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영화인 열전 2: 의상감독 조상경 캐릭터를 숨 쉬게 하는 옷을 짓다

by.이화정(씨네21 기자) 2019-01-04조회 2,913
조상경

누구든 ‘조상경’이라는 이름을 모를 수는 있다. 하지만 한국영화 크레디트에 ‘의상감독 조상경’이 올라가기 전과 후의 변화는 누구라도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다. 그만큼 의상감독 조상경이 한국영화의 비주얼에 세운 혁신의 바람은 대단했다. 미대에서 수묵화를 전공한 후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무대미술과 4학년에 재학 중 <피도 눈물도 없이>(류승완, 2002)를 함께 작업할 새로운 인재를 찾아 나선 류성희 미술감독과의 만남이 그가 영화계에 발을 들여놓은 첫 단추였다. 이를 시작으로 <올드보이>(박찬욱, 2003), <친절한 금자씨>(박찬욱, 2005), <달콤한 인생>(김지운, 2005), <괴물>(봉준호, 2006)에 이르기까지 그의 필모그래피 전반부에 해당하는 2000년대 초중반의 작품 활동은 정말 강렬했다. 그는 박찬욱, 김지운, 봉준호, 류승완 감독 등의 작품을 거치며 한국형 누아르에 옷을 입히는 역할을 해왔다. 전에 없던 영화의 출현에 걸맞은, 전에 없는 의상이었다. 배우들은 그가 만든 의상을 입는 순간 캐릭터에 몰입했으며, 감독들은 그런 배우와 마주하는 순간 자신이 만든 세계가 존재하는 걸 직접 실감하게 되었다.

조상경의 스크린 도착은, 금자씨(<친절한 금자씨>)의 촌스러운 땡땡이 원피스가 세상 어떤 옷보다 스타일리시할 수 있다는 것을, 같은 양복이라도 <달콤한 인생>의 이병헌과 <내부자들>의 이병헌이 입은 것이 확연히 다를 수 있음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그 특유의 ‘시각’은 <올드보이>의 오대수, <친절한 금자씨>의 금자씨, <달콤한 인생>의 백 사장 등 우리가 기억하는 무수히 많은 한국영화의 캐릭터를 인식하게 해주는 고유한 칩으로 작용했다. 조상경 의상감독은 “스토리, 톤, 캐릭터가 전혀 다르므로, 각자에 딱 맞는 옷을 입혀야 한다”고 말한다. 세상 단 한 사람(캐릭터)을 위한 맞춤의상, ‘코스튬 디자인’ 작업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 이유로 그는 기존 의상을 사용하기보다는 원단부터 새롭게 준비해 의상을 짓는 조상경만의 작업 방식을 만들어나간다. 최근 그는 <남한산성>(황동혁, 2017), <강철비>(양우석, 2017), <마녀>(박훈정, 2018), <인랑> (김지운, 2018), <신과 함께>(김용화, 2017?2018) 시리즈 등에 참여했으며, 그렇게 한 땀 한 땀 지어나간 의상이 이제 70여 편에 달한다. 처음 누아르물 위주의 작업에서 이제는 장르와 시대극, 현대물을 넘나들며 오늘도 또 한 명의 캐릭터가 살아 숨 쉬게 만드는 역할을 오롯이 해나가고 있다.

최근 조상경 의상감독은 혼자 작업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개성 있는 실장들이 함께 참여하는 스튜디오 ‘곰곰’을 설립했다. 스타일리스트가 현대극 의상 작업에 참여하는 지금, 조상경 의상감독은 영화의상만을 전문으로 하기 위한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해답을 ‘전문화’에서 찾는다. 그는 의상 분야에서 한 번도 시도되지 않은 것들에 과감히 도전함으로써 전문화를 이루고 있다. 잊을 수 없는 그의 의상과 꼭 닮은, 강렬한 발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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