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올림픽, 그리고 영화
박광수의 <칠수와 만수>, 장선우의 <성공시대>가 개봉된 1988년은 서울올림픽이 열리던 해였다. 때는 정국이 유화적으로 흐르던 제6공화국 초기. 장기수 문제를 간접적으로 건드린 박광수 감독의 영화는 영화인들에게 자그마한 흥분을 불러일으켰다. 정치 사회적 소재를 엄격히 검열했던 5공화국 시대의 종식이 다가오고 있다는 징조였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 칠수와 만수는 페인트공이다. 만수는 중동에 나가 돈을 벌고 싶어 하나 비전향 장기수 아버지 때문에 연좌제에 묶여 출국을 못하고 있고, 동두천에서 태어난 칠수는 미국으로 건너갈 허황된 꿈을 꾸고 있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고층 건물에서 광고판을 그리던 두 사람은 서로 신세 한탄을 하다가 데모하는 것으로 그들을 오해한 경찰로부터 포위당하는 기막힌 상황에 처한다. 칠수와 만수가 갇힌 고층 건물 옥상은 자유가 억압된 한국 사회의 상징적 축도였다.
저항 정신을 내포한 영화들의 등장
1986년에 선우완과 함께 <서울예수>를 만들었으나 검열로 인해 <서울황제>로 제목을 수정하고 개봉했던 곡절을 겪은 장선우는 데뷔작의 실패를 거울삼아 우회적인 자본주의 풍자극 <성공시대>를 두 번째 영화로 연출했다. 이 영화의 외형은 경쾌한 코미디였으며 장선우의 역량을 증명하는 수준은 아니었으나 사람들은 장선우의 가능성에 주목했다. 박광수와 장선우의 영화 모두 그때까지의 한국영화에서 기대하지 못한 저항 정신을 내포한 영화들이었다.
한국 사회는 오랫동안 겨울공화국의 그림자에 갇혀 있었으나 조금씩 기지개를 켜고 어떤 가능성의 확장을 도모하고 있었다. 주제의 확장, 형식의 확장, 영화라는 매체가 지닌 가능성의 확장을 꾀하는 것이었다. 이 확장 가능성은 나중에 ‘코리안 뉴웨이브’라고 다소 조급하게 서구 저널리즘에서 명명된 특정 영화 사조로 정착하는 데 이르진 못했으나 1990년대까지 늘 어떤 기대를 품게 하는 흐름으로 이어졌다.
박광수, 대중영화의 규범에 어긋난 미학적 제스처
1990년에 나온 박광수의 두 번째 영화 <그들도 우리처럼>은 데뷔작에 비해 더 큰 논란을 일으켰다. 지식인 운동가 기영이 수배를 피해 폐업 직전의 탄광촌에 와서 자신의 정체성을 재탐색하는 내용의 이 영화는 기영과 그를 사모하는 다방 레지 영숙, 영숙을 성적으로 착취하는 연탄공장 부사장 성철 사이의 멜로드라마적 삼각관계를 플로팅하며 노동 현실을 보여주는 곳으로서 낙후된 탄광촌을 재현한다. 민중을 위해 자기 삶을 바친다는 관념적 이상주의자 기영은 정작 자신의 사랑을 필요로 하는 영숙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데, 그런 마당에 탄광촌을 떠나면서 지식인의 바람직한 역할에 관한 자의식 가득 찬 독백을 던진다. 당시로선 저항적인 지식인 운동가의 모습을 이만큼 묘사한 것만으로도 설왕설래가 일 정도였지만 영화는 인상적인 몇 장면, 이를테면 도입부에 기영이 마주한 탄광촌의 원경을 길게 보여주는 뛰어난 영상미가 남기는 잔상 이상의 것을 기대하기는 힘들었다.
박광수는 이후로도 형식에 대한 현대적인 접근과 금기시된 정치 사회적 소재를 결합하는 야심 찬 행보를 보였는데, <베를린 리포트>(1991)는 파리와 베를린을 배경으로 문화와 양식의 도시 파리의 퇴폐적인 이미지와 통일 독일의 상징 베를린의 쇠락한 이미지를 화려한 스테디캠 촬영으로 채집하면서 유럽의 도시에서 유랑하는 한국인 입양아 출신 남매의 삶을 통해 서구 제국주의의 본질과 한국의 분단 현실 사이의 상관성을 묻는다. 주인공인 기자 박상민의 시점을 축으로 전개되는 탐정영화 플롯과 로드 무비 구성을 절충한 형식적 야심은 명확한 결말을 원하는 대중영화의 규범과 어긋나는 모호한 결론으로 끝나는데 이런 망설임, 상징적 물음을 던진 채 종결되는 일종의 미학적 제스처는 박광수의 영화가 피해갈 수 없었던 함정이다.
<그 섬에 가고 싶다>(1993)에 이르러 박광수는 보다 명확하게 분단 이데올로기를 직시하는 방향을 취하는데 평화롭던 한 섬이 6·5 전쟁의 와중에 증오로 뒤덮이고 국군에 의한 양민 학살의 비극이 섬사람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는 광경을 허구로 재현하면서 주인공인 시인 김철이 바라보는 현재의 삶과 과거를 오가는 가운데 대립과 반목이 지속되는 한국 사회 현재형의 비극을 냉정하게 응시한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1995) 역시 현재와 과거를 오가면서 한국 노동운동의 기원적 인물인 전태일의 삶에 존경을 바치는 한편 이상화된 지식인의 역할을 계몽적으로 강조한다. 놀랍게도 이 계몽적 시도는 대중의 큰 호응을 얻었으며 일반 모금 형식으로 제작된 이 영화의 제작 과정과 개봉 당시의 흥행은 박광수 영화의 대중적 저변을 확인해주었다.
그러나 박광수의 영화 경력에 예기치 않은 단절을 가져온 대작 <이재수의 난>(1998)의 흥행 실패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한국 사회의 개혁 가능성을 고민하고 회의하는 박광수의 정직성을 증거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의 영화에서 늘 관념적 허구로 제시되는 이상적 지식인상의 현실 접목이 어려운 현실에서 박광수는 실패한 혁명의 서사를 <이재수의 난>을 통해 재현할 수밖에 없었고 이는 유려한 영상미에도 불구하고 대중의 외면을 받는 결과를 낳았다.
장선우, 급진적 해체 노선으로 일관하다
박광수에 비하면 장선우의 영화는 형식적으로는 훨씬 급진적 해체의 노선을 걸었으며 사회비판적 시선에도 불구하고 그의 화면에는 늘 염세적 기운이 넘쳐났다. 1990년대의 장선우는 매번 주제, 소재, 스타일, 구성을 달리하는 놀라운 다양성을 보여줬으며 정치적으로 도발적인 사회적 의제를 선점했다. 이런 스타일의 변화는 내용의 변화를 껴안는다기보다 내용의 성격에 따라붙는 것이기도 한데, 여기서 장선우는 1990년대의 해체적 전망을 껴안는다. 초기 영화인, 한국 자본주의의 천민적 속성을 풍자극의 형태로 도식화한 <성공시대>나 도시 근교 민중의 일상적 삶을 해학적인 틀로, 그러나 전통적인 드라마 형식으로 담아낸 <우묵배미의 사랑>(1990)이 검열의 구속에서 자유롭지 않은 형태로나마 1980년대적인 정치적 효과를 겨냥하고 있었다면, <경마장 가는 길>(1991)은 1980년대 이데올로그를 자임하던 지식인의 속물적 속성을 냉소에 차서 바라본 작품이고 <화엄경>(1993)은 변증법의 테제를 부정하는 쪽으로 나아갔으며 <너에게 나를 보낸다>(1994)는 소설가가 배우의 ‘가방모찌’가 되고 은행원이 소설가가 되고 여공이 배우가 되는 현실을 통해, 기존 사회의 틀과 가치의 잣대가 무정부주의적인 상황에 빠진 우화를 포르노의 문법에 녹여 제시했다. 심지어 <나쁜 영화>(1997)는 기존 사회의 윤리를 거부하는 10대들과 기성 사회의 틀에서 벗어난 행려들을 옹호하면서 옳고 그름의 윤리적 기준을 내팽개치는 방임적 태도를 찬미했다.
현대사의 화두인 광주 문제에 도전한 <꽃잎>(1996)도 ‘투명한’ 리얼리즘보다는 조각난 거울과 같은 개인의 심리를 통해 역사를 보는 장선우식 스타일의 본질을 드러낸다. <꽃잎>의 줄거리는 단순하지만 구성은 복잡하다. <꽃잎>은 5월 광주에 대한 소녀의 조각난 기억을 비추고 있다. 흑백과 거친 화면의 입자, 정상 속도와 느린 속도, 실제 음향과 소녀의 무의식에서 걸러내지 못한 웅웅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들판에서 김추자의 노래를 부르던 소녀의 평화로운 영혼은 문득 미친 여자의 영혼으로 바뀌어 있다. 애니메이션까지 동원된 회상 장면은 소녀의 감정을 여러 결로 나누어 현실감을 높이는 충격을 준다. 현재 시점과 5월 광주를 연결하는 화면과 소리의 편집은 이를테면, 칼을 가는 소리나 거리에서 인부들이 연장을 끌며 지나가는 소리 등을 곧바로 과거로 되돌아가는 모티프로 삼아 매 분 매 초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불행한 기억의 매개를 배치하고 있다. 그러고는 그사이에 여러 사람의 시점이 얹힌다. 막노동꾼 장 씨와 소녀를 찾아다니는 소녀 오빠의 친구들과 소녀를 봤다는 사람들의 시점이 고루 나뉘어 있다. 심지어 장 씨가 인부들 틈에 끼어 금남로 학살에 관한 소문을 듣는 장면은 전체 상황을 보여주는 화면과 나중에 장 씨의 주관적인 시점에서 잡은 화면으로 두 차례 나뉘어 반복된다.
1980~90년대를 관통하는 미결정형의 문제 제기
박광수와 장선우가 1980년대와 1990년대를 관통하면서 만든 영화들은 분단체제의 냉전 이데올로기에 가려 억압됐던 한국 사회의 첨예한 의제들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보여줬다. 박광수가 계몽적 이상주의로 현대영화의 화법을 탐구했다면 장선우는 현대영화의 틀 자체를 부숴버리면서 현실의 어떤 단면을 포착하려 했다. 그들의 영화가 완성형으로 남은 것은 아니지만 한국 사회 자체가 요구한 것도 어쩌면 그 미결정형의 문제 제기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