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방문자가 바라본 조선의 풍경 2017년 한국 관련 해외 기록영화 수집 이야기

by.최영진(한국영상자료원 수집부) 2018-03-20조회 999

한국영상자료원은 그동안 해외 영상 자료를 수집하면서 한국영화 전문기관으로서 극영화를 집중적으로 발굴·조사·수집해 왔다. 하지만 오랜 기간 다양한 해외 기관의 협력 그리고 해외수집 담당자와 현지 조사원이 공동의 노력을 기울여 여러 기록영화도 수집을 진행했다. 특히 일제강점기 한국의 모습은 당시 제작된 극영화와 조선총독부가 제작한 선전영화가 아니면 대부분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이 촬영한 영상만 남아 있으므로 이러한 희귀한 영상물들은 자료원으로서 수집, 보존할 의무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글에서 소개하는 작품 두 편은 2017년 5개국 해외 기관 9개처에서 수집한 기록영화 총 41편 중 특히 흥미로운 일제강점기 영상물들이다. 이외에도 소개할 만한 영상물이 많지만 그러면 원고가 끝도 없이 이어지기 때문에 독자의 많은 양해를 바란다. 

첫 번째 작품은 <Korea>(로이 채프먼 앤드루스, 1912)이다. 1912년에 당시 미국 자연사박물관(American Museum of Natural History, AMNH) 포유동물 및 조류학 부서 보조 큐레이터였던 로이 채프먼 앤드루스(Roy Chapman Andrews)가 여러 가지 고래종을 수집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하는 도중 촬영한 영상이다. 분량이 13분 16초 정도 되는 이 35mm 네거티브 필름이 미국자연사박물관 수장고에 보관되어 있는 것을 알게된 후 박물관 측에 연락해 현지 현상소 작업을 통해 4K 디지털 스캔 결과물 및 보존용 앤서 프린트 필름으로 복사 수집을 추진하게 되었다. 

영상물은 당시 서울과 주변 풍경을 보여 주며 남대문 주변의 모습이 집중적으로 촬영되었다. 무성이지만 중간에 등장하는 인터타이틀로 해외 관람객을 위해 조선을 소개한다. 여기서 눈에 띄는 것은 조선을 ‘일본 지방’으로 소개하고 “몇 세기 전 부패적인 정부가 나무를 없앤 서울 주변 언덕들에 일본이 현재 다시 나무를 심는 좋은 일을 하고 있다”라고 언급한 것이다. 일제강점기 초기인데도 해외 방문자들은 한국이 일본 통제하에 있다는 사실을 통보받고 식민 국가라는 것에 대한 인식이 강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Korea>는 이 시기 촬영된 다른 기록영상물들에 비해 제자리에 가만히 서 있는 인물들을 집중적으로 촬영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조선인 총 14명이 단독 클로즈업으로 한 명씩 등장하는데 절대 움직이지 않고 카메라만 쳐다보라는 지시를 받은 듯 프레임 중간에 가만히 서 있다. 더불어 카메라를 쳐다보는 그룹이 등장하며 오른쪽으로 천천히 패닝하는 숏도 있는데 이것으로 파노라마를 만들 수 있을 만큼 인물들은 꼼짝 않고 서 있다(사진 참고). 이는 생물학자인 앤드루스가 조선인과 풍경을 체계적으로 기록하는 목적으로 촬영에 임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러 명의 아이가 무언가를 먹으면서 제자리에 서 있는 숏이 등장하기 바로 직전에 “사탕이란 뇌물을 받으면 우리는 가만히 서 있기 쉽다”라는 재미있는 인터타이틀이 나오는데 그럼 어른들은 도대체 어떻게 설득했는지 궁금하다. 

두 번째 작품은 <Visit to China and Korea> (토르 H. 위스트랜드, 1938)이다. 1930년대 말 스웨덴 외교관 토르 H. 위스트랜드(Tor H. Wistrand)가 중국과 한국 방문 중 촬영한 16mm 필름이다. 이 일제강 점기 영상물은 2004년 <부산일보>를 통해 국내에 소개되고 당시 한국영상자료원 원장도 참석한 전문가 시사회가 개최됐다. 결국 13년이나 지나고 나서야 필자는 원본 필름을 소장한 영국 브라이턴 대학교 스크린아카이브 사우스이스트(Screen Archive South East)에 문의해 그들의 친절한 협력으로 이 영상물의 한국 분량을 디지털 스캔해 수집을 진행할 수 있었다. 

제목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필름은 중국과 한국에서 촬영된 영상이 담겨 있는데 상영시간 총 30분 중 한국이 촬영된 분 량은 4분 정도다. 한국 분량은 “Scenes from Seoul”이라는 인터타이틀과 함께 시작된다. 바로 눈에 띄는 점은 컬러 영상이라는 사실인데 한국이 촬영된 현존 컬러 영상물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창경궁, 광화문, 경회루 등 문화재들이 등장하며 주로 청계천 주변에서 촬영된 것으로 보인다.

<Visit to China and Korea>는 이런 배경적 특징보다 등장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더 인상적이다. 영상이 컬러이므로 등장하는 인물들이 더욱 살아나는 현상 때문인지 위스트랜드 외교관이 촬영한 장면들 자체에서 인간성이 강하게 느껴진다. 건물 벽에 오줌을 누다가 들킨 노인(상단 우측 사진 참고), 카메라를 의심스럽게 쳐다보는 어른들과 달리 자기 얼굴이 꼭 찍히도록 장난스럽게 서로 미는 아이들, 지나가는 수레차를 보고 바퀴를 만지려고 달려드는 어린이들과 같이 자유로운 순간들이 기억에 남는다. 이러한 디테일을 통해 외교관의 세상 보는 눈을 짐작할 수 있다. 

당연한 것일 수 있지만 이와 같이 카메라 뒤에 있는 촬영자의 의도와 촬영 접근 방식을 고려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발굴·수집을 진행하면서 기록영화의 경우 언제 촬영되었고 어떠한 문화적 유물 또는 유 명 인사들이 등장하는지만 중요시되는 경향이 있는데 극영화와 마찬가지로 영상 자체로부터 받는 느낌도 고려해야 한다. 관심 있는 독자들은 기록영화를 색다르게 볼 수 있는 방법을 고려해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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