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용 감독이 연출한 <
토지>(1974)는 박경리의 소설을 각색한 작품이다. 원작 「토지」는 1969년에 집필에 들어가 1994년에 5부 16권으로 완간된 대하소설로, 영화는 1부를 다루고 있다. 대종상에서 작품·감독상 등을 받은 이 영화에서 배우
김지미는 최 참판가의 안주인 윤 씨 역할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윤 씨는 평사리의 대지주 가문을 잘 이끌어가는 능력자이지만, 겁탈을 당해 낳은 아들을 버린 비밀을 안고 살아간다. 영화의 도입부에서 김지미는 범접할 수 없는 권위와 기품을 가진 윤 씨의 모습으로 스크린을 장악한다. 그러나 결혼해 낳은 아들과 혼외 자식이 한 여자를 두고 삼각관계에 빠지면서, 윤 씨의 고뇌와 죄책감은 점점 커져간다. 김지미는 결코 드러낼 수는 없는 윤 씨의 고통을 미묘하게 흔들리는 눈빛을 통해 관객에게 전달한다. 그런 다음, 장차 집안을 이끌어가게 될 손녀를 엄하게 다루거나 아들을 살해한 자들을 냉혹하게 처벌하는 또 다른 윤 씨의 모습을 생생하게 연기한다. 한 편의 영화에 방대한 내용을 다루다 보니 무리수가 엿보이기도 하는데, 김지미의 연기만큼은 너무나 훌륭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