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픽션 다이어리>(2013), <별들의 고향>(2010) 등 몇 편의 전시를 연계한 다큐멘터리를 만든 정윤석 감독은 미술관과 영화관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가를 꼽을 때 늘 언급되는 이름이다. 그가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를 들고 왔을 때, 음악을 향해 예술적인 확장을 시도하는 것은 아닐까 짐작했다. 인터뷰에서 그는 예술적인 함의보다 자신의 작품과 자신이 다룬 인물들을 통해 건드리는 사회적인 메시지를 강조했다. 어떤 작품이나 감독의 경향을 정의하는 동안 놓치거나 덜 중요한 것으로 치부한 것들은 없었을까. 그와의 만남이 남긴 질문이다.
김소희 <논픽션 다이어리>(이하 <논픽션>)가 지존파를 통해 1990년대를 들여다보는 것이 중심이었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인물에 더 초점이 맞춰진 것 같다.
정윤석 이 모양 이 꼴로 살게 된 원인을 보여준 게 <논픽션>이라면, 결과를 보여준 것이 이번 작품이다. 실은 둘 다 같은 뿌리에서 출발했다. 이번 영화는 살아 있는 동적인 인물이 주인공이기도 하고 음악영화라는 형식 안에서 인물이 돋보이는 것도 있다. <논픽션>에서는 도덕적인 믿음이 현실에선 하나도 적용되지 않는 것을 보면서, 답이 아닌 질문을 바꿔야 한다는 전제로 1990년대의 프레임을 전환하려 했다. 그런데 질문이 독해되는 과정을 보면서 선택이 더 중요하지 않은지 생각했다. 그 결과 탄생한 작품이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다.
김소희 작위적인 비교라는 걸 알지만, 지존파가 자기파괴적인 선택을 한 반면, 밤섬해적단(이하 밤섬)이 자기조롱에 그치는 건 부와 지식이라는 조건이 있어서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다.
정윤석 재미있는 분석이다. 그걸 「씨네21」 비평으로 쓰지 그랬나(웃음). 나는 서울에만 살아서 시골 청년을 본 적이 없기에 당시에는 지존파 멤버가 나이 든 사람들인 줄 알았다. 그런데 실제로는 나와 몇 살 차이 안 나는 소년범도 있었다. 트루먼 카포티를 인용해 말하면 그들과 나는 같은 시기, 같은 것을 보고 자랐는데 왜 그들은 자기파괴적인 사람이 됐고 나는 그들을 찍는 영화감독이 되었을까. 지존파는 윤리적으로는 문제적이지만, 개념적으로는 한국 사회에서 가장 급진적인 존재다. 다만 부에 대한 상상력이 그랜저밖에 안 됐다는 것이 패착이었다. 중산층 계급의 아이들인 밤섬은 조롱해도 되는 안전한 것을 조롱한다. 그 사람의 생각을 조롱한다는 것은 사실 한 번 더 꼬는 거잖나. 갑질하는 기득권처럼 보이긴 하는데, 원래 그런 걸 하는 게 엘리트다. 자기조롱에서 끝난다고 하는데, 반대로 자기조롱 이상의 무엇이 가능할까 되묻고 싶다. 중요한 건 자기조롱의 신선도를 유지하는 것이다. 2017년 자본주의 사회에서 「88만원 세대」의 우석훈이 바라는 정치적인 것은 중산층 자식들의 유희가 되었음을 인정해야 한다.
김소희 다큐와 미술의 경계를 넘는 감독을 말할 때 늘 언급된다.
정윤석 감사한 일이다. 그냥 하는 건데 멋있게 이야기해주니까. 자주 했던 비유긴 한데, 진주 목걸이를 만드는 과정이 영화고, 진주를 바닥에 던지는 것이 아트라면 내 작품은 그 가운데서 뒤뚱거리는 것 같다. 내가 사회적인 이슈나 센 소재의 영화를 만든다고 생각되는데 사실 한국 사회의 기존 프레임으로 잘 잡히지 않는 사람들, 해석이 잘 안 되는 사람들에게 관심이 있다. 어떻게 보면 범주에 관한 질문을 자주 받으면서 생긴 자기정체성에 관한 관심과 고민이 그러한 인물들을 통해 표출된 것일 수도 있겠다. 스스로 내 영화의 정체성은 장르적 컨벤션을 자유롭게 가지고 노는 콘셉트 아트에 가깝지 않나 생각한다.
김소희 최근 다큐멘터리의 경향에 관한 생각이 궁금하다.
정윤석 다큐멘터리는 감독의 해석이 가장 중요한 장르다. 다 달라야 하고 절대적 우위가 없다. 가치와 신념의 싸움인 거다. 한국 다큐멘터리의 중요한 문화적 자산은 여전히 액티비즘이라고 여긴다. 해외에서는 그런 미덕이 많이 사라진 상태다. 저널리즘 다큐멘터리의 유입으로 시장이 넓어진 것 같지만 상대적으로 공존하던 액티비즘과 미학이 분화되는 과정 같다. 액티비즘 다큐멘터리에 대한 더 큰 지지가 필요하다.
김소희 준비 중이거나 만들고 싶은 다큐멘터리는 무엇인가?
정윤석 두 편을 준비 중이다. 하나는 마네킹, 로봇, 섹스돌 등 인간의 형상을 만드는 인간에 관한 콘셉슈얼한 아트영화다. 이전 작업 방식과는 달리 일단 쭉 찍고 어떻게 붙일지는 나중에 고민하려 한다. 다른 한 편은 베트남전에 관한 것인데, 앞선 두 작품의 원인에 해당한다고 하겠다. 두 편의 작품을 개봉하면서 자본주의 시스템 안으로 들어가 우연히 자본주의 시스템에 균열과 생채기를 내는 순간을 경험했다. 그래서 돈에 상관없이 할 수 있었던 건데, 앞으로의 작업은 그런 마인드로는 한계가 있어 다른 방식을 고민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