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 5월 1일, 레프 쿨레쇼프가 VGIK에서 쿨레쇼프 효과를 강의하다

by.정성일(영화감독, 영화평론가) 2024-03-15조회 5,008
배우 이반 모주힌의 모습을 이용한 쿨레쇼프 효과

세계영화사의 주목할 만한 사건과 개념을 포착하고, 그 의미를 조명합니다.


영화의 이론에 관한 교과서를 읽으면서 모두 알고 있지만, 누구나 의문을 품고 있는 개념들이 있다. 그래서 이 개념은 지식에서 멈추고 영화를 만들면서 외면하는 이론들이 있다. 나는 영화사의 순간들을 뒤져나가면서 차례로 질문을 던져볼 생각이다. 이제 영화사의 순간들이 이론의 입구에 도착했다는 뜻이다. 그 첫 번째 질문을 쿨레쇼프 효과(Kuleshov effect), 라고 부르는 개념에 던져보겠다. 이 효과는 편집의 기술, 혹은 효과, 또는 개념에 속하지만 이 효과가 정말 문법적으로 성립하나요, 라는 질문을 견뎌야 하는 현장에서 연출에 관한 실용적인 관점으로 다시 질문하면 누구라도 대답을 망설인다. 먼저 간단하게 설명하겠다. 대부분 알고 있겠지만 복습하는 기분으로 읽어 주기 바란다. 먼저 어떤 연기도 하지 말고 아무 표정도 짓지 않은 배우의 얼굴을 찍는다. 그런 다음 이 쇼트를 동일한 세 개의 카피본으로 만든다. 쉽게 설명하기 위해 이 카피본을 A라고 부르겠다. 그런 다음 빵을 찍은 쇼트를 1, 칼을 찍은 쇼트를 2, 어린 아기를 찍은 쇼트를 3, 이라고 부르겠다. 이제 1 + A를 하면 A의 쇼트에서 배우의 얼굴에 배고픔을 보게 되고, 2 + A를 하면 A 쇼트의 배우 얼굴에서 두려움을, 그리고 3 + A를 하면 A 쇼트 배우 얼굴에서 자애로움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이 설명의 이론적 근거는 변증법적 종합화에 따른 세 가지 특징, 모든 것은 상호작용 법칙에 따라 연관되어 있으며, 모든 것은 서로 다른 대립물 사이에서 변화하며, 모든 것은 질적으로 변화한다, 는 도그마에 따른 것이다. 

물론 헤겔은 그렇게 단순하게 설명한 적이 없으며, 마르크스는 그렇게 도식적으로 설명한 적이 없으며, 레닌은 그렇게 교시를 내린 적이 없다. 하지만 이 실험은 볼셰비키 1917년 11월 혁명이 성공으로 끝나고 급하게 유물변증법을 공부한 다음 이루어진 것이라는 점을 먼저 생각해 주기 바란다. 레프 블라디미로비치 쿨레쇼프는 이미 1918년경에 이와 유사한 실험을 했다. 이 ‘아이디어’를 처음 끌어낸 것은 쿨레쇼프가 데이비드 W. 그리피스의 <국가의 탄생>(데이비드 W. 그리피스, 1915)을 보고 난 다음이다. 그런 다음 변증법에 근거하여 정식화시켰다. 그는 영화의 원리를 설명하면서 이 효과를 빌려 연극과 분리해내서 당대의 배우이자 연극연출가였던 스타니슬랍스키의 ‘메소드 액팅’을 영화에서 부정하였다. 이 실험을 하면서 배우 이반 모주힌을 ‘모델’로 사용하였다. 쿨레쇼프는 다른 실험도 했다. 전혀 다른 장소에서 찍은 거리의 쇼트들을 방향을 맞추어서 연달아 편집하면 영화에서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 지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것을 ‘창조적 지리학’이라고 불렀으며, 포괄적 의미에서 이 편집 방법을 ‘쿨레쇼프 효과’에 포함시키기도 한다. 이 방법은 텔레비전 방송국 드라마, 혹은 외부 촬영과 스튜디오 촬영을 할 때 사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외부 장소 촬영에서 스튜디오로 이동할 때 정말 동일한 장소로 ‘속는지’, 아니면 만드는 쪽과 보는 쪽이 서로 양해하면서 마치 협상하듯이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논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수많은 트릭 촬영 기술들과 토키 영화 이후 사운드 브릿지 기술이 발명되었다)


<국가의 탄생(The Birth of a Nation)>(데이비드 W. 그리피스, 1915) 중
 
1920년 5월 1일 레프 쿨레쇼프는 국립영화학교 VGIK의 교사로 부임하였다. 그리고 이 실험을 교실에서 소개했으며, 제자들은 이 실험을 바탕으로 각자의 몽타주 이론을 구상하게 되었다. 이 교실에는 프세볼로트 푸도프킨, 보리스 바르네, 미하일 롬, 세르게이 코마로프, 블라디미르 포겔도 있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쿨레쇼프 효과의 설명 과정은 푸도프킨이 자신의 강의에서 사용한 것이다. 하지만 푸도프킨은 이 효과의 발명자가 자신의 스승 쿨레쇼프라는 것을 분명히 했다. 

쿨레쇼프 효과는 국경을 넘어서서 영화문법에서 하나의 교리가 되었다. 그중에서 쿨레쇼프 효과를 진심으로 믿었던 사람은 알프레드 히치콕이었다. 그는 트뤼포와 긴 인터뷰를 하면서 <이창>(알프레드 히치콕, 1954)에서 제임스 스튜어트의 얼굴과 그가 훔쳐보는 맞은편 아파트 창문 너머의 풍경을 쿨레쇼프 효과에 의지해서 어떻게 연결 시켰는지 설명했다. 푸도프킨의 설명과 디테일에서 다소 다르지만 그건 요점이 아니다. 히치콕은 1964년에 한 번 더 쿨레쇼프 효과를 다소 다르게 설명했다. 먼저 자신의 두 개의 얼굴, 하나는 무언가 못마땅한 얼굴을 A라고 부르고, 다른 하나인 미소 짓는 얼굴을 B라고 부르겠다. 그런 다음 A와 B 사이에 한 번은 공원에 젊은 여자가 어린 아기와 함께 있는 장면 1을, 다른 한 번은 같은 공원 같은 자리에 같은 여자가 비키니를 입고 일광욕을 하는 장면 2를 끼워 넣었다. 그러면 A – 1 – B에서 B의 히치콕의 미소는 자애로운 신사로 보이지만 A – 2 – B에서 동일한 B의 히치콕의 쇼트에서 관객은 음흉한 노인의 미소를 본다는 것이다. 히치콕은 이 효과를 “순수하게 영화적인 것(pure cinematics)”이라고 불렀다. 히치콕이 종종 배우를 가축과 같은 것이라고 말했을 때 이 과격한 결론은 여기서 온 것처럼 보인다. 
 
<이창(Rear Window)>(알프레드 히치콕, 1954) 중

히치콕이 설명한 쿨레쇼프 효과

하지만 많은 영화감독, 교실의 학자들, 그리고 비평가들은 쿨레쇼프 효과가 정말 스크린에서 벌어지는지에 대해서 의심하였다. 1992년에 이르러 행동 심리학자가 조사방법론에 참여한 실험이 행해졌다. 스티븐 프린스와 웨인 E. 헨슬리는 137명의 실험 대상자를 상대로 쿨레쇼프 효과에 관해 설문지를 나눠주고 실행해보았다. 결과적으로 이 효과에 대해서 신뢰할 수 없다는 답을 얻었다. 하지만 이 실험은 단 한 번 이루어졌으며, 게다가 데이터 처리방식에서 문제가 있다는 이의 제기를 받게 되었다. 2006년 딘 몹스가 주도하는 실험이 다시 실행되었다. 이번에는 슬픈 장면 다음에 아무 표정도 없는 배우의 얼굴에서 실험 대상자들은 슬픔을 보았고, 기쁜 장면 다음에 동일한 배우의 얼굴에서 기쁨을 보았다. 2016년에 다니엘 배러티는 좀 더 복잡하게 실험 상황을 설계하였다. 행복한 장면, 슬픈 장면, 배고픈 장면, 무서운 장면, 성적인 장면에 역시 아무 표정이 없는 동일한 배우의 얼굴을 차례로 연결시켰다. 그 결과 실험 대상자들은 쿨레쇼프 효과가 설명한 방식으로 반응하였다. 여기까지 읽은 다음 아, 쿨레쇼프 효과는 증명되었군, 이라고 결론 내리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내가 쿨레쇼프 효과를 영화에서 보면서 매번 마주치는 것은 어떤 영화의 어떤 장면에서는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게 다른 영화의 다른 장면에서는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쿨레쇼프 효과를 믿는다. 하지만 항상 믿지는 않는다. 우리는 이 질문을 실험에 맡기는 대신 매번 서로 다른 영화의 서로 다른 장면에 질문해야 할 것이다. 쿨레쇼프 효과는 분명히 존재하는 영화의 마법이다.



정성일(영화감독, 영화평론가) l 매일 영화를 보고 종종 영화 평을 쓰고 가끔 영화를 만들고 때로 영화제 일을 한다.
임권택이 임권택을 말하다(2003) 인터뷰 진행,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2010), 『필사의 탐독(2010)  비평집 집필.
첫 영화 <카페 느와르>(2009) 이후 <천당의 밤과 안개>(2015), <녹차의 중력>(2018), <백두 번째 구름>(2018)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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