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무슨 냄새죠?” 작업실에 들어서자마자 코를 찌르는 듯한 식초 냄새가 느껴졌다. 당황한 나는 다급히 동료 직원에게 물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필름 작업대에는 해외 아카이브에서 수집된 1970년대 영화 여러 편이 캔 뚜껑이 열린 채 놓여 있었다. 육안으로는 필름이 살짝 수축한 듯하다는 것 외에 특별한 점이 없었지만, 엄청난 냄새를 통해 나는 이미 그 필름들이 병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영상자료원에 입사한 지 얼마 안됐을 무렵, 글에서만 보던 초산화 증후군(Vinegar Syndrome)은 내가 상상한 것보다 강렬한 경험이었다.
아세테이트 필름의 적, 초산화 증후군
모든 필름은 재질별로 고유의 손상 위험을 안고 있다. 그중 초산화 증후군은 아세테이트 재질의 필름에서만 관찰되는 현상이다. 다시 말해 1950~90년대 필름과 2000년대 이후 네거 필름의 주종을 이룬 아세테이트 필름은 모두 잠재적인 초산화 증후군 대상이라고 할 수 있다.
습기와 열이 아세테이트 필름의 플라스틱 베이스와 화학적으로 반응해 열화 현상을 일으키면서 초산이 방출된다. 이 초산가스는 화학적으로 식초와 성분이 동일하다. 내가 그처럼 엄청난 냄새를 맡은 것도 그 때문이다. 전형적인 초산화 증후군은 다음과 같은 순서로 진행된다
① 필름에서 식초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 ② 필름 베이스 층이 수축한다. / ③ 필름이 바삭바삭해지면서 유연성을 잃는다. / ④ 화면이 자리 잡은 에멀션 층이 갈라지면서 결국 떨어져 나간다. / ⑤ 필름의 가장자리와 표면에 하얀 분말이 나타난다(백화현상).
하지만 초산화 증후군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다. 오래전부터 필름보존 연구를 진행해온 선구자들은 초산화 증후군 대비책을 마련해왔다. 물론 제일 확실한 방법은 초산화 증후군이 진행된 필름을 새 필름으로 복사하는 것이다.
하지만 초산화 증후군이 진행됐다고 해서 해당 필름의 원본적 가치를 포기하고 복사본으로서의 기능적 가치만 추구하기엔 아쉬움이 뒤따른다. 그래서 마련된 방안이 몰레큘러시브(Molecular Sieves)를 투입하는 것이다. 코닥이 개발한 이 약품은 필름의 초산화 증후군을 지연시켜 필름 수명을 연장한다. 몰레큘러시브는 필름의 아세테이트 분자가 습기와 반응하는 것을 방해하고, 필름 캔 내부의 습기와 산화물 등을 흡수해 필름의 물리적 노화를 막아준다.
이렇게 몰레큘러시브가 투입된 초산화 증후군 관리 대상 필름은 저온 저습한 장소에 보관해야 한다. 온도 60℃, 상대습도 80%의 환경에서는 새 아세테이트 필름이 초산화하기까지 1년밖에 걸리지 않지만, 온도 5℃ 이하, 상대습도 30% 이하 공간에서는 1,000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James M. Reilly 「IPI Storage Guide of Acetate Film」, Image Permanence institue, 1993, p7). 즉, 보관 온도와 습도가 낮을수록 초산화 진행 속도를 늦출 수 있다. 아직 초산화 증후군이 시작되지 않은 필름이든 이미 반응이 시작된 필름이든, 최대한 빨리 저온보존고로 옮기는 작업이 중요한 이유다.
잘 싸우기 위해 잘 파악하기
장기적이고 능동적인 관점에서 초산화 증후군과 싸우기 위해, 영상자료원은 올해부터 초산화등급확인용지(AD-Strips)를 이용해 아세테이트 재질 필름 중 네거티브 필름 위주로 초산화 등급 확인 작업을 시작했다. 확인용지를 일정 기간 필름 캔 안에 비치한 후 꺼냈을 때 변색 결과에 따라 초산화 진행 정도를 알 수 있는 원리다. 앞으로 아세테이트 필름의 초산화 정도는 시각과 후각을 통해 판별되는 것이 아니라 과학적인 방법을 통해 0부터 3까지의 세부 등급으로 분류된다. 이후 분류된 등급 결과를 바탕으로 몰레큘러시브를 우선적으로 투여해야 하는 필름군을 재선정한다. 초산화 정도가 심한 필름들은 초산 가스 전이를 방지하기 위해 격실 조치를 검토 중이다.
쉽지 않은 싸움이지만 그나마 힘을 낼 수 있는 이유는, 2016년 초 파주보존센터가 완공된 덕분에 기존 1개 실이던 저온 보존고를 10개 실로 확대 운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자료원의 저온 보존고는 온도 5℃(+/-2℃), 상대습도 30%(+/-5%)로 운영되고 있기에 초산화 증후군을 억제하기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겉보기엔 매우 추운 공간이지만 사실은 초산화를 이겨내고자 하는 열기로 뜨거운 곳. 지금 이 순간에도 초산화 증후군과 소리 없는 싸움을 계속 중인 아세테이트 필름에 아낌없는 응원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