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60년대 한국영화계의 비사를 듣다 영화인 문금순

by.공영민(영화사 연구자) 2016-10-27조회 1,106

역사가 기록하지 못한 이야기
구술사의 이점 중 하나는 영화제작 현장의 이면을 들려주는 다양한 인물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크레디트에 기록되어 있지 않은 인물들은 문서 자료에서는 확인하기 힘든 여러 가지 뒷이야기와 현장 바깥의 이야기까지 풀어내는 경우가 많아 작품과 시대 상황을 보는 관점을 더욱 풍부하게 해준다. 「2014년 한국영화사 구술채록연구 ‘주제사’」의 문금순 편은 이러한 이점을 잘 보여준다. 공식 기록에서는 찾아볼 수 없지만 문금순 선생은 1960년대 <김약국의 딸들>(유현목, 1963), <맨발의 청춘>(김기덕, 1964), <남과 북>(김기덕, 1965), <대괴수 용가리>(김기덕, 1967) 등의 화제작을 제작한 극동흥업주식회사의 회계와 운영을 담당했다. 극동흥업의 살림살이를 도맡아 한 이유는 구술자가 영화사 대표인 차태진의 부인이기도 했지만 1950년대 임화수가 이끌었던 한국연예주식회사의 회계를 담당한 이력 때문이기도 했다. 이러한 이유로 문금순 선생은 이승만 정권 시절 한국영화계의 권력자이던 임화수의 성장과 몰락을 생생히 목격했다. 결혼 후에는 차태진 사장의 ‘부인’ 혹은 ‘아줌마’가 되어 자신이 직접 작명한 극동흥업주식회사가 1960년대 한국영화계를 대표하는 영화사 중 하나로 성장하는 과정부터 1970년대 초반 연이은 부도로 문을 닫는 과정까지를 고스란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두 거목의 성장과 몰락을 지켜보다
극동흥업은 한국연예의 주축 인력이 중심이 되어 설립한 영화사이기에 문금순 선생의 구술은 두 회사를 엮어 구성한 일종의 소사(小史)라 할 수 있다. ‘주제사’로 진행된 구술이기 때문에 ‘합작영화’가 중심이 된다는 한계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금순 선생의 구술은 한국연예주식회사에서 극동흥업주식회사로 이어지는 이야기 중간중간 1950~60년대 한국영화사의 굵직한 주제와 사건이 등장하는 흥미로운 구술이다. 한국연예주식회사와 관련한 구술은 임화수 사장과 한・홍 합작영화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1958년의 ‘국산영화제작장려 및 영화오락순화를 위한 보상특혜요강 정책’, <독립협회와 청년 리승만>(신상옥, 1959), <홀쭉이 뚱뚱이 논산 훈련소에 가다>(김화랑, 1959)의 뒷이야기에서는 영화인들과 임화수, 그리고 ‘할아버지’로 지칭되는 이승만 대통령의 관계가 드러난다. <이국정원>(전창근・도광계・와카스기 미쓰오, 1957)을 비롯한 합작영화의 에피소드에서는 한국연예의 자금원 중 하나인 ‘동대문시장 상인연합회 칠형제’와 명동의 달러상인 ‘○○엄마’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4・19 이후의 상황을 회고하는 부분에서는 치안국의 오재도 검사 앞에서 한국연예의 회계에 대해 진술하고 혁명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하는 등 임화수와 한국연예주식회사로 인해 겪은 고초가 가감 없이 드러난다. 극동흥업주식회사와 관련한 구술은 차태진 사장과 전속 감독 김기덕, 그리고 일본영화계와의 교류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문금순 선생의 시각으로 보자면 차태진 사장은 젊은 관객들의 시대적 요구에 맞춰 일본영화를 적극적으로 참조하고자 하는 열의를 가진 사람이었다. 이에 따라 극동흥업 성장의 밑바탕이 된 영화이자 1960년대 청춘영화의 대표작인 <가정교사>(김기덕, 1963)와 <맨발의 청춘>이 제작될 수 있었다. 이 영화들의 성공으로 일본영화와의 합작에 대한 열망이 커졌고 이는 <대괴수 용가리>에서 일본 영화인들과의 기술 교류 혹은 우회적인 기술 합작으로 이어졌다. 일본어가 가능한 친정어머니까지 동원되어 뒷바라지한 <대괴수 용가리>는 끝내는 실패한 프로젝트가 되어 극동흥업이 쇠락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문금순 선생은 뒤떨어진 기술이 조금은 발전하는 교육 프로그램 역할을 했다고 담담히 평가한다. 일본과의 기술 교류 이외에도 임화수의 몰락 후 사업 수단의 보루로 물려받은 한국연예의 전화번호가 지방 흥행사들에게 보증서로 작용해 극동흥업이 자리 잡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는 에피소드나 극동흥업이 심상복 서커스단과 권투 선수 강세철의 흥행사로 참여한 에피소드는 문금순 선생의 구술이었기에 들을 수 있는 흥미로운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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