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돌프 발렌티노(Rudolf Valentino, 1895~1926)가 할리우드 무성영화 시대 첫 번째 스타도 아니었으며, 그렇다고 최고의 인기를 누린 스타도 아니었다. 만일 그렇다면 이 자리에 더글러스 페어뱅크스나 메리 픽포드, 펄 화이트, 테다 바라, 월러스 레이드, 윌리엄 S. 하트, 기쉬 자매, 존 길버트, 클라라 보우, 하여튼 먼저 호명해야 할 정말 많은 이름이 있다. (그리고 나는 그들과 일정 기간 사랑에 빠지곤 했다) 물론 세계 영화사의 순간(들)을 뒤져나가면서 계속해서 이 자리에 스타의 이름을 부를 것이다. 그들은 분명히 위대한 영화 작가들, 시네아스트들, 제작자들, 끝없는 테크놀로지의 발명만큼 이 순간을 만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러면 왜 루돌프 발렌티노가 단지 호명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설명이 필요한 이름이 되었는가. 스크린에 루돌프 발렌티노가 등장해서 탱고를 추는 순간 영화를 보던 여성 관객들 사이에서 기절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 현상을 이미 설명한 사람이 있다. 『적과 흑』(1830), 『파르므의 승원』(1839)을 쓴 프랑스 소설가 스탕달은 1871년 이탈리아 피렌체의 산타크로체 성당을 방문해서 미술품들을 감상하다가 감정적 충만함과 희열을 견디지 못하고 기절할 지경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 감정을 다스리는 데 한 달이나 걸렸다고 한다. 스탕달만 이걸 경험한 것이 아니라, 산타크로체 성당을 방문한 수많은 관광객이 미술품을 본 다음 심장의 두근거림, 정신의 혼미한 상태, 어지러움, 우울증, 현기증, 위경련, 심지어 전신마비를 경험하였다. 그래서 이 증세를 ‘스탕달 신드롬(Stendhal Syndrome)’이라고 부른다. 두 현상이 정확하게 같은 정신적 반응인지는 설명하기 어렵지만 ‘하여튼’ 스크린 앞에서 같은 일이 벌어졌다.
스타라는 자리는 단지 인기가 많은 배우, 만으로는 갈 수 없는 별자리이다. 그 자리에 가려면 배우와 관객 사이에서 마법이 발생해야 한다. 내 말이 아니라 스타, 라는 현상을 처음 주목한 사회학자 에드가 모랭의 지적이다. 이 말에 영감을 얻어 문학평론가 롤랑 바르트는 몇 편의 스타에 관한 글을 썼다. 그러면서 스타를 ‘현대의 신화’를 구성하는 하나의 콤플렉스. 하나의 트라우마, 하나의 현상, 하나의 담론, 하나의 이데올로기라고 불렀다. 내가 여기서 주목하는 단어는 ‘마법’이다. 대중과의 관계를 놓고 장황한 사회학 이론과 정신분석의 개념들로 이 단어 주변을 장식할 수 있지만, 사후약방문처럼 정리되면서 무언가 결정적인 핵심은 매번 놓치고 있다는 의심을 떨칠 수 없다. 단 한 마디로 영화사의 신비로운 순간들. 나는 그걸 AI가 대신할 수 없는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1895년 5월 6일 이탈리아 남부의 작은 마을 카스텔라네타에서 이탈리아인 아버지와 프랑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네 명의 남매 중 셋째로 태어난 루돌프 발렌티노에게 아들만큼 이름이 긴 아버지는 루돌프 피에트로 필리베르토 라파엘로 주그렐미 디 발렌티나 단톤게라(Rudolf Pietro Filiberto Raffaello Guglelmi di Valentina d’Antonguella)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하지만 이 이름을 전부 부르는 사람은 없다. 거의 교육을 받지 못한 발렌티노는 파리에까지 갔지만 빈손으로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런 다음 18살에 뉴욕으로 갔다. 좀 이상한 일이지만 루돌프 발렌티노는 할리우드에서 성공을 거둔 다음에도 이민 온 다른 스타들과 달리 미국 시민권을 신청하지 않고 이탈리아 국적을 유지하였다.
아무 경력이 없는 루돌프 발렌티노는 수많은 직업을 전전했고 매번 해고를 당했다. 그렇긴 하지만 그에게는 특별한 재능이 있었다. 루돌프 발렌티노는 탱고 춤을 잘 추었다. 잘 춘 정도가 아니라 정말 잘 추었다. 어디서 배운 것도 아니었다. 하늘에서 내려준 재능을 지닌 타고난 탱고 댄서였다. 게다가 춤을 추면서 이상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한마디로 루돌프 발렌티노는 요염했고, 그가 탱고를 추면 홀리는 듯한 손끝과 옷이 몸에 꼭 달라붙어서 발가벗은 듯한 육체의 제스처, 그리고 오직 당신만을 위해서 춤을 춘다는 눈빛이 최면을 걸기라도 하는 것처럼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1914년 무렵 조 파니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에서 사교 댄서이자 작곡가이며 사회 정치적인 활동가였던 조앤 소이어의 상대로 주급 50불로 탱고 파트너가 되었다. 루돌프 발렌티노는 명성을 얻었지만, 치정 살인사건에 휘말리면서 뉴욕을 벗어나 할리우드로 새로운 일자리를 알아보기 위해 떠났다.
(좌) <A Sainted Devil>(1924) 중 (우) <묵시록의 4기수> 중 / 사진: IMDb (좌, 우)
하지만 할리우드에 와서 갑자기 명성을 얻은 것은 아니었다. 엑스트라로 현장을 기웃거렸으며, 조연의 조연의 조연에 해당하는 역할을 전전했다. 루돌프 발렌티노를 알아본 건 아직 MGM 영화사로 합병되기 이전 메트로 영화사의 제작 프로듀서이자 시나리오 작가인 준 마티스였다. 준 마티스는 무성영화 시대에 가장 눈 밝을 뿐만 아니라, 예술적 직관과 재능을 인정받은 사람이었다, 장황한 설명 대신 증명할 수 있는 간단한 사례를 들려주겠다. 준 마티스는 에리히 폰 슈트로하임의 <
탐욕>(1924) 원작을 각색하고 대사를 쓴 사람이다. 메트로 영화사는 빈센트 블라스코 이바네즈의 소설 『묵시록의 4기사』(1887) 판권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 소설의 각색을 준 마티스에게 맡겼다. 각색한 다음 렉스 잉그램 감독에게 배역 중에 훌리오 역에 루돌프 발렌티노를 강력하게 추천했다. 렉스 잉그램은 루돌프 발렌티노 캐스팅에 반대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전해지지만, 스튜디오 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모두 알 수는 없다. 소문에 따르면 루돌프 발렌티노가 게이라서 반대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 주장은 전기에도 꾸준히 따라다니는 이야기지만 소문에서 멈추었다. 상황이 복잡하다. 그 당시에 게이라는 소문은 대중들에게 치명적이었고, 아마도 그것이 외부에 알려지면 영화 흥행에 치명적인 결과를 맞을 수도 있는 시대였다. 게다가 렉스 잉그램이 거부감을 가졌다는 말도 있다. 루돌프 발렌티노는 몇 차례 결혼했지만, 그 당시에는 많은 게이가 소문을 진압하기 위해 위장결혼을 했기 때문에 그것으로는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한다. 하지만 렉스 잉그램이 끝까지 반대하기에는 준 마티스가 메트로 영화사에서 강력한 발언권을 가지고 있었다.
촬영 현장은 순조롭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준 마티스가 옳았다. <
묵시록의 4기수>(렉스 잉그램, 1921)는 시사회에서 그리피스의 <
국가의 탄생>(1915) 이후 할리우드 영화의 걸작이라는 평가를 받았으며, 1921년 3월 6일 개봉하자마자 놀라운 성공을 거두었다. 루돌프 발렌티노는 이탈리아인이었는데도 이 영화의 배역 때문에 ‘라틴 러버(Latin Lover)’라는 애칭으로 불렸다. 그리고 이 애칭은 스타의 한 계보를 이루는 용어가 되었다. 스크린에 나타나 바라보면 그 눈길에 홀리듯이 빠져들게 만드는 남자. 그 자신이 하나의 장르인 스타. 더 간단하게 한 마디로 ‘유혹’ 그 자체. 이 용어를 사용해야 하는 스타는 관객이 자발적으로 날 유혹해주세요, 라고 애원하게 만드는 힘을 가졌다고 덧붙인다. 점점 그 힘이 약해지기는 했지만 존 배리모어, 샤를 보이에, 로버트 테일러. 타이론 파워, 제랄 필립, 안토니오 반데라스가 이 계보를 이어갔다. 하지만 아무도 루돌프 발렌티노의 자리를 얻지는 못했다.
단숨에 루돌프 발렌티노가 ‘라틴 러버’의 자리에 올랐지만, 그러나 그런 다음 자신의 이미지를 더 발전시키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비슷한 역할을 반복했다. 하지만 루돌프 발렌티노의 열광적인 팬들은 같은 노래만 부르는데도 지치지 않고 공연장을 찾는 팬들처럼 영화관을 가득 채웠다. 이렇게 말하는 건 망설여지지만 루돌프 발렌티노는 자신의 인기가 몰락하는 걸 보기 전에 세상을 떠났다. 1926년 8월 15일 뉴욕 앰배서더 호텔에서 복막염으로 병원에 실려 갔다. 의사들은 낙관적이었지만 23일 패혈증으로 사망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장례식에 10만 명이 넘는 인파가 몰려들었고, 백여 명의 경찰이 동원되었다. 신문은 사망 소식에 충격을 받은 팬들의 자살 소식을 전했다. 전설은 또 다른 전설을 낳았다. 매년 기일이 되면 애도의 뜻으로 검은 옷을 입고 검은 면사포로 얼굴을 가린 여인이 나타나서 무덤에 장미 한 송이를 놓고 사라진다는 이야기가 전해졌다. 얼마나 유명한 이야기인지 1959년 레프티 프리젤이 ‘검고 긴 면사포(Long black veil)’라는 노래를 불렀다. 이 노래를 조니 캐쉬, 조앤 바에즈가 다시 불렀다. 그런 다음에도 수많은 가수가 루돌프 발렌티노를 자신의 가사에 등장시켰다. 그중에는 밥 딜런, 킹크스, 이기 팝, 데이빗 보위, 프린스, 스키드 로우, 레오 세이어, 퀸, 그리고도 한참 더 있다. 이것이야말로 스타의 이야기가 아니라면 달리 무엇이겠는가.
<Camille>(1921) 중 (사진: “Camille”, IMDb)
정성일(영화감독, 영화평론가) l 매일 영화를 보고 종종 영화 평을 쓰고 가끔 영화를 만들고 때로 영화제 일을 한다.
『임권택이 임권택을 말하다』(2003) 인터뷰 진행,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2010), 『필사의 탐독』(2010) 비평집 집필.
첫 영화 <카페 느와르>(2009) 이후 <천당의 밤과 안개>(2015), <녹차의 중력>(2018), <백두 번째 구름>(2018)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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