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가족>의 삼촌과 조카, 최민식과 송강호 그때 그 얼음과 불의 노래를 다시 볼 수 있을까? 그들의 케미

by.백은하(백은하연구소 소장, 영화저널리스트) 2019-01-07조회 2,878
송강호 최민식

젊지도 늙지도 않은 두 남자가 좁은 방바닥에 아무렇게나 구겨져서 잡지와 만화책을 읽고 있다. 하나는 가열차게 엉터리 윗몸일으키기를 하던 끝에 모로 누워 잡지를 뒤적이고, 하나는 무심히 만화책을 넘기며 셜록이라도 된 듯 ‘안개 산장’을 방문한 “뭔가 이상한” 첫 손님을 두고 의심하기 시작한다. 참고로, 둘은 삼촌과 조카라고 한다.

“왜… 내가 아까 맥주 세 병 가지고 올라갔잖아….” 조카가 스산하게 말을 시작하면, “안주 없이?” 삼촌은 이상한 포인트에서 김을 빼는 의문을 제기한다. 조카가 그 이상한 손님이 자신에게 ‘학생… 학생은 고독이 뭔지 알아?’라고 물었다고 하자 그제야 삼촌은 “그래서 뭐라고 했냐?”고 흥미롭게 묻는다. 이어지는 조카의 대답. “‘나 학생 아닌데요?’ 그랬지.” 엇박을 타는 리듬, 만날 수 없는 평행선. 이내 손님 이야기에 흥미를 잃고 잡지책을 던져버린 삼촌의 손이 슬며시 츄리닝 아랫도리로 들어가는 와중에도 조카는 계속 중얼거린다. “아무튼 그 사람 표정이 정말 이상했어…. 뭐랄까… 고독 그 자체였던 것 같애.”

같은 이불을 덮고, 같은 밥에 반찬을 먹고, 같이 삽을 들고 땅을 파고 있지만, 이 삼촌과 조카는 뭔가 다른 우주의 사람들 같다. 참고로, 삼촌 역은 배우 최민식이고, 조카 역은 배우 송강호다.

김지운 감독의 놀랍고 독창적인 데뷔작 

<조용한 가족>(1998)은 노부부가 가족과 함께 신장개업한, 그러나 도통 손님이 찾아오지 않던 산장에 수상한 손님이 하나둘 방문하면서 벌어지는 블랙코미디다. 자살과 사고로 손님이 하나둘 죽어나가자 산장의 가족들은 점점 땅을 팔 일이 많아진다. 이 모든 범죄를 결정하는 것은 아버지(박인환)이지만 망치(심지어 최민식의 첫 등장은 망치와 함께다. <올드보이>를 미리 예견한 김지운 감독의 선견지명이여!)와 삽을 들고 일을 처리하고, 시체를 옮기고, 구덩이에 묻는 행동조는 삼촌과 조카다.

“좀 못되게 생긴 사람이 우리 오빠구요, 좀 착하게 생긴 사람이 우리 삼촌이에요.” 갓 출소라도 한 듯 짧은 스포츠 머리 스타일에 쌍꺼풀 없는 짝눈의 북방계 조카 송강호와 문학청년처럼 아무렇게나 긴 머리에 짙은 쌍꺼풀이 진 눈을 껌벅거리는 남방계 삼촌 최민식은 외양부터 완전 다르다. 조카는 윗방 손님들이 벌이는 질펀한 정사 소리를 듣기 위해 한밤에 몰래 나가고, 자는 척하던 삼촌은 한쪽 눈만 뜬 채 그를 감시한다. 싱거운 톰과 제리 같기도 하던 그들은 어느덧 시체 파묻기에 손발이 척척 맞아지자 “너 오늘 삽이 안 보이더라”며 고무 격려하는 관계로 발전한다. 이에 으쓱한 조카는 처음으로 패기 있게 소리친다. “아버지 또 뭐 묻을 거 없어요? 김장독 같은 거 김장독! 이하하하하”

송강호 최민식

최민식이 불이라면 송강호는 얼음이다. 두 배우는 캐릭터에 접근해가는 형태도, 연기의 방법론도 다르다. 최민식이 캐릭터에 풍덩 뛰어들거나 그 불가마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면, 송강호는 캐릭터와 조금 거리를 두고 꼼꼼히 살피고 분석한 끝에 자신의 몸에 가장 잘 맞는 모습으로 변형시켜나가는 배우다. 하지만 이렇게 다른 온도의 배우들이 <조용한 가족>에서는 삼촌과 조카로 만나 관객들이 몸을 뉘기 가장 쾌적하고 따뜻한 온도를 만들었다. <쉬리>(강제규, 1999)와 <공동경비구역 J.S.A>(박찬욱, 2000), <살인의 추억>(봉준호, 2003), <올드보이>(박찬욱, 2003)가 찾아오기 전, 그러니까 <조용한 가족>은 송강호와 최민식이라는 완벽히 다른 우주가 스크린 위에서 잠시 조우한 첫 번째 마법 같은 순간이었던 셈이다.

두 개의 서로 다른 거대한 우주 이야기를 하면 빼놓을 수 없는 배우들, 로버트 드니로와 알 파치노는 각각 젊은 비토 콜레오네와 그의 아들 마이클 콜레오네로 <대부 2 The Godfather: Part II>(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1974)에 출연했다. 하지만 함께 연기 할 수 없는 서로 다른 타임트랙 위를 달렸다. 그리고 13년 후 <히트 Heat>(마이클 만, 1995)에서는 강력계 형사와 1급 범죄자로 영화 내내 서로를 의식하고 경계하지만 정작 술집 신에서 딱 한 번 마주친다. 그리고 34년 만에 <의로운 살인 Righteous Kill>(존 애브넷, 2008)에서 살인범을 쫓는 형사 콤비가 되어 마침내 러닝타임 내내 함께했다.

송강호와 최민식, 최민식과 송강호, 이 두 배우를 다시 한번 한 영화의 한 프레임 안에서 만날 날이 올까? 이들의 여전한 혹은 더욱 엇박자를 타는 ‘케미’를 확인할 행운이 찾아올까? 참고로, <조용한 가족>은 1998년에 개봉했다. 나는 앞으로 15년은 더 희망을 버리지 않을 의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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