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간 마음의 창을 열어둔 촬영의 마스터 정일성 촬영감독

by.이정아(영화사연구소 객원연구원) 2018-03-20조회 3,403

2017년 생애사 구술을 통해 만난 정일성 촬영감독은 1957년 조긍하 감독의 <가거라 슬픔이여>로 데뷔해 2006년 임권택 감독의 <천년학>까지 50여 년 동안 영화 현장에서 활동했다. 정일성 촬영감독은 1929년 2월 29일 일본 도쿄에서 출생했다. 도쿄 시나가와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구술자는 소학교에 입학하면서 일제강점기 식민지 조선인에 대한 차별을 경험했다. 도쿄 제2공업 중학교 재학 시절 도쿄대공습을 피해 구술자의 가족은 홋카이도 인근 아오모리라는 곳으로 피난을 떠났다. 친구들과의 갑작스러운 이별, 낯선 곳에서의 생활로 내성적인 소년이 된 구술자에게 아오모리의 자연은 큰 위로로 다가왔다. 이러한 자연에 대한 경험은 후일 구술자의 촬영 미학에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 

일본 패망 후 귀국을 결심한 구술자의 가족은 시모노세키항에서 6개월을 기다린 후에야 겨우 귀국선에 오를 수 있었다. 광복 후 1 년이 지난 뒤 부산항을 통해 귀국한 구술자는 외할아버지에게 한글을 배웠다. 서울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에 진학한 구술자는 미군정기 정치적·사회적 혼란 속에서 대학 시절을 보냈다. 대학 졸업 후 친구들과 절에서 공부하던 구술자는 6· 25전쟁이 발발하자 군에 입대했다. 부상으로 제대를 하고 미공보원에 들어간 구술자는 선배 정인엽 촬영기사를 도와 공군 홍보 영화 <출격명령>(1954)에 참여하면서 영화계에 입문했다. 그리고 당대 최고의 촬영기사인 김학성 기사의 조수를 거쳐 1957년 조긍하 감독의 <가거라 슬픔이여>로 데뷔했다. 데뷔 당시 구술자의 나이 27세였다. 

5·16 이후 군사정권은 한국영화산업 육성 정책과 동시에 검열을 통한 통제도 강화했다. 그 결과 엄청난 양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국가의 통제하에서 창작의 자유는 위축되었다. 이러한 창작 환경에 환멸을 느낀 구술자는 아시아영화재단의 후원으로 일본 유학길에 올랐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연출부로 들어가 수련을 받은 구술자는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붉은 수염> (1965)의 B카메라를 담당했다. 

1970년대 들어서면서 구술자는 김기영, 유현목, 김수용 등 당대 대표적인 감독들과 작업했다. 김기영 감독의 대표작인 <화녀>(1971), <충녀>(1972)를 비롯해 <파계>(1974), <육체의 약속>(1975), <이어도>(1977), <반금련>(1981), <화녀 ’82>(1982) 등을 촬영했다. 그리고 유현목 감독의 <불꽃>(1975), <문 門>(1977), <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이>(1978), <북간도>(1979), <사람의 아들>(1980) 등을 촬영했다. 구술자는 <문>으로 아시아 영화제 촬영상을 수상했다. 김수용 감독의 <화려한 외출>(1977) 오프닝 시퀀스는 원 신 원 컷으로 촬영된 장면이다. 주인공의 시점을 따라 움직이는 카메라는 남산에서 시작해 삼일빌딩에서 촬영을 끝낸다. 정해진 필름과 시간에 맞춰 수차례 테스트를 한 뒤 단 한 번의 촬영으로 완성한 장면이다. 김수용 감독의 모던한 연출 감각과 구술자의 뛰어난 기술과 미학이 어우러져 만들어진 명장면이 아닐 수 없다.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던 구술자는 1979년 영화 촬영 중 발생한 교통사고로 큰 고초를 겪었다. 그리고 얼마 후 유현목 감독의 <사람의 아들>(1980) 촬영을 마치고 직장암 수술을 받았다. 큰 위기를 겪은 구술자는 임권택 감독의 <만다라>(1981)로 다시 현장에 돌아왔다. 김성동 원작의 <만다라>는 구술자와 임권택 감독이 만들어낸 길의 미학이 시작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두 거장의 만남으로 탄생한 길의 미학은 <서편제>(1993)에서 다시 한 번 빛을 발한다. 송화(오정해)와 유봉(김명곤) 그리고 동호(김규철)가 진도아리랑을 부르는 5분 40초의 롱테이크는 청산도에서 촬영한 장면이다. 척박한 삶의 시간이 겹겹으로 쌓여 만들어진 길과 진도아리랑 그리고 각기 다른 마음을 품고 있는 세 명의 인물이 어우러져 탄생한 명장면이다. 구불구불한 길은 한국의 험난했던 역사와 사람들의 삶을 닮아 있으며 그 길은 앞으로의 시간을 향해 있다고 구술자는 이야기한다. 

한국 전통의 판소리와 영상의 만남은 <춘향뎐>(임권택, 2000)으로 이어진다. 구술자는 <춘향뎐>을 판소리 춘향전의 리듬을 살려 끊임없이 움직이는 형식으로 촬영했다. 영화에서 카메라는 판소리의 리듬을 타고 지속적으로 움직인다. 조선시대 화가 장승업을 다룬 <취화선>(임권택, 2002)에서 한국 전통의 회화는 서구 근대문명의 산물인 카메라의 프레임과 만나 고유의 영상 미학으로 탄생했다. 이 영화로 구술자는 청룡영화상 촬영상,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촬영상을 수상했다. <천년학>(임권택, 2006)은 구술자가 국내에서 작업한 마지막 작품이다. <천년학> 이후 구술자는 중국영화계로 진출해 활동했다. 

구술자는 촬영이란 마음의 창과 같다고 이야기한다. 마음의 창을 깨워 보여주고자 하는 대상을 영상으로 구현해야 하는 것이 촬영 감독의 역할이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누구나 흉내 낼 수 있을 것 같은, 하지만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영상을 만들어낼 수 있어야만 진정한 프로라고 했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난 구술자는 격동의 한국 현대사를 경험했고 한국영화의 성장과 정체 그리고 재도약을 몸소 체험했다. 영화계에서 지속적으로 활동한 원로 영화인을 만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기존의 틀을 깨는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고 끊임없이 공부하고 노력했기에 구술자는 새로운 세대와 함께할 수 있었으며 다른 한편 오랜 세월을 함께한 이들과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책장으로 에워싸인 구술자의 서재에는 오랜 세월을 함께한 영화 서적이 가득했다. 그리고 구술자의 책상 위에는 신간 서적들이 펼쳐져 있었다. 오랜 세월의 경험과 새로운 도전이 공존하는 서재에서 구술자는 후학들에게 아낌없이 자신의 경험을 나누어주고자 했다. 인터뷰를 허락해주신 정일성 촬영감독님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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