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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프실>은 4대강 사업으로 영주댐이 건설되는 과정에서 수몰된 마을 ‘기프실’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문창현 감독은 기프실이라는 공간, 그곳에서 오래 살다 이주를 준비하는 할머니들의 일상을 기록하면서 그곳 주민이던 감독의 친할머니와 감독 자신의 이야기를 다양한 층위로 접합했다. 감독의 시선을 적극적으로 녹여낸 사적 다큐멘터리이자 사라져가는 공간에 대한 투쟁의 기록인 이 작품에 대해, 정민아 영화평론가와 문창현 감독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일시 | 2018년 7월 27일(금)
참석자 | 문창현 영화감독, 정민아 영화평론가
기록 및 정리 | 이아림 「영화천국」 편집부
사진 | 권영탕 포토그래퍼
정민아 <기프실>은 올해 제20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한국 장편 경쟁 부문에 올랐고, 뒤이어 열린 제23회 인디포럼과 제23회 서울인권영화제에서도 상영됐다. 이제 막 영화가 활발하게 공개되는 시점이다. 이에 대한 감회가 어떤가.
문창현 작품을 마치기까지 6년이 걸렸다. 그 시간을 정리했다는 게 아직 체감되진 않는다. 영화를 계속 만들고 있는 것 같고, 4대강 사업에 관련된 문제점 등 뉴스가 계속 보도되고 있어서 영화에 대한 방향성을 고민하고 있는 것 같다. 영화는 내 손을 떠났지만 상영 기회를 찾는 등 내가 신경 써야 할 것들이 여전히 남아 있는 상황이다.
정민아 ‘기프실’이란 제목이 신비롭다. 작품에 등장하는 마을 지명인데, 이 지명에 얽힌 사연이 있나? 지명을 제목으로 내세운 이유도 궁금하다.
문창현 <기프실>은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된 영주댐 건설사업을 다룬다. 내 친할머니 댁이 그 수몰 지역에 있었다. 나는 오지필름이라는 다큐멘터리 창작공동체에서 2012년부터 활동했는데, 당시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이 활발하게 진행되던 중에 거기 문제가 있다는 것을 전국의 미디어 활동가와 독립영화 작가들이 이야기해보자고 해 오지필름이 함께하게 됐다. 부산에서 지내다 보니 4대강 사업 중 낙동강 지역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는데 그 과정에서 영주댐과 내성천 이슈를 알게 됐다. 할머니 댁이 있는 곳이 영주댐 건설로 수몰되는 지역임을 명확히 인식한 것도 그때다. 할머니뿐만 아니라 그곳에 살고 계신 분들이 터전을 잃는다는 의미였고, ‘그럼 내가 이 이야기를 찍어야 한다’고 생각해 영화를 시작하게 됐다. 영화의 전체적인 내용은, 수몰되는 기프실 마을에 살고 계신 할머니들과, 영화를 만드는 동안 돌아가신 나의 할머니, 그리고 나의 이야기다. 마을에서 촬영을 하며 정말 많은 분을 만났는데, 영화에도 등장하는 한 할아버지께 ‘기프실’이란 이름에 대해 여쭤보니 낙동강 중상류 지역에 운포구곡이라는 아홉 개의 골짜기가 있는데 아홉 번째 여울지는 위치에 기프실 마을이 있다고 한다. 물이 여울져서 흐르다 보니 댐이 건설되면 기프실이 가장 깊은 곳이 된다고 하더라. 마을이 깊은 골짜기에 있다 보니 예전에 그곳에서 학살이 일어나기도 했고. 마을 이름의 의미에 대해 처음 알았고, 마음속에 계속 가지고 있다가, 제목을 정해야 했을 때 ‘기프실’을 영화 제목으로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우리가 기억에 대해 말할 때, ‘새까맣게 잊어버린다’는 표현을 쓰곤 한다. 기프실 마을도 물이 차면 가장 깊은 곳으로 사라지게 되고 새까맣게 잊힐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 공간을 영화 제목으로 드러내면서 기프실이 기억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제목으로 정했다. 지명은 ‘깊은’+(마을을 뜻하는 단어)‘실’이라는 맥락에서 지어진 것으로 알고 있다. 기프실은 현재 수몰돼 사라졌고, 할머니 댁은 기프실에서 2km 정도 떨어진 곳으로 아직 사라지지는 않았다.
정민아 ‘4대강 사업으로 인해 사라져갈 마을과 학교를 담는다’면 흔히 국책사업으로 인해 파멸된 개인의 삶을 위한 투쟁을 예상할 수 있는데, 이 영화는 투쟁이 아니라 소통과 고백, 성찰로 채워진다. 다큐의 콘셉트를 마련해놓고 기록에 들어간 것인지 궁금하다.
문창현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지금의 형태가 됐다. 결과가 어떻게 될지 모르고 무작정, 계획 없이 ‘이건 찍어야 해’ 하는, 나로서는 좋은 마음으로 시작했다. 사실 내가 촬영을 위해 마을에 들어갔을 땐 공사가 이미 40~50% 진행된 상황이었고, 마을 주민이 공사를 반대하는 과정을 거친 뒤였다. 마을 분들이 반 정도 이주하신 상태여서, 투쟁의 그림을 담을 수 없었다는 점이 영화가 지금 형태로 완성된 큰 이유이기도 하다(웃음).
그러면서 어떻게 해야 할까 정말 많이 고민했다. 나는 늘 투쟁 현장을 담아왔는데 그에 비해 그곳에는 너무나도 사건이 없었다. 그러다가 마을에서 살아오신 주민 한 분 한 분의 일상을 찍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분들이 마을을 떠나기까지의 일상을 잘 담으면 의미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것이 지금 형태로 이어졌고, 그 과정에서 나의 할머니 이야기도 담았다. 할머니는 영화 촬영 기간에 돌아가셨다. 이 사건으로 내가 잊고 있던 인물인 친할머니에 대해,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됐다. 사실 할머니에 대한 기억이 그리 많진 않은데, 기억한다는 게 무척 추상적인 이야기라서 ‘이것을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했다. 내가 기억하는 것과 나 자신, 그리고 기프실 마을에 대한 이야기가 여러 층위로 중첩되며 이 영화가 기존의 투쟁 영화와 다른 결로 완성된 것 같다.
정민아 영화에서 시적 내레이션이 전하는 에너지가 크다. 시적인 내레이션과 감독의 영화 만들기 장면이 관찰 다큐의 틈새에 파고들어 매우 성찰적인 느낌을 자아낸다. 공적 기록과 사적 기록을 포개는 구성에 대해 더 듣고 싶다.
문창현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할머니·기프실·나, 이 셋이 다르지 않은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완성하는 즈음에 내가 기억하는 할머니를 어떻게 드러내야 할까 많이 고민하다가 내레이션을 넣게 됐다. 내레이션은 내가 초고를 쓰고 오지필름에서 함께 작업하는 김주미·박배일 감독이 살을 붙여줘 완성됐다. 영화를 보신 분들의 피드백 중 내레이션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어떤 의미인지 질문도 많이 받았고. 내레이션은 내 나름대로 친할머니를 기억하고 떠나보내는 이야기다. 나는 어릴 적 친할머니의 관심을 많이 받지 못했다. 예쁨 받고 싶은 손녀였지만 할머니 품엔 항상 손자들만 있었다. 할머니 역시 돌아가실 때까지 요양원에 10년 동안 계시면서 가족으로부터 소외된 셈이었다. 기프실이란 공간이 국책사업을 이유로 사람들에게 소외되듯이. 그렇게 옆에 있지만 기억하지 못하고 사라져가는, 신경 쓰지 못하는 존재들에 대해 기록하고 싶었던 것 같다.
정민아 할머니들을 다루는 남성 감독들(박배일, 임흥순, 이강길 등)과 여성 감독 사이에 차별점이 있을까? 있다면 무엇일까.
문창현 차이가 있어야 한다고, 또 조금은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여성의 삶을 남성이 들여다보는 것과 여성이 들여다보는 것이 다를 것이다. 내겐 친할머니와 끈끈한 애착 관계를 갖지 못한 ‘결핍’이 있는지, 그 시절 할머니의 삶에 대해 듣고 느끼고 온전히 받아들이고 싶은 맘이 있었다.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인 김노미 할머니를 처음 봤을 때 ‘노미’라는 이름이 너무 예뻐서 칭찬해드렸는데, 사실 그 이름은 남아선호가 팽배하던 시절에 할머니 동생으로 꼭 아들을 낳겠다고 이름에 ‘놈’자를 넣은, 지금으로선 어이없는 역사를 지닌 이름이었다. 할머니의 삶이 너무 기구한 게, 자신의 이름은 다른 존재를 위해 지어졌고, 일생 내내 남편과 자식 등 다른 사람을 위해 살다시피 했고, 국가의 사업 때문에 50년 넘게 산 곳에서 쫓겨나 기프실 마을로 오셨는데, 그곳에서 10년 산 뒤 다시 국가에 의해 내쫓기는 삶이 되었다. 노미 할머니가 살아온 이야기를 듣고 이것이 한국에서 여성이 선 위치라는 생각을 했는데, 여성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고 해야 한다는 마음을 어렴풋하게 갖게 된 것 같다. 그 공간에서 노미 할머니와 계속 생활하면서, 내가 가진 특유의 관계 맺기 방식을 통해 남성 감독과는 조금 다른 태도가 나오지 않았을까 스스로 기대하는 바가 있고, 그렇게 해석해주신다면 감사하다.
정민아 이야기처럼 노미 할머니는 여성으로서 힘겨운 역사를 겪은 셈인데 그런 것에 비해 영화를 지배하는 정서는 투쟁의 힘겨움과 패배의 정서가 아니다. 이주를 통해 땅을 다시 일구며 생명력을 깨우는 힘으로 전환되는 정서가 영화에 담겨 있다. 이는 어쩌면 보수당을 끝까지 지지하는 지역 기반 때문에 생긴 순응성일 수도 있을 것이다. 복잡한 감정이 교차할 수밖에 없는데, 보수적인 정서가 지니는 순응성과 땅의 생명력을 믿고 새 삶을 일구는 에너지가 한 끝 차이인 것 같다. 이러한 교차된 감정을 감독님도 가졌을 것 같다.
문창현 기프실은 정말 산골짜기에 있는 마을이다. 국가에 순응적일 수밖에 없는 곳이고 어쩌면 그래서 이곳에 댐을 건설하기로 한 게 아닌가 생각되기도 한다. 어르신 세대는 국가가 잘돼야 내가 잘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고, 역사적·세대적으로도 국가의 명령에 불복종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경향을 강하게 답습해왔다. 사실 대구·경북 지역은 독립운동가가 많이 배출됐고 민주화의 성지로 여겨진 적이 있으나 그런 이들을 노린 학살의 아픈 역사도 있다. 순응하는 게 지금 마을을 이루는 세대의 현실이고, 그럼에도 여성의 힘으로 계속 살아가는 이야기를 영화를 통해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국가가 농사를 불허한 땅에서 할머니들이 계속 흙을 파헤치고 뿌리를 다지는 장면이, 내가 기억하고 바라봐야 하는, 순응의 역사를 살아온 할머니들이 그 나름의 방식으로 저항하는 삶일 것이다.
정민아 장면 사이에 들어간 개미, 새, 고양이, 물고기 등의 인서트 이미지는 감독이 지닌 감정의 은유·상징으로 비친다. 인서트 컷을 다양하게 활용한 의미가 궁금하다.
문창현 영화 구성 측면과 관련해 내가 할 수 있는 것, 이미지로 의미를 담고 싶은 부분에 대해 할 수 있는 것들을 이번 영화에서 많이 시도한 것 같다. 인서트 컷에는 내가 기프실이라는 공간을 몸으로 느낀 것이 담겨 있다. 촬영이 막바지에 접어들수록 그 공간에서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다 담고 싶고 하나하나 기억해야겠단 욕심이 생겼다. 그 결과가 인서트 컷이 아닌가 싶다. 내가 보고 있는 것들을 관객도 함께 봤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랄까. 우리와 함께 살고 있는데 무심하게 지나치는 미물들을 같이 돌아보고, 우린 과연 어떤 걸 보며 살아가는지 함께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는 공간을 우리는 어떻게 만들었는지도 생각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맥락에서 인서트 컷을 많이 넣게 됐다.
정민아 마지막 장면에서는 노동하는 감독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흙을 퍼 담는 장면을 통해 강조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문창현 나는 직관적으로 그 장면을 촬영하고 작업했는데 관객이 은유로 느끼는 장면 중 하나인 것 같다. 마지막 장면에 등장하는 그 공간은 할머니 집이 있던 터다. 집을 다 부수고 사람이 다니지 않게 되니 풀이 무성하게 자라고 모든 것이 말라 있었다. 늘 다니던 곳인데도 다가가려니 너무 무서운 공간이 되었더라. 그 공간의 흙이라도 한 줌 담아서 그곳과 할머니를 기억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촬영한 컷이다. 기억하겠다는 말도 중요하지만 직접 행동으로 옮긴 것이라고 할까. 앞으로의 결심에 대한 방점 같은 것이다.
정민아 이 작품은 영웅 중심의 인물과 사건, 아카이브 자료나 전문가 인터뷰에 기댄 공적 역사 기록이 아니라, 현장에 있던 사람들, 그리고 후세대인 내가 본 사건에 대해 말함으로써 매우 미시적으로 현실을 들여다보게 한다. 이러한 방식의 강점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문창현 전문적인 시각을 담아 하는 작업의 장점도 분명하지만, 내 영화의 장점이라면 사안을 바라보는 개인의 진실한 태도랄까… 그것이 관객에게 전해져 공감대를 형성하길 바란다. 객관적으로 사실을 이야기하기보다 이런 사적인 기록 방식이 보는 이로 하여금 사회 문제, 투쟁 현장에 대해 좀 더 가깝게 그리고 사안에 대해 각자 생각하게 하지 않을까 한다. 그게 사적 기록의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정민아 이 영화의 제작비는 공적 자금, 크라우드펀딩, 개인 후원 등으로 이루어졌다. 다큐 만들기가 현재 영화 시장에서는 힘들 수밖에 없다. 다양한 펀딩을 통해 다큐멘터리 제작이 지속 가능하다고 보나.
문창현 긍정적이진 않다. 가장 좋은 것은 국가 제도가 다큐멘터리나 다양성영화(예술영화)에 지원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바뀌면 좋겠는데 빠른 시일 내에 상황이 나아질 것 같지는 않다. 사실 10년 전에도 같은 이야기를 했다. 이 상황이 참 슬프다. 많은 분과 영화의 의미를 공유하고 힘을 보태달라고 저 나름대로 알리며 노력하지만 막상 펀딩이 시작되면 관심을 가지는 이들은 거의 지인이다. 그래서 개인적으론 공적 자금이 더 늘어나길 바라고, 다큐멘터리스트는 작업을 지속하며 그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를 이어나가야 한다고 본다. 다양한 이야기와 형태가 존재한다는 점, 다큐멘터리의 미학적인 성과에 대해 모색하며 예술의 한 장르로 다져가고 대중이 인식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
정민아 최근 유튜브나 SNS를 보면 현장 기록물이 무수히 많다. 그런 기록물을 누구나 쉽게 접하는 뉴미디어 현실에서, 다큐멘터리영화는 현실과 어떻게 접속해야 하는지 고민이 많을 것 같다. 이 시대에 다큐멘터리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보나.
문창현 얼마 전에 한 감독님이 1년에 걸쳐서 만든 작품을 그냥 SNS에 공유하더라. 충격적이었다. 긴 시간 들인 노력이나 창작에 대한 가치가 제대로 매겨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잘 만들었든 아니든 예술로서의 다큐를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런데 사실 나 역시 어떻게 하면 무료로 콘텐츠를 접할 수 있을까 고민한다(웃음). 그런 아이러니를 극복하는 게 과제라고 본다.
정민아 영화에 등장하는 마을 분들은 영화를 보셨나.
문창현 마을회관에서 첫 시사회를 했다. 노미 할머니, 귀분 할머니, 나의 큰아버지를 비롯해 마을 주민 30여 분이 모인 가운데 시사회를 했는데, 주인공 할머니들은 영상에 나오니 무척 좋아하셨다. 시사회가 끝나고 할머니들이 ‘수고했다’ ‘고생했다’고 말씀하시는데 그게 정말 큰 힘이 되었다.
정민아 <기프실>이 영화제를 통해 조금씩 관객과 만나고 있는데, 앞으로 영화 상영과 관련한 구체적인 계획이 잡혀 있나.
문창현 다행히 <기프실>은 배급사를 만났다. 일단 국내외 영화제에 출품해서 성과를 좀 더 얻으면 작은 규모로나마 개봉할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오지필름 동료인 박배일 감독의 <소성리>가 8월에 개봉하는데, 그런 선례를 보며 <기프실>도 개봉 가능성에 대해 기대하고, 그 방향을 계속 찾아가야 할 것 같다. 부산에 국도예술관이라는 공간에서 일주일간 영화를 기획 상영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곳마저 지금은 없어졌다. 나 같은 신진 감독은 설 자리가 많지 않고, 더 많은 작품을 만든 선배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작품을 힘들게 만들었는데 보여줄 방법이 없으니 영화를 완성하고도 한편으론 답답함을 놓지 못한다.
정민아 이 영화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나는 ‘소멸된 공간과 사람에 대한 향수, 그리고 생명력’ 정도로 생각한다.
문창현 ‘사라진 기프실 마을의 시간’이랄까. 그건 기프실이 사라지는 동안의 내 시간이거나, 그곳에 거주하신 다른 분들의 시간, 또는 그 공간 자체의 시간일 수도 있다.
정민아 많은 감독이 서울에서 활동하는데, 감독님은 부산을 거점으로 활동하고 있다.
문창현 학교를 부산에서 다녔고 그러다 보니 부산에 터를 잡게 됐다. 운 좋게 부산에서 공동체를 형성하게 돼 함께하는 사람들 힘으로 부산에서 계속 활동할 수 있는 것 같다. 부산영상위원회에서 지역 영화가 성장할 수 있도록 지역 영화인에게 혜택을 주고 있다는 점도 이유 중 하나이고. 공교롭게도 지역 이야기를 여러 번 했는데, 경북과 그 주변 지역 및 부산 지역에 산재한 문제에 대해 할 이야기가 많다.
정민아 활동가로 시작해 지금은 카메라라는 매개를 통해 현실을 관객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앞으로 <기프실>과 같은 방식으로 작업을 이어갈지 궁금하다.
문창현 <기프실>은 뭣 모르고 달려든 작업인데 6년이라는 시간은 오지필름의 힘으로 완성됐다고 생각한다. 나는 현장에 계속 있을 것이고, 지금도 다른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대구에서 태어나 구미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같이 활동하는 김주미 감독의 고향도 구미다. 두 여성 감독이 박정희로 알려진 구미라는 공간을 들여다보자는 데서 출발해 영화 작업이 시작됐다. 2017년이 박정희 탄생 100주년이었는데 이를 앞두고 국가에서 박정희 기념사업에 너무 많은 혈세를 쏟아붓는 현실에
김주미감독이 이의를 제기하고 싶어 했고, 같은 맥락에서 나 역시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기록해야겠다는 데 뜻이 맞았다. 박정희 외엔 아무것도 없는 듯한, 유령화된 공간 구미와 우리 주변 곳곳에 있는 박정희의 유령을 찾아보자는 생각으로 <구미의 딸들>이란 작업을 하고 있다. 영화라는 게 내가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는 데 새삼 놀랐다. <기프실>을 오지필름의 완성작으로 본다면 <구미의 딸들>은 다른 여러 곳에서 도움을 받고 있어 기존의 오지필름 작업과 조금 다른 결의 작품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