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서 가장 영화적인 화면 사이즈는 클로즈업이다, 라는 데 거의 모든 영화미학에 관한 책들은 동의한다. 이 화면 사이즈에 대한 예찬은 벨라 발라즈에 의해서 처음 정식화되었다. 그가 쓴 「영화의 이론」의 2부 24장으로 나누어진 내용 중에 7장을 모두 클로즈업에 할애했다. 그리고 그 장은 그 책에서 가장 유명한 대목이 되었다.
거기에 발라즈는 “우리가 삶을 바라보는 것도 마찬가지다. 주된 멜로디만 우리 눈에 들어오는 것이다. 그러나 클로즈업이 있는 훌륭한 영화는 우리의 다성적인 삶에서 가장 은밀한 부분을 보여주고 우리가 관현악 악보를 읽듯이 삶의 섬세한 시각적 세부를 보도록 한다.”(이형식 번역, 동문선)라고 아름답게 썼다. 하지만 이 책에는 클로즈업이 영화사에서 언제 발명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없다.
첫 번째 클로즈업 영화에 대해서 영화사 책들은 서로 의견을 달리한다. 하지만 한 가지 신기한 것은 첫 번째 클로즈업 영화가 1900년에 몇 편의 서로 다른 영화에서 동시에 갑자기 나타났다는 사실이다. 세실 헵워스의 <(자동차에) 치일 뻔한 걸 어떻게 느껴보지 How It Feels to Be Run Over>와 조지 앨버트 스미스의 <할머니의 돋보기 Grandma’s Reading Glass>, 그리고 제임스 윌리엄슨의 <꿀꺽 삼키기 The Big Swallow>, 이 세 편이 그중에서 자주 이야기되는 영화들이다.
그중에서 <할머니의 돋보기>는 클로즈업 영화라기보다는 아이리스를 활용한 영화라는 편이 정확할 것이다. <치일 뻔한 걸 어떻게 느껴보지>는 먼저 마차가 한 대 지나가는 것을 바라본 다음 (카메라가 서 있는 길 오른쪽 옆으로 멀찌감치 떨어져서 빠져나간다) 뒤이어 자동차가 나타나더니 휘청거리다가 카메라를 정면으로 들이받을 듯이 다가온 다음 화면이 캄캄해지고(black out) 끝난다.
세 편 중에 가장 인상적인 <꿀꺽 삼키기>는 상영 시간이 1분 8초인데, 마치 단 하나의 쇼트처럼 이루어진 3쇼트의 트릭 영화다. 멀찌감치 서 있는 한 사내가(knee shot) 분주하게 안경을 썼다 벗었다 하면서 정면을 바라보면서 무슨 말을 한다. 물론 무성영화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으며 아직 영화는 자막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같은 동작을 반복하면서 앞으로 다가온다. 처음에는 일정한 거리에서 멈출 것으로 생각했는데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더니 화면이 얼굴로 꽉 차는데도 멈추지 않고 더 다가온다. 얼마나 가까이 다가오느냐 하면 화면이 입으로 가득 차서, 아니 차라리 입이 카메라를 먹어버릴 듯이 다가와서 화면이 온통 컴컴해지는 지경에 이른다(black out).
그러더니 (여기서 편집하여 두 번째 쇼트인) 검은 배경 속에 (아마도 입안으로 가정된) 카메라와 촬영기사가 꿀꺽 넘어가고 입안에서 굴러떨어지는 것처럼 보인 다음 (다시 편집하여 카메라가 뒤로 물러나면) 이 남자의 얼굴을 보여주면서(full face close up) 껄껄대고 웃는 모습을 보여주고 끝난다.
<꿀꺽 삼키기>는 이 영화의 연도를 고려하지 않더라도 처음 보고 나면 누구라도 약간 멍해진다. 아마도 제임스 윌리엄슨은 뤼미에르 형제의 <시오타 역으로 들어오는 열차>를 염두에 두었거나 아니면 변형했을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점은 대상이 정면으로 다가온다는 것이다. 뤼미에르의 영화는 영화 속의 대상을 하여튼 영화 안에 머물게 만들면서 기차를 비스듬히 들어 오게 한 다음 비스듬히 내보낸다. 그러면서 영화 속의 대상과 영화를 보는 관객과의 거리를 유지하였다. 그리고 그것은 오랜 시간 동안 고전영화의 규칙 같은 것이 되었다.
하지만 <꿀꺽 삼키기>는 규칙이 세워지기도 전에 그 규칙을 위반하고 있다. 그런 다음 영화를 찍고 있는 카메라맨을 먹어버린다! 이때 <꿀꺽 삼키기>는 명백히 지금 영화를 보고 있는 관객을 영화에 포함하고 있다. 이것이 이 영화를 지금 보아도 어떤 충격을 주는 이유일 것이다. 영화는 그렇게 새로운 순간을 발명해낼 때마다 도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