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새> 김보라 감독 인터뷰 모두가 겪는 시간, 누구나 알 수 없는 세계

by.남동철(부산국제영화제 수석프로그래머) 2019-01-10조회 13,474
벌새

김보라 감독의 첫 장편영화 <벌새>(2018)는 1994년 서울 대치동의 한 중학교에 다니는 여학생 은희의 일상을 따라간다. 성적이란 단일 잣대로 아이들을 가름하는 학교, 가부장적인 집안의 갑갑한 공기 속에서도 은희는 새로운 관계에 부딪히길 주저하지 않는다. 그리고 영화는 은희와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섬세하게 담아낸다. 
온전히 옳거나 그른 게 없는, 모순투성이의 사람과 세상을 대면하는 한 소녀의 성장담. 
2018년 부산국제영화제는, 그리고 관객은 왜 이 영화에 열띤 호응을 보였을까. 
영화처럼 세세하고 차근하게, 남동철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가 <벌새>에 대해 묻고 김보라 감독이 이야기했다.

일시 | 2018년 11월 20일(화)
참석자 | 김보라 영화감독, 남동철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기록 및 정리 | 이아림, 고민주 「영화천국」 편집부
사진 | 김좌상 포토그래퍼
 
김보라남동철
김보라 감독과 남동철 프로그래머

남동철    2018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소녀들의 성장담을 담은 영화가 다수 선보였다. 이러한 경향에 대해 지금 왜 이런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지, 이 영화들에 주목해야 할 이유는 무엇인지 고민하게 됐다. <벌새> 역시 소녀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관습적인 화법을 탈피하고 그들이 겪는 고민과 갈등, 아름다운 순간을 섬세하게 쫓아가면서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사고라는 시대 배경을 영화의 공기에 자연스레 담아내 큰 호응을 얻었다. 한국 상업영화에서 <친구>(곽경택, 2001)나 <말죽거리 잔혹사>(유하, 2004)를 비롯해 소년의 성장담은 자주 다뤄진 반면 소녀들의 이야기는 잘 다뤄지지 않았고, 그것이 대중에게 어필하지 않는다는 선입견이 있는 것 같다. 그런 면에서 <벌새>를 시작할 때 두려움은 없었나?

김보라    내가 오히려 걱정한 것은 나르시시즘이었다. 개인적인 기억이 많이 묻어 있는 영화인데 그것이 ‘건강한 거리 두기’가 아닌 자기 연민으로 읽히지 않기를 바랐고, 그 점을 경계하면서 시나리오를 쓰고자 노력했다. 흥행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이 영화를 봐줄 사람이 분명히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사실 자기 얘길 한다는 데 두려움이 있었다. 내 경험을 담아 좀 더 내밀하게 작업한 것은 <리코더시험>(2011)이라는 단편이 처음이었는데, 놀랍게도 내가 만든 단편 중에 가장 반응이 좋았다. 관객 분들이 친밀하게 다가오고, 자신의 이야기를 나눠주시더라. 정말 감사했다. ‘나에게 일어난 일은 시간차를 두고 남에게도 일어나는 일’이라는 얘기를 들은 적 있다. <리코더시험>을 통해 내 이야기를 하는 것이 공동의 서사와 어떻게 연관되는지, 그 힘 같은 것을 느꼈고 <벌새>에 들어가며 ‘어떻게 공동의 서사로 의미 있게 만들까’가 중요한 이슈였다.

여성 청소년을 다룬 장편영화로는 <열세 살, 수아>(김희정, 2007)나 <인형의 집으로 오세요>(토드 솔론즈, 1995)가 기억에 남는데, 단편영화 중에는 무수히 많다. 그래서 이런 경향이 갑자기 나왔다기보다 예술영화, 단편영화 쪽에서 꾸준히 시도된 목소리를 이제 좀 더 넓은 영역에서 들어줄 준비가 됐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다양한 여성영화에 주목한 데 대해 무척 감사하고 기쁘다. 나는 영화에서 여중생을 관습적으로 묘사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기존 영화가 여자 중학생이나 고등학생을 너무 해맑고 예쁘게 그린다. 나뭇잎만 굴러가도 까르르 웃고(웃음). 나의 중학생 시절을 돌이켜보면 그렇게 까르르하기도 했지만 건조하고 시니컬한 면도 있었다. 요즘 ‘스쿨 미투’가 있다. 아직도 이런 일들이 아이들을 힘들게 한단 말인가 생각하면 너무 마음이 아프다. 내 세대도 겪어서 잘 아는 일이니까. ‘성추행’이란 단어조차 없던 때 그런 폭력적인 일상을 겪은 중고생 여자아이들이 어떻게 늘 까르르 웃기만 할 수 있겠나. <벌새>에서 묘사됐듯 성적으로 등급이 매겨진다든지, 가부장적인 가정 내에서의 서열 같은 것이 1990년대는 더 심했고. 그런 모습을 미화하지도, 그렇다고 너무 부정적으로 그리고 싶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그런 균열 속에서도 우리는 충분히 각자의 삶을 살아냈고, 사람들을 만나 사랑하며 삶의 신비로움 같은 것을 느꼈으니까. 삶의 과정에 복잡다단한 결이 있고 그 모습 그대로 묘사하는 것이 <벌새>에서 중요했다. 1994년의 정치·사회적인 상황 역시 은은한 배경으로만 두고 개인의 삶을 더 들여다봐, 오히려 그 구체성이 공동체의 서사를 더 가깝게 건드릴 수 있도록 했다.

남동철    그런 점들 때문인지 ‘이 영화가 겉으로는 어떤 정치적인 메시지를 전혀 띠고 있지 않은데 은밀한 방식으로 고발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대표적으로 이 영화에는 여러 폭력적인 상황이 등장하는데, 어찌 보면 무척 극단적인 폭력임에도 영화 속 인물들은 일상적으로 받아들이는 듯 보인다. 학교 선생님이 “노래방 가지 말고 서울대 가자”라는 구호를 외치며 아이들에게 따라 하도록 강요하는 상황이나, 은희(박지후)의 가족 간에 벌어지는 가부장적 폭력 등 폭력을 말하는 방식에 대해 고민한 흔적이 보인다. 경험하지 않으면 묘사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고.

김보라    우리 집도 무척 가부장적이었고, 1990년대 남성 중심 사회의 폭력성은 학교나 가정에서도 흔한 것이어서 아마도 그 시절을 보낸 여성 대부분은 그런 폭력을 경험했을 것 같다. 중학교 때 실제로 친구가 아버지의 골프채로 맞았단 얘기를 했다. 굉장히 잘사는 집 아이였고 항상 고데기로 머리를 예쁘게 말고 오는 친구였는데, ‘엎드려뻗쳐’ 자세로 골프채로 맞는다는 거다. 충격이었다. 그런데 그 친구뿐만 아니라 많은 아이가 오빠나 아빠한테 맞는다는 얘기를 했다. 학교에서도 두발 규정 때문에 선생님이 아이들의 머리를 자르거나 뺨을 때리고 지휘봉 같은 걸로 체벌하는 일이 많았다. 부모의 경제적?사회적 지위가 높은 친구가 많았는데 그 동네에서조차 그런 폭력이 있었다면 다른 곳에서는 훨씬 더 많은 폭력이 있었을 것 같다. 폭력을 일상적으로 받아들인 시대였던 거지. 

그런데 은희의 세계, 가부장적인 가정이 폭력만의 세계인지 생각했을 때, 그렇게 묘사하고 싶지는 않았다. 이 영화에는 성인이 돼서 가족과 화해한 나의 시점과 그 시절 은희의 시점이 섞여 있다. 그래서 우울한 것과 밝은 것이 공존한다.

벌새

남동철    은희 어머니와 아버지가 부부싸움을 하며 전등을 깨서 아버지가 다치기까지 했는데 다음 신에서는 부부가 나란히 앉아 평화롭게 TV를 보고 있고, 은희가 ‘아니 어떻게 저럴 수 있지’ 하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장면이 그렇다. 영화 후반부에 그런 점이 더 많이 드러난다. 각 인물들을 양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달까.

김보라    은희 오빠의 폭력이나, 아버지의 가부장성을 미화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하지만 한 사람이 무수히 많은 사회 경험의 총합이라고 생각하면, 나는 미화를 넘어서 이 인간의 레이어를 보여줄 수 있겠구나 싶었다. 은희의 수술을 앞두고 아버지가 흘리는 눈물이라든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오빠가 우는 모습을 보여주며 캐릭터가 단선적으로만 그려지지 않기를 바랐다.

사실 폭력 문제에서 은희가 늘 피해자였다고 그리고 싶지는 않았다. 친구 지숙이 은희에게 “넌 네 생각만 한다”는 대사를 그래서 꼭 넣고 싶었다. 타인을 가해자로 규정하는 건 아주 쉬운 일이지만 자신이 가하는 상처나 자신 안의 마초성을 보기는 무척 어렵다. 그래서 지숙의 대사나, 은희가 한문학원 원장 선생님에게 소리 지르는 장면을 통해 이 아이의 균열도 같이 보여주고자 했다. 은희도 표독해질 수 있고 어떤 때는 이기적일 수도 있으니까.

남동철    굉장히 보드랍고 말랑한 부분도 있는 영화다. 은희의 성장에서 아주 중요한 요소로 누군가를 좋아하는 감정이 적극적으로 묘사되고, 그런 관계가 여러 형태로 시도되며 실패하기도 한다. 친구, 남자친구, 여자 후배, 그리고 영지 선생님(김새벽)과의 관계도 있어서, 사랑의 여러 형태를 담고 있는 영화란 생각도 든다. 개인적으로는 이 다양한 관계에 대해 ‘이 사람은 이거고, 저 사람은 저거야’ 하는 식의 규정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 좋았다. 이성과 동성을 규정하기보다 사람을 좋아하는 다양한 감정을 자연스럽게 펼쳐주는 느낌이랄까. 영화를 만들면서 이런 감정에 대해 어떻게 고민하고 발전시켰는지 궁금하다.

김보라    <벌새>를 하면서도 그랬고, 삶에서 무언가를 규정하기보다 되도록 여러 측면을 보려고 노력한다. 사랑의 형태 역시 규정하고 싶지 않았다. 은희를 좋아하는 동성 후배에 대해 영화에서 부연 설명이 없다(그래서 좋다)는 점이 얘기되곤 하는데, 나는 일부러 없앴다. 이성이든 동성이든 어떤 방식의 성적 정체성이나 관계 맺음이 유동적이고 자연스럽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들의 관계에 대해 부연 가능한 갈등 요소를 의도적으로 뺐다. 

사실 나는 이 영화의 다양한 관계를 통해 부족해 보이는 사랑일지라도 이면을 계속 보여주고 싶었다. 예를 들어 친구나 남자친구는 어떤 면에서 다 부족하다. 남자친구는 너무 우유부단한데 그 아이가 나쁜가. 자식을 과도하게 감싸는 엄마의 그늘에서 그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는 건지도 모른다. 친구 역시 은희를 잠시 배반하지만, 그 배반은 자신이 아버지에게 맞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서 나온 거다. 그 사람이 발 디딘 삶 안에서 최선인 모습을 어루만져주고 싶었다. 나도 그런 적이 있으니까. 하지만 궁극적으로 영지와 은희의 관계가 내가 삶에서 이상적으로 느끼는 관계인 건 맞다. 힘을 준 시퀀스이기도 하고. 

남동철    영지의 경우, 대표적으로 한자 수업할 때 인물의 역할이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내 마음을 알아주는 이 몇 명이나 될까’라는 내용의 수업인데, 그 장면은 곧 영지가 은희의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라는 것을 드러낸다. 사실 영화에서 그런 멘트를 할 때 무척 어색해지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 드라마로 풀려고 하는 경향이 있는데,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김보라    고민도 많고 말도 많았는데(웃음), 일단 영지가 한문선생님이니 한 번쯤은 수업 장면을 넣어야지 싶었다. 두 번째는 그 문장이 너무 좋았다. 우리가 살면서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기적 같은 일이잖나. 그래서 뻔할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넣게 됐다. 시나리오상에서 영지가 다소 비현실적인 캐릭터로 보이기도 했는데 김새벽 배우 덕에 현실감을 얻고 안착됐다. 캐릭터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진 이유를 생각해보니 내 삶에서 영지 선생님 같은 이들과의 관계가 영화적이었기 때문이다. 내게 멘토가 돼주신 분들과의 만남은 본질이 통할 때의 소통, 즉 누군가를 판단하지 않고 온전히 들어줌으로써 마음뿐만 아니라 몸 자체가 충분히 이완되는 경험이었다. 이 사랑의 형태를 묘사하는 데 내가 겪은 사랑의 모습이 다 반영돼 있는 것 같다. 

남동철    은희 어머니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영화에서 은희가 엄마를 계속 부르는데 못 듣고 다른 곳을 바라보는 장면이 미스터리하게 느껴졌다. 한편으로 ‘엄마의 삶은 어땠을까’하는 것을 은밀한 방식으로 그려보려고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지워진 여성의 희생’ 같은 맥락도 보이고. 

김보라    많은 어머니를 보면 자신의 꿈이나 욕망은 납작해진 채, 한 개인이 아니라 추상화된 ‘엄마’라는 집단으로 호명되잖나. 그런데 각각의 ‘여성’인 엄마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굉장히 신비롭고, 표독하고, 아름답기도 하고 여러 가지가 공존한다. 은희 어머니가 장바구니를 들고 허공을 쳐다보는 장면이 나에겐 무척 중요했다. ‘엄마’로만 단선적으로 그려지는 여성이 아이들을 기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일상의 균열이나 허무함, 자신의 고독,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홀로됐다’는 마음을 삭이는지, 가족 어느 누구도 절대로 보지 못하는, 사회가 절대 보려 하지 않는 이면의 그림자를 영화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다. 

남동철    <벌새>는 촬영 등 형식적인 면에서도 흥미로운데, 최근의 많은 독립영화와 달리 다소 고전적인 느낌이 든다는 점이 그렇다. 컷과 컷의 연결에 특별한 기교를 부리지도 않고, 건축하듯이 장면을 계속 쌓아가는 느낌의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점에서 에드워드 양의 영화와 비슷한 느낌도 있고. ‘이런 스타일의 영화를 만들어야겠다’ 하는 구상이 있었나.

김보라    영화에 롱테이크가 많은데, 고전적으로 느껴지는 데엔 스토리텔링과 색감도 영향이 있을 것 같다. 고전적이란 이야기는 사실 작가로서 들을 수 있는 가장 좋은 칭찬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고전적인 것을 추구하는 편이기도 하고. 이야기를 만들고 전달하는 방식이나 촬영 방식도 주인공을 쭉 따라가는 등 정직하게 가고 싶었다. 에드워드 양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감독이기 때문에 레퍼런스로 삼기도 했고, 그 영향을 아주 많이 받았을 것이다. 
긴 호흡으로 꼭 보여주고 싶은 장면이 몇 있었는데 그중 하나는 은희가 거실에서 춤추는 장면이다. 3분 가까이 되는 그 장면을 넣을지 뺄지 고민이 많았는데 넣기로 결정한 게, 이 아이가 춤을 추려고 고뇌하는 단계부터 끝까지 동작들을 쭉 보여줄 때 거기서 오는 힘 같은 게 있기 때문이다. 

그 외에 미술감독님이 실내 공간에 1990년대를 잘 구현해주셨다. 은희의 집으로 나오는 아파트는 원래 빈집인데, 인테리어에 나무의 따뜻한 느낌을 살려 조밀하게 가자고 논의했다. 촬영감독님과는 야외 로케이션 선정에 있어, 빛과 초록이 많은 장소를 고르려고 노력했다.

남동철    촬영은 <줄탁동시>(김경묵, 2012)를 찍은 강국현 촬영감독이 맡았다.

김보라    <줄탁동시>를 보니 서울이긴 한데 마치 외국인이 찍은 서울의 모습처럼 묘사했더라. 이 촬영감독님은 피사체를 낯설게 바라보고 있구나 느껴서, 강국현 감독님께 요청했고 같이 작업하게 됐다. <벌새>도 익숙한 풍경이 매우 낯설게 담긴 것 같아 감사하다. 사실 이야기 자체는 다소 전형적으로 보일 수 있기에, 이야기 방식이나 연기 방식, 촬영 방식으로 전형성을 계속 탈피하려고 고민을 많이 했다. 특히 촬영감독님이 영화 속에서 중요한 순간에 트랙숏을 많이 제안하셨는데, 그것이 정적인 영화에 깊은 결을 더한 것 같아 기쁘다. 

벌새

남동철    은희·영지가 각각 박지후·김새벽 배우여야 하는 느낌이 있었을 것 같다. 두 사람 모두 왼손잡이라는 점도 관객이 많이 발견하더라(웃음).

김보라    일단 박지후, 김새벽 두 배우께 정말 감사드린다. 같이 하게 된 게 행운이었구나 싶고. 다들 왼손잡이여서 진짜 놀랐다(웃음). 이런 게 바로 영화 속에서 일어나는 마법이구나 생각했다. 그 두 여자의 기분 좋은 뾰족함이 있다. 전형성에서 조금 벗어나 있는 서늘함도 무척 좋았고.

지후는 처음 오디션을 보러 왔는데 연기를 정말 잘했다. 지후가 리딩하는 걸 듣다가 약간 울컥하더라. 너무 신기했다. ‘저 아이는 왜 내 의도대로 읽고 있지?’ 대사가 굉장히 심플한데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신파로 들릴 수도 있다. 그런데 이 친구는 대사를 아주 담백하게 읽더라. 내가 감동한 것을 너무 티 내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오디션 마친 지후를 문 앞까지 배웅했는데, 지후가 딱 뒤를 돌아보곤 그랬다. “감독님 저는 ‘볼매’(볼수록 매력 있는 사람)예요.” 그러더니 꼭 다음 오디션을 여러 번이고 불러달란다. 자기는 올 수 있다며. 너무 사랑스러웠다. 나는 중학생을 그리려고 했을 때 착하고 귀여운 중학생은 관심 없었다. 앙칼지고 예민하고 욕망도 있고, 싫으면 복수의 칼날도 갈 수 있는 아주 다면적인, 하지만 뿌리는 선한 은희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 그런데 지후가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걸 얘기할 때 호감이 확 느껴졌다. 

김새벽 배우는 지후랑 같이 대본 리딩을 했는데, 너무 잘해서 나와 연출부 친구가 듣다가 울먹였던 것 같다. 단지 읽었을 뿐인데 정말 마법 같았다. 영지 대사도 마찬가지로 잘못 읽으면 무척 오그라든다. “손가락을 봐” 같은 대사는 잘못하면 진짜 이상해지잖나. 그런데 아주 담백하고 서늘하게 했다. 그때가 영화 작업하며 제일 힘들었던 때인데, 단지 두 배우의 리딩만으로도 큰 위로를 얻었고 처음으로 온전하게 영화의 대사가 잘 들렸다. 그런 경험을 하고 두 배우에 대한 확신이 들었다.

남동철    김새벽 배우의 영지는 무표정하면서 감독님 표현대로 서늘하다. 우리가 보통 친근한 선생님이라고 하면 잘 웃고 친절이 온몸에서 드러나는 사람을 떠올리는데 영지는 그렇지 않다. 은희와 어느 정도 거리를 두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그런 것들은 김새벽 배우와 이야기하며 좀 더 만들어진 것인가.

김보라    이 캐릭터에 대해 내가 지향한 모습인 동시에 김새벽 배우도 그걸 원했다. 이상적인 구원자로서의 영지가 아니라, 본인 역시 시간을 통과하고 고통을 견디면서 살아가는, 구체적인 개인으로서의 영지. 나는 영지가 올바른 사람이 아니라, ‘올바르게 하자’고 노력하지만 자기 안에 상처들이 있고, 그 상처를 통해 더 많이 성장한 캐릭터이기를 바랐다. 영지에게서 상처가 문득 드러났으면 했는데, 상처를 가진 사람만이 치유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영지는 은희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다’ 생각하지만 ‘내가 너를 구원해줄게, 나만 믿어’가 아니라 ‘너 스스로 걸어가야 돼’라는 말을 하기 위해 일부러 더 거리를 뒀을 것이다. 그런 캐릭터를 보여주고 싶었다. 

벌새

남동철    영화 속 은희처럼 만화 그리기를 좋아했나.

김보라    만화 덕후였다. 초등학교 때 유일한 취미가 만화방 가는 거였고 만화가가 되는 게 꿈이었다. 지금도 내 삶에서 만화에 빚지고 있는 게 많다. 그 세계는 그린 사람도 보는 사람도 굉장히 공평한 느낌이 있고, 소수자에 대해 손가락질하기보다 열려 있다. 여전히 만화를 좋아하는데 <벌새>를 준비하면서도 미국의 인디 만화를 무척 많이 봤다. 미국 인디 만화 중에 개인적 서사를 다룬 것이 많은데, 그중에 「바늘땀」과 「재미난 집」에서 영감을 받았다. 「내 인생의 괄호」라는 작품은 작가가 자신의 투병기와 삶의 성장을 관통해서 만든 작품인데, 은희가 몸의 이상을 발견하고 수술을 경험하는 설정을 다루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사실 그 사건은 실제 내 경험이 반영된 것이다. 중학교 때 침샘에 혹이 생겨 수술을 받았는데 그게 무척 드라마틱하게 기억된다. 영화에서도 은희가 심각한 투병을 한 건 아니지만 육체적 징후가 개인의 마음 상태와 어떤 식으로 연관돼 있는지 보여주고 싶었다. 그 과정에서 「내 인생의 괄호」라는 만화가 힘이 됐다.

남동철    그런데 만화를 좋아하다가 영화감독이 되겠다는 결심은 어떻게 하게 됐나.

김보라    고등학교 때 예고 연극영화과에 진학하고 대학에서도 영화를 전공했다. 원대한 꿈이 있었다기보다는, 영화를 보거나 만들 때 한 인간의 본질을 바라보게 되는 느낌이 좋았다. 사람이 그의 본질보다는 그가 사는 동네, 다닌 학교 같은 걸로 평가되기 쉬운데, 나 역시 그렇게 오해받는다고 느낀 순간이 꽤 있었다. 그런데 내가 앞에 나서지 않고 카메라 뒤에서 내 얘기를 했을 때, 비로소 나라는 사람이 본질로서 이해받는다고 느꼈다. 한 편의 영화 안에서는 인간의 올바른 모습뿐만 아니라 그가 지닌 다양한 결을 보여주는데 그런 것이 좋다. 타인과 기억을 공유할 수 있다면 더없이 행복하고.

남동철    영화를 하게 된 계기와는 또 다르게 실제로 어느 시점에 ‘영화란 이런 것이구나’ 하고 각성한 계기가 있지 않았나.

김보라    사실은 대학을 졸업하고 영화를 그만두려고 했다. 그래서 2006년에 한 대학의 문예창작과에 입학했다. ‘시를 써야겠다’고 결심했는데 결국 한 학기 후에 자퇴했다. 그때 내가 좋아하고 동경하는 것과 내가 하고 싶고, 더 잘할 수 있는 것은 다름을 알게 됐다. 다른 걸 해보니 영화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더 결정적인 계기는, 나에게 어찌 보면 영지 선생님과 같은 명상 선생님이 계신데 그분과 상담하면서였다. “영화 그만둘 거다. 안 하고 싶다. 영화 찍는 거 힘들고 지긋지긋하다. 난 잘하는 것 같지도 않다”고 얘기하면서 엉엉 울었다.

나는 그런 대답을 기대했다. “그래, 그럼 이제 전공을 바꿔서 잘해보렴.”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얘기를 차분히 들으시다가 “그렇게 힘들었던 걸 보니 영화를 정말 사랑하나 봐요”라고 말씀하시더라. 머리가 띵하는 느낌이었다. 나는 영화 만드는 게 너무 힘들어서 영화와 맞지 않고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선생님 말씀을 듣는 순간 ‘아 그래, 잘하고 싶고 너무 사랑해서 힘들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정말 큰 계기가 됐고 결국 영화를 더 배우기 위해 유학을 결심했다, ‘그래, 앞으로 더 열심히 만들어보자’는 마음으로. 여전히 영화는 힘들지만 삶의 전환점이 된 이야기를 해주신 선생님께 감사하다. 이번 서울독립영화제에서 <벌새>가 상영되는데 선생님이 보러 오실 거다. 무척 기대된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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