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미] 4인의 영화인이 말하는 내가 본 김지미 ① 영리하고 노련한 배우

by.김수용(영화감독) 2017-07-17조회 1,916

Q <사격장의 아이들> <토지> 등 13편이란 적지 않은 수의 영화를 김지미 씨와 함께 하셨다. 촬영 현장에서 바라본 김지미 씨는 어떤 분인지 궁금하다.

A 아주 영리한 배우다. 연기 주문을 했을 때 원하는 수위 이상의 과도한 감정을 펼치는 배우들이 있는데, 그는 항상 딱 알맞은 정도로 자연스러운 연기를 보여주었다. 길거리 캐스팅을 통해 데뷔한 케이스라 정식으로 연기를 배운 것이 아니었음에도 그토록 자연스러운 연기를 했던 걸 보면 연기는 그의 큰 특기였던 듯하다. 특히 기억나는 것은 <사격장의 아이들>(김수용, 1967)에서 보여준 연기다. 이 작품에서 그는 6·25 직후 삭막하고 피폐해진 마을의 한 학교에 부임한 여교사 역을 맡았는데, 탄피를 주우러 간 아이들이 불발탄 폭발 사고를 당한 이후 그가 아이들을 바라보며 눈물 흘리는 장면이 나온다. 당시에는 눈물 연기를 위해 안약을 사용하는 연기자도 많았는데, 그는 한껏 감정을 실어 섬세하게 연기를 잘 해주었다. ‘진짜 배우다’라는 말이 자연스레 나올 정도였다. <사격장의 아이들> 이야기가 나왔으니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다. 주연을 맡은 김지미, 허장강 모두 당시에는 너무나 바쁜 배우들이었다. 겹치기 촬영이 상당해 각자의 스케줄을 맞추기 힘든 상황이었던지라 두 배우가 함께 나오는 장면도 따로 촬영해 이어 붙여야 했다. 그 때문에 두 배우가 서로 얼굴을 맞대고 연기할 기회가 없었는데, 최종본을 검토하는 시사회 자리에서 그가 ‘이 영화에 허장강 씨도 출연해요?’라고 하더라(웃음). 정말 바쁘기로는 누구 하나 따라올 사람이 없는 배우였다.

Q 당시에는 ‘여배우 트로이카(문희, 윤정희, 남정임)’의 인기 또한 상당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김지미 씨가 여배우 트로이카라는 카테고리와 별개의 지점을 이루게 된 이유가 있다면 무엇일까?

A 여배우 트로이카의 세 배우에게서 젊음 특유의 매력을 찾을 수 있다면, 그에게는 노련한 여성미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세련미를 갖춘 사람이 어떤 역할을 맡든 노련하게 임했으니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성적인 매력은 말할 것도 없고. 이 매력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알아주는 것이었는데, 어느 수준인가 하면 홍콩 쇼브라더스의 란란쇼 사장이 그에게 전속 배우 러브콜을 보낼 정도였다. 그가 신인 배우이던 1960년대 초반, 홍콩에서 함께 <손오공>(김수용, 1962)을 작업할 당시 관상가이기도 했던 단골 음식점 사장이 김지미 씨를 보며 ‘황후가 될 상’이라 말하곤 했다. 그때만 해도 그 말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는데, 이후 배우로서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보며 그때 그 말이 맞았구나 싶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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