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파]사회적 이슈, 대중문화를 흔들다 영화 밖 현상 읽기

by.전종혁(영화 칼럼니스트) 2017-05-10조회 4,576
영화계에서만 사회파 작품이 유행하는 것은 아니다. 최근 대중문화를 자세히 살펴보면 사회적 이슈를 다룬 작품이 전에 없이 많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드라마와 웹툰 등 사회적 이슈를 다룬 작품들을 살펴본다.

불안 사회, 정의에 대한 갈망
최근 영화뿐 아니라 TV 드라마와 웹툰에서 각양각색의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콘텐츠가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어쩌면 이것은 고백하기 불편한 진실일 수 있다. 아이러니하지만, 국가가 촉발한 ‘불안 사회’가 관객을 향해 정치적 메시지를 보내는 콘텐츠를 생산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 정의와 진실을 요구하는 공동체(대중)의 욕망, 그리고 비판과 각성을 촉구하는 창작자의 욕망이 콘텐츠의 황금기를 이끌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양한 엔터테인먼트 콘텐츠에서 반영되는 각종 사회적 이슈 및 현상은, 우리 사회가 겪은 커다란 상실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밖에 없다. 누구나 예상 가능하듯, 2014년에 일어난 4·16 세월호 참사가 직·간접적으로 대중문화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방송으로 실시간 중계되는 상황에서 무사히 구출될 것으로 믿었던 사람들이 세월호와 함께 죽음에 이르자 이를 지켜본 국민들은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다. 이는 한국 사회의 트라우마로 자리를 잡았다(우리는 4·16 이후 예전과 동일한 삶을 살 수 없다). 그리고 1년이 지난 2015년 5월, 국가적 재난이라 할 수 있는 메르스 사태까지 발생했다. 이 지난하고 참혹한 3년의 시간은 우리 사회를 송두리째 흔들어놓았다.
돌이켜 보면, 세월호 사건 이전에 개봉된 1천만 관객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추창민, 2012), <변호인>(양우석, 2013)이나 세월호 참사 이후 그해 여름에 개봉한 <명량>(김한민, 2014) 등이 보여준 것은, 한마디로 진정한 리더에 대한 갈망이었다. 이 영화들은 단순히 장르를 초월해 국민의 마음을 따뜻하게 안아줄 사회적 멘토를 그리워하는 영화였다. 관객들의 마음을 품은 영화였다. 하지만 좋은 지도자가 없다는 대중의 근심은 기우로 끝나지 않고 바로 현실의 상처로 이어졌다. 안타깝게도 그간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사태로 제기된 우리 사회의 문제에 대한 반성이나 성찰을 담은 콘텐츠가 전면적으로 제작되기 어려웠다(앞으로 남은 우리의 과제다). 우리는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도 진실을 밝히지 못했고, 제대로 된 애도의 기회마저 놓치고 말았다. 백상현은 저서 「속지 않는 자들이 방황한다」(라캉의 명제로부터 제목을 빌려온 ‘세월호에 대한 철학의 헌정’)에서 이런 과정을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다. 세월호 다큐멘터리 <다이빙벨>(2014) 사건에서 알 수 있듯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담론의 대중화)이 어려운 시기였지만, 사회적인 아픔과 권력에 대한 불만은 각종 드라마와 웹툰에 자연스럽게 투영되었다.

응답하라, 정의 실현 사회
2015년 11월에 방영된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은 <응답하라 1994>와 마찬가지로, 과거의 향수(레트로 트렌드)를 자극하는 ‘추억’의 드라마로 인기를 모았다. ‘응답하라’라는 문장은 화두처럼 유행했지만, 우리는 정작 ‘아무런 응답도 하지 않는’ 국가로부터 실망하고(혹은 굴복하고) 패배주의에 사로잡혀야 했다. 이런 한국 사회의 부조리함은 상징적으로 ‘헬 조선’(지옥 같은 한국 사회)이라는 단어로 압축될 수 있다. 이미 ‘멘붕’(멘탈 붕괴)이라는 단어가 2010년대 초에 유행했고, 그보다 더한 절망감이 ‘헬 조선’으로 압축되었다. 이런 유행어와 함께 다양한 장르의 드라마에서 우리 사회의 분위기를 포착할 수 있게 되었다.
비뚤어진 권력의 횡포에 대한 비판은 으레 사극의 몫이었다. 영화나 TV 드라마 영역에서 사극은 불패의 히트 상품으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MBC 드라마 <역적: 백성을 훔친 도적>(2017년 1월 방영)은 연산군(김지석)과 홍길동(윤균상)의 대결을 통해 폭력을 앞세운 군주를 비판해 주목을 받았다. 권력과 정치에 대한 민심을 담아내는 ‘리트머스 용지’ 사극처럼 오피스 드라마도 점점 공감대를 확대하고 있다. 사회적으로 구성원들의 생존이나 성과를 향한 압박(소진증후군)은 더욱 거세지고, 자존감과 면역력이 붕괴되는 사회에서 오피스 드라마는 현대인의 소외감을 잘 반영하는 장르로 늘 관심의 대상이다.
KBS 드라마 <직장의 신>(2013년 4월 방영)은 ‘슈퍼 갑 계약직’ 미스 김(김혜수)을 통해 회사의 다양한 문제점을 파고들었다. 2014년 10월에 방영된 tvN 드라마 <미생>은 ‘완생’을 꿈꾸는 인턴 사원의 생존기로 원작 웹툰만큼이나 큰 인기를 누렸다. “우린 아직 미생이야”라고 말하는 인턴의 치열한 고군분투나 오 과장(이성민)처럼 소신을 지닌 정직하고 따뜻한 직장 상사가 시청자의 마음을 훔쳤다. 이런 오피스 드라마는 현재 MBC에서 방영 중인 <자체발광 오피스>처럼 꾸준히 제작되고 있다. 대휴를 쓰면서도 눈치를 보거나 매일 사표를 던지고 싶다고 생각하는 대한민국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직딩(직장인)잔혹사’에 쉽게 몰입된다. 자신의 모습이 그대로 투영된 직장인의 삶에서 위로를 받고 있는 셈이다.
무엇보다 약자에 대한 보호, 정의 실현에 관한 드라마가 쏟아진 것이 인상적이다. 대중이 갈망하는 세상, 현실의 변화에 대한 욕망이 영화 <베테랑>(류승완, 2014)만큼 드라마 속에서 잘 반영되고 있다. 이 드라마들이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될 순 없다 해도, 잠들어 있는 사회를 향한 작은 균열이 될 순 있다. 해츨링 작가의 웹툰을 드라마화한 KBS의 <동네변호사 조들호>(2016년 3월 방영)나 SBS의 <낭만닥터 김사부>(2016년 11월 방영), 최근 큰 인기를 끈 <김과장>(2017년 1월 방영)까지 그런 면모를 엿볼 수 있다. 법의 보호가 필요한 약자의 편에 서는 <동네변호사 조들호>의 조들호(박신양)나 의사로서의 신념과 양심을 지키는 <낭만닥터 김사부>의 ‘김사부’ 부용주(한석규)가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보여줬다면 <김과장>의 김성룡(남궁민)은 자기 잇속에 맞게 약삭빠르지만 좀처럼 밉지 않은 캐릭터로 대중의 품에 다가섰다. 정의로운 조들호와 김사부가 사회와 조직의 불합리한 규율, 부당한 권력과 맞서 싸우는 즐거움을 주었다면 김성룡은 이런 룰과 고정관념을 슬쩍 코믹하게 위반하면서 불온하게 깨뜨리는 쾌감을 주었다. ‘뒤탈 없이 잘 해먹는 것’을 강조하는 김 과장은 부정부패로 가득한 사회를 풍자하고 비웃는 희화화된 캐릭터였다.
또 국회의원을 드라마 소재로 삼은 야심 찬 드라마 <어셈블리>(2015년 7월 방영)에서 진상필(정재영)도 빼놓을 수 없다. 이 드라마는 부당하게 정리해고를 당한 노동자 상필이 여당의 전략 공천에 힘입어 국회의원이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상필은 “왜 우리한테 미안하다고 하지 않습니까? 대한민국 법이 호떡만도 못합니까”라고 억울함을 주장한다. 의도하지 않았으나 우연히 의인이 되는 김성룡처럼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국민의 대표가 되지만, 정치의 필요성을 깨닫고 급기야 권력층과 싸우는 진상필은 현실에서 존재하기 힘든 판타지 같은 인물이다. 하지만 평범한 상필이라는 캐릭터는 자신의 꿈(국회의원이 된 이유)을 이루면서 진짜 정치가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다시 상기시켰다. 조들호, 김사부, 진상필 등이 드라마에서 남긴 명대사들은 부조리한 사회와 권력의 강요를 너무 쉽게 수용하고 합리화했던 우리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그들은 자신만의 개성과 신념으로 시청자의 인식을 흔들었다.

사회의 주체가 되길 권하는 웹툰의 시대
대중문화에서 핵심 키워드로 자리 잡은 ‘정의’와 ‘진실’은 앞에서 예로 든 드라마나 영화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강풀의 웹툰이 영화 <26년>(조근현, 2012)으로 이어지면서 5·18 민주화운동과 군부독재 정권에 대한 이슈를 다시 도마 위에 올려놓았다. 이렇듯 웹툰은 정치나 역사적인 문제는 물론이고 소재나 장르 면에서 영화나 드라마가 감히 접근할 수 없는 영역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쏟아내고 있다. 주목받지 못하는 힘없는 약자들, 예를 들면 이방인이나 타자라고 불리는 대상, 우리 사회의 주변인들에게 시선을 돌린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노동문제(비정규직 인권 문제)를 다룬 최규석 작가의 <송곳>이나 옥시 사태(가습기 살균제 사태)까지 소재로 끄집어낸 <동네 변호사 조들호> 등의 문제 제기가 돋보였다. 또 김보통 작가의 <D.P 개의 날>이나 강태진 작가의 <조국과 민족>은 부조리한 ‘훈육 사회(감시 사회)’를 고발하고 있다. 전자는 군대의 탈영병들을 잡는 헌병 군탈체포조, 후자는 1980년대 안기부 직원의 폭력을 다루고 있다.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 입장에서 바라보는 세계는 감정적인 슬픔을 넘어 이성적인 성찰에 이르게 한다. 부조리한 군과 안기부의 문제, 시스템적인 폭력(혹은 시스템에 내재하는 폭력)을 증언하고 있다. 사회적 문제를 직접적으로 건드리는 웹툰은 오랫동안 우리 사회가 금기시했던 것을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도록 해준다. 즉 개개인이 자기 검열을 해체하는 순기능을 하고 있다. 사회문제를 다루는 웹툰의 열풍은 단순히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에 멈추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구경꾼으로 한발 물러나 있던 우리에게 적극적으로 사회의 주체가 될 것을 다시 요청하는지도 모른다. 적어도 우리는 한계가 없는 웹툰의 시대를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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