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영화인 열전 2: 영화음악가 박인영 제법 오래 듣고 싶은 음악을 만들다
by.최다은(SBS 라디오PD, <아름다운 이 아침 김창완입니다>, 팟캐스트 <김혜리의 필름 클럽> 제작)
2019-01-04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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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을 전후로 발매된 가요 음반을 펼치면 크레디트에서 꼭 발견하게 되는 글 한 줄이 있다. ‘String arranged by 박인영’. 숙명여대 작곡과 재학 시절 제2회 유재하 음악경연대회에서 금상을 수상하며 가요계에 입문한 박인영은 조동진, 김광석의 건반 세션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그녀의 이름이 본격적으로 알려진 건 가요에서 현악기의 사용이 급격히 늘어나던 1990년대 말. 윤상, 윤종신, 정석원은 만드는 모든 곡의 편곡을 박인영에게 의뢰했고, 대형 기획사의 작곡가들 역시 도움을 청했다. (god의 ‘보통날’, H.O.T의 ‘Outside Castle’, 보아의 ‘My name’ 등이 다 그녀의 손길을 거친 곡이다.) 현악기에 의해 곡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 체험한 작곡가들은 6개월이고 1년이고 박인영을 기다렸다.
영화음악가로서의 커리어를 위해 유학길에 오른 건 2008년이었다. 밀려드는 일을 뒤로하고 다시 학생이 된 박인영은 뉴욕대학교에서 차근차근 영화음악 석사 과정을 밟았다. 그리고 2011년 전재홍 감독의 <풍산개>로 영화음악가 되었다. <피에타>(김기덕, 2012), <관능의 법칙>(권칠인, 2013) 등 1년에 한 편꼴이던 작업량은 어느새 매년 서너 편가량으로 늘었다. 편곡을 그만둔 건 아니지만 <표적>(창, 2014),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김성호, 2014), <형>(권수경, 2016), <특별시민> (박인제, 2017), <당신의 부탁>(이동은, 2017), <창궐>(김성훈, 2018) 등의 필모그래피를 통해 이제는 ‘영화음악가’라는 타이틀이 앞서게 됐다.
그녀는 유학 이후에도 계속 미국에 머무르고 있다. 영화의 중심지인 LA로 이주한 후 꾸준히 도전한 결과 디즈니 주니어 채널에서 방송되는 <Fancy Nancy>의 편곡을 담당하기도 했다. 얼마 전 박인영에게 ‘왜 불편을 감수하면서 타국살이를 하는지’ 물은 적이 있다. 그녀의 대답이 인상적이었다. “이곳에 있으면 나이와 성별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아무도 나를 ‘제법 오래 버티는 여자’로 보지 않는다. 스스로에 대한 기대감을 유지하며 작업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