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사에 등장하는 많은 인명과 작품명 중 꽤나 익숙한 인물이나 영화지만 구체적인 활동이나 작품에 대한 이야기는 알려지지 않은 경우가 있다.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KMDb,
www.kmdb.or.kr) 내 온라인사료관에는 지나쳐버리기 십상인 영화인과 영화사에 관한 이야기를 이미지 자료와 함께 소개하는 코너 ‘
이미지로 만나는 영화사’ 섹션이 있다(KMDb→한국영화사료관→
사료콘텐츠).
오늘 소개할 영화인은 ‘천의 소리, 성우 고은정’이다. 엄앵란을 비롯해 1960~1970년대 한국영화 여주인공의 목소리를 도맡아 연기한 고은정은 당시 크레디트에 이름이 올라가지 않은 탓에 필모그래피가 제대로 정리되지 못했다. 그러다가 2009년 한국영상자료원 구술사업 생애사 인터뷰를 통해 ‘영화인 고은정’으로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풍부한 음색을 자랑하는 고은정은 일제강점기인 1936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감수성이 풍부했는데 여고 시절인 6?25전쟁기에는 여군으로 입대해 종군하는 중에도 문학소녀로서의 감성을 놓치지 않은 인물이었다. 고은정은 숙명여대 재학 중인 1954년 KBS방송극회원(성우) 1기로 방송계에 입문했다. TV가 등장하기 전, 당시 라디오 성우의 영향력은 실로 대단했다. 고은정은 많은 훈련과 경쟁 끝에 라디오 드라마 <산넘어 바다건너>(1957), <동심초>(1958), <장희빈>(1959) 등을 통해 성우로 인정받고 대중에게 이름을 알렸다. 영화에는 <동심초> (신상옥, 1959)에서 19세 경희(엄앵란) 역의 후시녹음을 맡으며 데뷔했다. 이후 엄앵란-고은정 콤비로 엄앵란의 출연작 대부분에서 후시녹음, 즉 엄앵란의 목소리 연기를 했을 뿐만 아니라 20여 년에 걸쳐 당대 최고 배우들이던 김지미, 문희, 윤정희, 남정임, 정윤희, 안인숙 등의 목소리를 도맡아 연기했다.
고은정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외화 더빙 성우, 라디오 드라마 성우, 아나운서, 연극배우 등으로 활동했으며 영화 <위기의 여자>(정지영, 1987)에서는 시나리오는 물론 감독의 권유로 직접 출연까지 했다. 또 그녀는 라디오 드라마 방송작가로 나서 활동하며 자신의 영역을 끊임없이 확장해나갔다. 이 코너에서는 데뷔 전 감성 소녀 고은정의 모습을 비롯해 지금은 없어진 서울중앙방송국(HLKZ)과 동아방송국(DBS), 드라마와 영화의 녹음 풍경, 연극 공연 모습 등의 사진 자료와 증언을 통해 당시의 대중문화를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