한국 SF 영화들이 내놓지 못한 해답을 제시한 영화다.

하지만 앞으로도 이렇게 좋은 장르 영화가 나올지 기대하기엔 여전히 한국에는 장르 문화의 수용 폭이 넓지 않다. 지금은 좋은 아이디어를 가진 예술가가 우연히도 나타나 좋은 영화를 만들어주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기존의 좋은 ''''한국형 장르 영화''''들도 그런 식으로 등장했고, <불청객>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장르 애호가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런 칼럼을 쓰는 것 정도이다. 상투적인 표현이겠으나, 이 짧은 글이 좋은 장르 영화가 등장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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