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고 있어도 절로 가슴이 아린 <스위트 식스틴 Sweet Sixteen >

by.태상준(영화전문기자) 2018-03-26조회 1,513
스위트 식스틴

영국에 다녀왔다. 이런저런 이유로 유럽은 방문한 적이 많지만 영국은 난생처음이었다. 유로를 사용하는 대다수 유럽의 나라들과 달리 여전히 파운드를 고집하는 나라. 최근 ‘브렉시트(Brexit)’ 소동으로 더 이상 유럽의 일원이 아님을 공식적으로 선언한 나라.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는 과거의 영광에 취해 사는 나라. 그들의 이런 행동과 태도가 꽤 오만하다는 생각은 여전했지만, 이번엔 정말 그런지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해보고 싶었다.

런던은 런던이었다. 그 수많은 할리우드 영화에서 본 장면들이 눈앞에서 사정없이 펼쳐지니 살짝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런던의 살인적인 물가에 이내 정신을 차리긴 했다). 런던을 뒤로하고 킹스크로스 에서 기차를 타고 4시간 정도 걸려 스코틀랜드의 고도(古都) 에든버러에 도착했다. 이번 영국 여정에서 정말로 궁금하던 곳은 잉글랜드가 아닌 스코틀랜드였다. 영화 한 편 때문이었다. 

다름 아닌 켄 로치다. 켄 로치는 <나, 다니엘 블레이크 I, Daniel Blake >(2016)와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The Wind That Shakes the Barley >(2006)으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영국(더 자세히는 잉글랜드)의 대표적인 사회파 감독이다. 그가 2002년에 발표한 <스위트 식스틴 Sweet Sixteen>은 스코틀랜드의 공업 도시인 그리녹(Greenock)에서 살아가는 소년 리암(Liam)의 이야기다. 열다섯 살 소년 리암은 미혼모 누나 샨탈과 어린 조카와 함께 살아간다. 학교에서 퇴학당한 리암은 감옥에 있는 엄마가 출소하면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살 수 있는 집을 마련하기 위해 거리에서 마약을 판 다. 사실 이것 말고 리암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리암의 소박한 바람과는 달리 현실은 점점 더 최악의 상황으로 향한다.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인텔리’의 눈으로 바라보는 여느 영화들과 달리 켄 로치는 <스위트 식스틴>을 철저히 10대 스코틀랜드 소년들의 눈높이에서 끌어간다. 순박하고 터프한 10대 아이들의 모습은 여느 아이들처럼 활기차고 짓궂다. 이런 이유로 그들이 냉엄한 현실의 벽에 부딪히는 상황은 바로 앞 상황과 대비돼 더 극적이고 슬프다. 그러나 내러티브 자체는 그다지 비극적 진행이 아니다. 웃고 있는데 절로 가슴이 아리는 묘한 느낌의 영화다.

이 영화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엔딩이다. 스포일링이 두려워 자세히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하염없이 찬바람 부는 바닷가를 걷고 있는 리암의 장면이다. 무언가 중요한 행동이라도 할 것처럼 눈동자는 풀려 있고 두 손은 떨린다. 이 순간 휴대전화가 울린다. 그토록 기다리던 엄마로부터 온 전화다. “생일 축하해, 리암” 이내 영화는 암전으로 넘어간다. 이날은 바로 리암의 열여섯 번째 생일이다. ‘달콤한 열여섯’ 이라는 제목은 참으로 역설적이고 잔인한 작명(作名)이다. 이런 점 때문에 영화의 메시지가 더 구구절절하게 가슴을 찌른다.

켄 로치의 오랜 단짝인 폴 라버티가 각본을 쓴 <스위트 식스틴>은 그해 칸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해 각본상을 수상했다. 재미있는 사실 하나. 칸 상영 당시 <스위트 식스틴>은 프랑스어 자막 외에 영어 자막도 따라붙었다고 한다. 보통의 영국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극중 등장하는 사람들의 스코틀랜드 사투리가 너무 심했기 때문이다. 또 <스위트 식스틴>이 영국에서 정식 개봉할 때는 처음에 나오던 영어 자막이 중간부터 나오지 않았다고. ‘리암이 처한 어려운 상황을 관객 여러분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라는 자막과 함께 말이다. 직접 눈으로 확인한 것이 아니라 ‘믿거나 말거나’지만, 정말 그랬다면 켄 로치다운 멋진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이번에는 20세기 할리우드 영화가 아닌 21세기 영국 영화로 쓰게 됐다. “프리덤!”이라는 대사로 유명한, 스코틀랜드 영웅 윌리엄 월리스(William Wallace)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브레이브하트 Braveheart >(멜 깁슨, 1995)를 쓸 수도 있었지만, 이보다 훨씬 더 의미 있는 좋은 영화를 소개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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