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래 감독, 두 번째 이야기 1966년 홍콩, 못 찍을 게 없었다

by.배수경(영화사연구소 객원연구원) 2019-01-07조회 3,383
대폭군
대폭군
영화 <대폭군>(1966) 촬영 현장. 위쪽 사진의 아래줄 가운데 카메라를 잡고 있는 이가 김종래감독이다. 

조명부로 영화계에 입문해 촬영감독으로 데뷔한 뒤 영화감독을 하고 방송계로 옮겨가 KBS교양 PD로 경력을 마친 김종래 감독. 2014년 한국영상자료원에서 합작영화에 관한 구술 채록을 진행할 때, 1960년대 쇼브라더스와 신필림의 합작영화 <대폭군>(임원식·하몽화, 1966)의 홍콩 촬영 현장에 파견된 그를 발견했다. 그는 1938년 2월 13일생으로 서라벌예술대학에서 영화를 공부했고, 1960년대 초반 신상옥 감독의 눈에 들어 신필름 전속 촬영부로 입사해 신상옥과 최경옥 감독 문하에서 촬영과 연출을 배웠다. 그리고 <빨간 마후라>(신상옥, 1964) 촬영으로 1965년 대종상 촬영상을 수상했다. 그는 1966년 신필름과 쇼브라더스의 합작 작품인 <대폭군>의 촬영에 참여하기 위해 신필름의 스태프 및 배우 40여 명과 홍콩 쇼브라더스에서 넉 달가량 머물렀다. 동양의 할리우드라 불리던 쇼브라더스의 촬영 환경은 역시 달랐다. 스튜디오 촬영이 발달해 있던 쇼브라더스는 오전 9시 출근 오후 6시 퇴근, 점심시간 준수 등 노동 원칙 또한 잘 지켜지고 있었다. 그러나 ‘빨리빨리’를 입에 달고 사는 한국인에게 이것은 중국인의 ‘만만디’로만 보일 뿐. 급하면 2주 만에 영화 한 편을 개봉할 수 있었던 한국영화인들에게는 참 답답한 노릇이었다. (임원식 감독은 구술에서 <숙부인>(1966)을 신필름에서 2주 만에 만들었다고 증언했다.) ‘밥 다 먹고 잠 다 자고 언제 영화 만드나’라는 불안감이 신상옥 감독 이하 한국 스태프들에게 생겨났고 결국 밤샘 촬영을 강행하겠다는 주장을 쇼브라더스 측에 전달, 때로 신상옥 감독이 직접 카메라를 잡으며 한국식으로 촬영을 강행해 몇 달 걸릴 촬영을 며칠 만에 끝냈다고 한다. 물론 질적으로도 좋은 결과를 내 그는 이 사건을 한국영화인들의 우수성을 과시한 경험으로 기억하고 있다. 제작진이 여러 역할을 교차해 하다 보면 크레디트의 공신력이 떨어지기도 하는데 신필름의 작품에서 이런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신필름의 유연한 노동은 어쩌면 과로에서 나온 것일 수 있다. 제대로 된 휴식 시간 없이 촬영하다 보니 조명부가 화장실에 가면 소품팀이 조명기를 잡고 촬영부가 잠시 자리를 비우면 연출부가 촬영부 일을 하는 식으로 종횡무진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그는 홍콩에서 <대폭군> 촬영에 참여한 것 외에도 신필름의 요구로 한국에서 가져간 아리플렉스 카메라와 필름을 가지고 홍콩과 마카오의 다양한 장소에서 이국적인 장면 또한 촬영했다. 이런 로케이션 촬영을 활용한 작품이 <SOS 홍콩>(최경옥, 1966)이고, 이때의 푸티지가 신필름의 다른 여러 영화에 인서트로 사용되었다.

그는 홍콩에서 지내는 동안 틈틈이 촬영 아르바이트도 했다. 홍콩 촬영감독들이 꺼리는 위험한 촬영을 해준 것이다. 예를 들어 달리는 자동차 보닛에 몸을 묶고 차 내부를 촬영한다든지, 바다 위에 떠 있는 흔들리는 요트 꼭대기에 올라가 몸을 묶고 해야 하는 촬영 등이었다. 이렇게 육체적으로 어려운 촬영뿐 아니라 정치적으로 어려운 촬영도 도맡았다. 당시 중공의 영토이던 마카오 로케이션 촬영도 쇼브라더스의 요청으로 했는데, 홍콩 촬영감독들은 위험한 공산국가의 영토에 들어가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에게 일이 돌아왔다. 비자를 받고 중공 참관인의 안내와 허락에 따라 마카오 카지노 주변과 카지노 딜러들의 움직임, 마카오의 이국적인 풍경을 촬영했다. 물론 쇼브라더스에서 요구한 장면뿐 아니라 따로 가져간 필름으로 신필름에서 사용할 장면들도 촬영해 왔다. 마카오 장면 또한 <SOS 홍콩>에 사용되었다. 이렇듯 신필름은 합작영화의 촬영 기회를 다양하게 활용했고, 역시 한국 영화인에겐 불굴의 의지가 있어 못 찍을 것이 없었다.

그는 1970년 <울기는 왜 울어>로 영화감독 데뷔, 1971년 <검은 안경>까지 5편을 연출한 뒤 영화계를 떠났고, 1970년대 중반 KBS 방송국 PD로 입사해 방송 활동에 전념했다. 이와 관련한 이야기는 2017년에 진행된 그의 이전 구술에서 확인할 수 있다(「영화천국」 63호 참고).  
김종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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