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편집 분야에서 주목할 만한 성과를 낸 영화인이 한자리에 모였다. 다양한 이야기를 하나로 응집시킨 <
1987>(2017)의
장준환 감독, 원작과 다른 리듬을 만들어낸 <
독전>(2017)의
이해영 감독, 그리고 두 영화의 편집을 담당한 양진모 편집기사. 이들은 감독과 편집기사가 이렇게 허심탄회하게 편집의 역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한다. <1987>과 <독전>의 편집에 대해 김형석 평론가가 묻고 세 영화인이 ‘털어놓았다.’
일시 | 2018년 7월 16일(월)
진행 | 김형석 영화평론가 대담 |
양진모 편집기사, 이해영 영화감독, 장준환 영화감독
기록 및 정리 | 이아림 「영화천국」 편집부 사진 | 김하영 포토그래퍼
김형석 감독과 편집기사는 어떻게 커뮤니케이션을 하는지 궁금하다. <독전>의 경우엔 어땠나.
이해영 양진모 기사님과는 <독전>에서 처음 만났다. 나는 촬영하면서 현장편집본을 틈틈이 정리하고 촬영이 끝나면 현장편집기사가 현장편집본 전체를 한 번 손봐 내 의도가 충분히 반영된 버전을 편집기사님께 드린다. 양 기사님께도 현장편집본을 보내드리고 기사님의 편집본을 확인하며 서로 의견을 조율해가면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2~3주 후 양 기사님의 버전을 봤더니 생각보다 많은 장면이 잘려 있었다(웃음). 의견 차이가 큰 것 같아서 그걸 어떻게 좁혀갈지 처음에는 사실 막막했다.
양진모 <독전>은 초반이 힘들었다. 현장편집본이 정리가 잘돼 있어서 그것을 확인해가며 내 생각과 다른 부분의 격차를 줄였고 ‘이런 형식이면 괜찮을 것 같다’고 감독님께 보여드렸는데, 내가 너무 많이 잘라내서 감독님이 충격을 받으셨다(웃음).
이해영 편집기사님과 시나리오나 콘티를 가지고 얘기할 때도 있고, 촬영 현장에 오시는 경우 찍은 걸 보여드리며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는데, 아무리 많은 이야기를 사전에 나눠도 촬영을 마치고 전체를 다 붙여보면 이야기를 새로 시작할 수밖에 없다. 일을 빠르고 효율적으로 하려면, 이야기 전체를 바라보는 감독의 입장이 담긴 버전이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에 현장편집본을 꼼꼼히 만들어서 드린다. 전작에서 작업한 편집기사와 연이어 작업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편집기사님이 내 성향을 잘 알고 있더라도 이야기에 따라 매번 달라진다.
양진모 현장편집본에는 감독의 의견이 가장 많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그것을 중요시하는 편이긴 하다. 그러나 흐름상에 문제가 있거나 어색하면 빨리 덜어내서 감독님께 보여드리고 신속하게 해결하려고 한다.
김형석 <독전> 초기에 장면을 많이 덜어낸 데 중심이 된 판단 기준은 무엇인가? 영화의 리듬, 감정 등 다양한 기준이 있을 텐데.
양진모 감정보다는 리듬 때문인 것 같다. 감독 입장에서는 앞의 신(scene)에서 감정을 쌓아야 후반부에 관객에게 감정 선이 잘 전달될 거라고 생각하는데, 나는 사실 잘 모르겠다. 그런 부분에서 매 작품 감독님들께 배우는 게 있다. 나도 조금씩 변화하고. 캐릭터 형성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장면은 내가 제안해서 넣기도 한다. 그런 것이 작업 과정에서 조율된다.
이해영 처음 양 기사님 편집본을 보니 염전의 서영락(류준열) 어머니 제사 신을 모두 자르셨더라. 너무 놀랐다(웃음). 양 기사님은 감정보다는 이야기가 빨리 넘어가는 것에 중점을 두고 그 부분을 빼신 것 같았다. 나는 인물의 감정이 쌓여서 마지막에 이르러 영향을 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양 기사님은 ‘(감정이) 안 쌓인다’고만 하시는 거다(웃음). 양 기사님은 요즘 관객이 영화를 소비하는 흐름에 좀 더 가까운 이야기를 많이 해주신다. 내가 편집과 관련해 예전 방식을 고집하는 건 아닌가 하고 깨달을 때가 있다.
김형석 <독전>과 <1987> 모두 등장인물이 많은 작품인데, <1987>의 경우 등장인물이 중간 중간에 등장하다 엔딩에서 모든 단서가 모여 한꺼번에 결말로 나아간다. 편집하는 입장에서 무척 까다로운 작업이었을 것 같다.
양진모 <1987> 역시 시나리오와 현장편집본 자체가 무척 잘 정리돼 있었다. 큰 흐름을 먼저 보고 감독님이 원하는 디테일을 살폈는데, 뭔가를 바꾸려고 애쓰지는 않았던 것 같다. 전체 흐름을 보는 게 중요했던 게, 내 입장에서 좀 헷갈리는 부분이 일부 있었기 때문이다. 덜어낸 부분 중에 박 처장(김윤석)이 조 반장(박희순) 식구들을 억지로 이사 보내는 장면이 있었는데, 박 처장이 조 반장을 ‘내 사람’이라고 신뢰한다는 점에서 그 장면은 캐릭터의 일관성이 떨어진다고 보았다. 그렇게 헷갈리는 점을 없애고 단순화하는 게 중요했다. 워낙 많은 인물이 등장하니 너무 많은 정보는 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김형석 <1987>은 오프닝과 엔딩에 기록물이 들어간다. 극영화에 이질감 없이 녹아들어야 한다는 점에서 까다로웠을 것 같다. 실제 기록물을 극영화에 쓰는 경우 일반 극영화 편집과는 다른 방식이 필요할 것 같은데 노하우가 있나.
양진모 이미 판이 짜 있어서 내가 따로 한 건 없었다. 감독님께서 “이런 푸티지를 쓸 것”이라고 하면 함께 봤다. 다만 도움이 된 경험이라면 이명세 감독님과 MBC 창사 특집 다큐 작업을 함께한 적이 있는데, 그때 푸티지를 사용하는 노하우가 생긴 것 같다. <1987>에서 오프닝과 엔딩의 자료 사용은 전적으로 감독님의 의견을 따랐다.
김형석 엔딩에서 자막이 올라갈 때 동시에 등장하는 자료사진과 영상의 힘이 대단하지 않나.
장준환 사실 그것을 관객에게 전하기 위해 이 영화를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떻게 이들이 ‘6월 항쟁’이라는 사건으로 이어지는지 보여주는 게 나에게는 굉장히 중요했다. 사실 이전에도 <지구를 지켜라>(2003) 엔딩에 푸티지를 넣었는데, 관객들이 안 보고 나가더라. 아예 크레딧을 올리지 않고 보여줄까 생각도 했고, 양 기사님이 고민을 많이 하셨다.
양진모 지금 상태가 절충안이었다. 러닝타임 문제도 있으니.
김형석 감독 입장에선 촬영 현장에서보다 편집 단계에서 영화적으로 시도하는 바도 있을 것 같다.
이해영 편집실에서 ‘이게 이런 이야기구나’ 하는 걸 깨달을 때도 많고, ‘이런 이야기에서 이건 안 되는구나’ 깨닫기도 한다. <독전>의 경우 편집 단계에서 가장 큰 변화가 생긴 부분은, 노르웨이로 공간이 바뀌며 진행되는 에필로그다. 이전 신에서 장르가 바뀌는 부분이기도 하고, 원호(조진웅)가 영화 내내 끌고 온 감정과 낙차가 심해서 그걸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가 큰 숙제였다. 음악 등 여러 가지 방법을 써보았고, 아예 에필로그를 없앨까도 생각했는데, 현재의 액자 구조, 즉 프롤로그에서 노르웨이 신으로 시작해 원호의 플래시백으로 중심 사건을 보여주는 구조가 양 기사님의 아이디어로 편집 단계에서 바뀐 부분이다. 감독 입장에서 그것은 굉장히 좋은 아이디어였다. 시나리오 과정을 포함해 영화를 촬영하고 제작하는 2년여 동안 아무도 제안하지 않은 방식이었다. 그런데 양 기사님의 제안으로 영화가 액자 구조를 가지면서, 조진웅 배우의 착잡한 얼굴이 관객에게 한번 학습됐다가 엔딩에서 소환되는 것이 여러모로 영화에 적절했던 것 같다.
장준환 <1987>은 균형감각을 가지고 이야기 흐름을 만들어내야 했다. 캐릭터가 지닌 선악의 면면이나 가치관, 캐릭터 구성 자체에서 어느 한쪽이 처지거나 너무 커 보이면 안 되는 작업이었다. 각각의 캐릭터들이 영화에서 길게 등장하지는 않지만 모두 충분히 인간적으로 살아 있게끔 보이는 게 이 영화를 믿게 만드는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부분에서 양 기사님과 조율하는 게 중요하게 작용했다. 영화 후반부에 박종철 사건의 진실이 밝혀지고 박 처장의 처벌을 암시하는 신이 그가 액자에 담긴 전두환 사진을 노려보는 장면으로 끝나는데, 원래 그 뒤에 박 처장이 회의 장소인 올림피아 호텔로 가는 장면이 더 있었다. ‘내가 평생을 애국하며 살았는데 나를 이렇게 내칠 수 있냐’고 따지러 가는 부분이었지. 영화가 ‘너무 많아 보인다’는 이야기를 계속 하다가, 그 장면을 빼보면 어떨까 하고 양 기사님이 자신 없게 얘기하셨다(웃음). 끝까지 무척 공을 들인 부분이어서 조심스러우셨던 것 같다. 그런데 그 장면을 빼면서 이야기가 훨씬 힘 있게 나아가는 느낌이 생겼다.
김형석 창작자 즉 감독이 이야기와 거리 두기가 쉽지 않은데 편집자가 대신 거리를 두는 역할을 할 수도 있겠다.
장준환 처음에 시나리오를 다듬으면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가 있고, 현장에서 촬영하며 그걸 구현하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현장에서 배우의 연기와 카메라를 통해 나온 결과는 내가 애초에 생각한 것과는 다를 수 있고, 편집기사님은 그 다른 지점을 객관적으로 본다. 감독은 ‘감정이 쌓인다’고 생각하는데 왜 안 쌓인다고 할까 싶다가도, 한편으론 편집기사님이 보는대로 특정 신에 집착하지 않고 넘어가는 게 효율적일 수 있다. 정제되어야 흔들리지 않는 힘을 가지고 관객과 소통할 수 있으니까. 그런 작업을 하는, 그래서 원래 이야기의 고갱이를 찾아가는 작업을 편집기사님이 하시는 것 같다.
양진모 현장에서 그 장면들이 얼마나 힘들게 나오는지 알기 때문에 웬만하면 유지해드리고 싶은데, 시선의 차이가 클 때도 더러 있다.
김형석 현장편집 이야기를 해보자. 이는 한국영화의 굉장히 독특한 편집 시스템이다.
양진모 현장에서 신의 완성도를 높이는 게 현장편집의 가장 큰 장점인 것 같다. 감독의 머릿속에 신이 다 있겠지만 그게 러프하게나마 연결됐을 때 안도감이 생긴다. 한국영화의 특성상 소자본으로 효과를 극대화하려다 보니 한국영화의 시스템으로 정착한 것 같다.
김형석 두 감독님은 각자 어떤 방식으로 현장편집을 활용하나.
장준환 제일 좋은 건 감정 선을 공유하고 이야기할 수 있다는 점이다. 배우들과 ‘이전의 감정은 이랬는데 다음은 다르게 해볼까’ 얘기할 수 있는 창구가 되기도 하고. 현장의 모니터링 수단으로, 그리고 배우들과 커뮤니케이션할 때 중요하게 쓰인다.
이해영 신인 배우와 촬영하는 경우엔 감독이 자세히 설명해도 컷 단위만 봐선 배우 본인이 어떤 연기를 하고 있는지 잘 모를 수 있는데, 대략의 신을 보여주면 배우가 어떤 감정으로, 어떤 위치에서 연기해야 하는지 감을 잡을 수 있다. 촬영감독·조명감독 등 기술 스태프 분들이 세팅하는 데도 참고가 많이 되고. 하루에 촬영할 수 있는 시간은 한정적이고 소화해야 하는 컷은 늘어나기 때문에, 내 경우 여기서 어떤 컷을 빼거나 꼭 찍어야 하는지, 어디서 힘을 주거나 빼야 하는지 빨리 판단해야 할 때 도움이 많이 된다. 사실 그런 판단은 아무도 대신 해줄 수 없는 부분이라 현장편집이 무척 큰 역할을 한다.
김형석 모든 편집기사가 현장편집을 거치는 건 아니다. 양 기사님은 현장편집을 거쳤는데 어떤 장점이 있다고 보나.
양진모 현장편집을 하면서 촬영 현장의 느낌을 알고 감독의 성향을 잘 파악하게 된 것 같다. 함께 작업한 김지운, 봉준호 등 감독님들의 프로세스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감독을 설득해야 할 때 다른 편집기사보다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는 사실 연출을 하고 싶어 현장편집을 시작했다. 좋은 감독님들과 현장에서 작업하면 연출 노하우를 배울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고, 이명세?곽경택 감독님 현장에서 작업을 시작했다. 현장편집을 하며 어느 부분에서 감독님이 아쉬워하는지 듣게 되었다. 그러면서 내가 편집실을 운영하면 어떤 부분은 보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김형석 편집은 무성영화 시대에 웬만한 테크닉과 미학이 거의 다 완성됐다는 생각도 든다.
양진모 꼭 그렇진 않다. 기본 미학에서 그 영역이 점점 넓어지는 것 같다. 한국영화에서 과거에 비해 가장 많이 바뀐 게 CG에 대한 의존도다. CG를 쓸 것인지 편집 단계에서 잡아줘야 쓸데없는 제작비 출혈도 막을 수 있다. 요즘은 단순 합성도 편집실에서 하곤 한다. 나중에 CG로 중요한 정보가 들어갈 부분을 미리 찍어놓았는데, (모니터링 시사 등에서) 그 정보가 없어서 감을 잡지 못할 때 편집실에서 어느 정도 잡아준다. 요즘은 그런 부분을 잘 잡아주는 것도 중요하다.
이해영 편집실에서 아주 구체적으로 ‘CG가 어느 시점에 몇 초 길이로 이렇게 들어가면 좋겠다’라고 CG 회사에 얘기해주지 않으면 CG가 의도와 많이 다르게 붙어 온다. 그래서 그런 부분을 구체적으로 잡아주는 게 중요하다. <독전> 초반에 수정(금새록)이 영수증에 8을 그리는 장면은 빈 영수증을 촬영하고 나중에 CG 작업을 한 것이다. 모니터링 시사 때 CG 작업이 안 되어 있었는데 양 기사님이 편집 단계에서 그걸 해주셨다.
양진모 그런 것들이 편집실의 영역 확장이라고 볼 수 있다. 나는 편집자 중 월터 머치를 좋아하는데, 그는 음향 영역까지 고려할 줄 아는 편집자이기 때문이다. 나 역시 그런 부분에서 변별력을 두려고 하는 편이다.
김형석 편집에 대한 많은 명언이 있다. 프랭크 카프라는 ‘편집이 영화를 구원한다’고 했는데, 어느 정도 동의하나.
장준환 충분히 동의한다. 자기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편집 단계에서 다시 깨달을 수 있다. 그러나 시나리오부터 잘 써야 하지 않을까…(웃음).
이해영 영화 후반작업 때 믹싱실에서 소리를 얹으면 그제야 영화에 꽃이 피는 기분이 든다. 나는 개인적으로 영화가 정말 완성됐다고 느낄 때가 ‘소리’의 단계인데, 편집실은 그 직전에 다른 모든 것, 시나리오가 비로소 현실 세계에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과도 같은 단계다. 연기와 캐릭터의 완성도 편집실에서 이루어지는 것 같다.
김형석 <독전>과 <1987>의 감독·편집기사 입장에서 편집과 관련해 기억에 많이 남는 장면을 각각 꼽는다면.
장준환 <1987> 후반부에 명동성당 신에서 이어지는 박종철(
여진구) 플래시백, 뒤이은 향림교회의 박 처장-김정남(
설경구) 추격 신, 그리고 엔딩으로 가는 연희(
김태리)-이한열(
강동원) 시퀀스 전체다. 그중 연희가 신문에 실린 이한열의 기사를 보고 달려나가는 신은 제작사와 편집에 대한 의견이 달랐음에도 끝까지 고집한 부분이다. 제작사에서는 연희가 오열하는 장면이 더 이어져 애절한 감정이 증폭되길 바랐다.
양진모 그 시퀀스는 시간 순서대로 되어 있지 않다. 이한열 열사가 최루탄을 맞고 그 사진이 실린 신문을 연희가 보게 되는 게 사건의 순서인데 그 순서를 섞어놓았다. 제작사에서는 이것을 시간순으로 풀어서 한 호흡으로 가길 원했다. 그러나 감독님과 내 입장에서는 감정의 기폭제가 이 신에 다 있다고 판단했다. 중요한 소품인 신발로 서사를 압축한 것도 그렇고, 시간 순서를 바꿈으로써 감정 선을 섬세하게 세팅한 거다.
장준환 그 신에는 연애 감정만 있는 게 아니다. 이한열 캐릭터의 아주 중요한 부분이 그 신에 드러난다. 투쟁 현장에서 전면에 설 줄 알고 쓰러진 친구를 챙기는 등 그전에 드러나지 않은 부분이 보이게 디자인한 거다. 이 영화의 아이덴티티가 무엇인지에 대한 부분이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었다. 이 장면을 살리는 데 양 기사님이 지지해주고 힘을 줘서 버틸 수 있었다.
양진모 <1987>의 경우 영화적으로 끌고 갈 것인지, 아니면 현실에 기반한 사건이라는 점을 더 드러낼 것인지의 갈등에서 균형을 잡는 게 중요했다.
이해영 <독전>에서는 진하림(
김주혁)이 등장하는 호텔 신에 대해 피드백을 많이 받았다. 내 입장에서는 김주혁 배우가 등장하는 모든 신을 살리고 싶었다. 한 프레임 한 프레임 편집할 때마다 고민이 많았다. 그 신에서 김주혁 배우가 워낙 압도적인 연기를 보여줬고
진서연 배우의 연기 역시 이견이 없었는데, 다만 방울(진서연)이 영화의 광기를 얼마나 잘 살릴지와 관객이 다소 불편해할 캐릭터라는 점의 경계를 많이 고민하며 설정해야 했다. 다행히 <독전>에서 가장 사랑받은 캐릭터(배우)가 이 둘이어서 배우들에게 감사했다.
그 신은 과감하기보다는 자잘한 호흡에 섬세한 세공이 많이 들어간 편집이었다. 광기나 여러 가지 상황을 잘 살리면서 신이 늘어지거나 너무 과하게 가는 것을 막을 수 있도록 편집을 정말 정확하게 잘 해주신 것 같다.
김형석 영화의 무드를 만드는 것도 편집자의 몫이지 않나.
양진모 제일 듣기 싫은 게 ‘늘어진다’ 또는 ‘정신없다’는 말이다. 나는 편집할 영화를 반복해서 많이 보는 게 그 영화를 가장 잘 아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때는 감독 입장에서 보고 어떤 때는 관객 입장에서도 보고, 그래야 감독의 의도를 더 잘 알 수 있다. <1987>을 작업하며 영화 전체를 감독님과 계속 반복해서 봤다. 이후 다른 영화를 작업할 때 그 영화 전체를 반복해서 보는 횟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전체를 계속 보면 한 신에 쓸데없는 에너지를 쏟기보다는 더 큰 그림을 볼 수 있고 어느 부분이 처지는지 알게 된다.
이해영 <독전>도 그랬다. 영화 전체를 많이 봤다. 이전에 작업한 영화에서는 신 단위, 프레임 단위로 보다가 특정한 신에 집착하는 함정에 빠지기도 했는데, 양 기사님과 함께 작업하면서 큰 맥락 안에서 영화를 읽게 된 것 같다.
장준환 편집은 같은 장면을 가지고 영화의 톤을 좌지우지하기도 한다. 동일한 법칙을 영화에 일제히 적용할 수 없는 걸 보면 영화마다 각각의 리듬이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김형석 영화마다 그 영화만의 리듬이 존재하고, 편집이 바로 그걸 잘 찾아가는 아주 중요한 과정이라고 정리할 수 있겠다.
이해영 <1987>에서 후반부에 박처장·한병용(
유해진)이 대면하는 롱테이크 신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이렇게 롱 테이크를 과감하게 사용하는 일은 이제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했는데 그 장면을 보는 순간 영화의 이야기와 캐릭터·감정이 모든 걸 이기는구나 하고 깨달았다. <독전>의 경우도 엄밀히 따지면 장르가 요구하는 호흡이나 리듬보다 실제 컷이 빠르게 넘어가는 영화가 아니다. 컷을 쪼개서 빠르게 보이는 장난을 치고 싶을 때 양 기사님이 잘 잡아주셨다(웃음). 요즘 스마트폰으로 영화를 많이 본다고 하니 컷을 많이 쓰면서 컷을 빠르게 넘겨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고, 감독이 현장에서 맹목적으로 ‘많이’ 찍으려는 경향도 생긴다. 이번 작업을 하며 그런 부분이 영화에서 중요하지 않구나 생각하게 됐다.
장준환 영화는 많은 사람의 재능이 충분히 발휘되면서 비로소 완성된다. 많은 사람이 꿈꾸던 처음의 그 이야기, 가고자 한 어느 지점까지 가는 과정의 후반에서 총합을 하는 시간과 공간이 편집실이 아닐까 한다.
양진모 편집을 정의하는 건 감히 할 수 없는 일이다. 장준환 감독님 말씀처럼 영화라는 게 많은 사람의 재능이 모여서 하나의 큰 그림을 완성하는 작업인데, 그럴 때 가장 큰 결단을 하는 단계가 편집인 것 같다. 그 과정에서 편집자의 역할은 객관적인 입장에서 감독님께 친절하고 명확하게 영화적으로 보여주는 가이드가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