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은평구 녹번동에 ‘도원극장’이 있었다. 서울 북서쪽에서 자란 지금의 40·50대라면 모를 수 없다. 모르기는커녕 십중팔구 저마다 성장기의 여드름 자국이 박힌 사연 하나씩은 가지고 있을 곳이다. 도원극장이 문 닫은 건 10여 년 전인데, 문 연 게 언제인지는 모르겠다. 찾아보니 1972년 2월 9일자 신문에 이 극장이 ‘연소자 입장, 시설미비, 운영불실’ 등을 이유로 이틀간 영업정지 처분을 받았다는 기사가 나와 있다.
1970년대 중반에 이 극장은 개봉관, 재개봉관을 거친 영화를 트는 재재개봉관이었다. 이런 극장에 얽힌 청소년기의 사연은 십중팔구 거기서 미성년자 입장불가 영화를 본 일일 거다. 내 10년 위아래 또래들과 극장 경험을 말하면 다 그 얘기다. 모두 저마다 짜릿하고 절실한 기억이겠지만, 모두 또 판박이처럼 닮아 있는 이 찌질한 동시대성이란….
나라고 예외일 리 없다. 중학교 2학년 때로 기억하니까 1976년일 거다.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유명한 <대부 The Godfather>(1972)였다. 같은 반 친구와 사복 입고 도원극장에 갔다. ‘연소자 관람불가’라는 팻말이 매표소 입구에 떡하니 붙어 있음에도, 극장 직원은 예사롭게 입장시켜줬다. 영화가 워낙 명작으로 소문나서인지 “애들이 기특하게 이런 영화를 다 보러 오네” 하는 표정을 짓는 것 같기도 했다.
그렇게 압도되면서 본 영화는 처음이었다. ‘범생이’ 알 파치노가 아버지의 원수를 죽이기 위해 화장실 변기 물통에서 총을 꺼낼 때 그의 심장박동 소리가 들렸다. 말런 브랜도가 시장 골목에서 총 맞고 쓰러질 때, 그의 등에서 우리 아버지의 체취가 맡아졌다. 내가 어른들의 세계와 이렇게 온전히 소통에 성공하다니. 스스로 대견해하는 마음까지 겹쳐져 미지의 세계를 새로 발견한 것처럼 뿌듯했고 그 경험을 주변에 떠들고 다녔다.
나이 들수록 궁금했다. 이 영화가 왜 그렇게 좋았지? 이 영화가 묘사한 세상사의 비정함은 다분히 과장된 일종의 수사법인데, 잘 만들어졌고 매력적이지만 인생의 대단한 진리나 철학 같은 걸 담은 건 아닌데, 이것저것 보아온 어른의 상대적 미감으로 좋은 것과 달리, 순수한 사춘기 소년에게 인생의 중요한 답 하나를 간직한 것처럼 다가온 이유가 도대체 뭐였을까.
아마 그때도 그 수사법이 과장된 것임을 어렴풋이나마 알았을 거다. 하지만 세상사의 비열함, 비정함을 과장해 농축한 그 수사들을 포식하고 나서, 세상이 이 모양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던 모양이다. 비겁하고 이기적인 어른들과 그들이 득시글거리던 사회를. 머릿속은 세상을 긍정하고, 어른을 존경하고, 열심히 노력하고, 그렇게 착한 언어들이 지배하고 있었겠지만, 이면에선 부조리함과 모순에 대한 본능적 의구심이 들끓고 있었을 거다. 이 ‘미성년자 관람불가’ 영화의 과장된 수사법을 통해 비로소, 막혀 있던 그 이면과의 조우가 가능했던 거다. 그 당시 청소년들에게 변두리 극장 말고는 다른 어느 누구도 해주지 않은, 은혜로운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