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어]영화음악은 어떻게 영화와 이별할 수 있을까 오리지널 스코어, ‘영화적 경험’을 넘어

by.차우진(대중음악평론가) 2016-06-01조회 1,599
일주일에 3편 정도의 영화를 본다. 한 달이면 대략 10편 이상. 그중 뇌리에 각인되는 작품은 몇 편밖에 없다. 다들 그럴 것이다. 어떤 영화는 스치듯 사라지고 어떤 영화는 뇌리에 콱 박힌다. 충격적으로 아름다운 영상, 마음을 흔드는 음악, 인상적인 대사, 내 것인 양 절절한 배우들의 표정 같은 것들. 그중에서도 음악은, 영화적 경험을 극대화하는 중요한 요소다.

오리지널 스코어란 무엇인가
영화음악, 흔히 ‘사운드트랙’이라는 말은 사전적 의미로 ‘영화 필름 양끝의 좁은 띠 부분’을 일컫는다. 무성영화 시절에 영화음악은 영상에 흐르는 배경음악 정도로만 사용되었는데, 영화음악의 시초는 영화의 역사와 동일하다. 1895년 뤼미에르 형제의 영화에 음악은 녹음되지 않았지만, 영화음악은 존재했다. 스크린 옆에서 피아니스트가 영상에 맞춰 반주 음악을 연주한 것이다. 이것이 영화의, 또한 영화음악의 시초였다.

그리고 1927년 <재즈 싱어 The Jazz Singer>를 시작으로 토키(talkie), 즉 ‘소리가 들리는 영화’의 시대가 열린다. 고전 디즈니 만화영화나 찰리 채플린의 영화에 등장한 영화음악은 주인공의 행동에 맞춰 음악이 그 상태를 묘사하는 방식이었다. 발레와 서커스에 흔히 등장하는 스타일이라고 보면 되는데, 등장인물의 감정을 증폭시키는 효과를 낸다. 이것을 ‘언더 스코어링(Under Scoring)’ 혹은 ‘미키 마우징(Mickey Mousing)’이라 한다.

이와 반대로 영화 속에서 좀 더 과장된 소리로 들리게 하는 방법은 ‘오버 스코어링(Over Scoring)’이다. 극적인 장면을 연출하는 데 사용된다. 그리고 이것을 통틀어 ‘스코어’라고 하는데, 흔히 우리가 ‘오리지널 스코어’라고 하는 것은 영화에 특화되어 작곡된 음악을 말한다. 그러므로 사운드트랙은 단지 영화에 삽입된 음악만 뜻하는 건 아니다. 음악 외에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의 대사나 특정 장면의 소음 등을 일컫는 광범위한 용어다. 음악에 한정하자면 영화와 어울리는 기존의 곡을 영화에 삽입하는 경우를 ‘삽입곡’, 작곡가가 영화의 분위기에 맞춰 만든 창작곡을 ‘스코어’라 한다.

영화의 기술적 발전과 영화음악의 확장
영화음악은 영화의 기술적 발전과 밀접한 장르이기도 하다. <재즈 싱어> 이후에 영화음악은 스테레오 사운드 시대로 넘어갔다. 여러 개의 마이크로폰으로 여러 개의 사운드트랙을 녹음하는 기술인데, 1930년대 후반에 개봉된 <오즈의 마법사 The Wizard of Oz>(1939)가 대표적인 작품으로 기록되어 있다. 1940년대에는 3차원 입체음향이 시도되기도 했는데, 디즈니의 <판타지아 Fantasia>(1940)가 대표적인 작품이다. 세 개의 스피커 중 중앙에서 대사가 나오면 양쪽에서 음향과 음악이 나오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오리지널 스코어의 개념은 정립되지 않았다. 영화에 사용된 음악은 주로 유명한 고전음악이나 미키 마우징이 대부분이었고 창작곡 작곡가들이 영화에 관심을 기울이기엔 경력이나 산업적인 면에서 상당한 모험이었다.

하지만 1950년대가 되자 녹음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할리우드를 거점으로 영화 산업이 정점에 다다랐다. 기술적으로는 ‘들리는 방식’이 일반적인 음악과 달라지면서 작곡에서 녹음까지 전체를 고려한 작업 방식이 필요해졌는데, 이즈음부터 영화는 브로드웨이 뮤지컬과 결합하며 영화음악의 전성기를 열었고, 영화음악만을 전문으로 하는 작곡가들 또한 등장하기 시작했다. 푸치니, 조지 거슈윈을 비롯해 <사운드 오브 뮤직 The Sound of Music>(1965), <남태평양 South Pacific>(1958), <왕과 나 The King and I>(1956), <오클라호마 Oklahoma!>(1955) 같은 전설적인 작품을 만든 리처드 로저스와 오스카 해머스타인 2세 등이 영화음악의 황금기를 장식했다. 1970년대에는 사운드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해 DTS 같은 시스템이 개발되기도 했다. 유니버설과 함께 DTS를 개발한 스티븐 스필버그는 그즈음부터 사운드의 중요성을 강조했는데, <죠스 Jaws>(1975)를 통해 증명한 대로 오리지널 스코어가 영화의 감상을 보조하는 역할을 넘어 스토리텔링을 강화하고 관객의 몰입도를 증폭시킨다고 본 것이다.

한국 영화음악 시장의 성장
그렇다면 한국의 상황은 어땠을까. <춘향전>(1935)에 등장한 홍난파의 음악으로부터 시작된 유성영화 사운드트랙의 역사는 1939년 <처(妻)의 모습>이란 영화에 등장한 작곡가 조두남의 영화음악으로 본격화되었다. 한국영화 사상 최초의 오리지널 스코어로 기록된 이 작품 이후 1950년대 말부터 1960년대에 이르기까지 상영된 한국영화 대다수에는 독립된 주제곡이 등장했다.

영화음악계에 클래식 작곡가들이 대거 유입되면서 전문 영화음악가도 등장했는데 재즈, 팝, 샹송, 탱고, 룸바를 아우르는 ‘경음악’이 영화음악에 등장한 것도 그즈음이었다. <돌아오지 않는 해병>(1963), <맨발의 청춘>(1964), 또 최초의 기획앨범으로 불리는 <별들의 고향>(1974)과 <바보들의 행진>(1975), 재즈풍의 <영자의 전성시대>(1975)와 <겨울여자>(1977) 등이 대표작이다.

<바보선언>(1983)의 이종구, <고래사냥>(1984)의 김수철, <굿모닝! 대통령>(1989)의 오태호, 장필순, 박정운 그리고 <비오는 날 수채화>(1989)의 강인원, 김현식, 권인하 같은 이들은 1980년대까지 이어진 영화와 대중음악의 타이인(tie-in) 전략을 계승하는 대표 주자들이다. 1990년대 이후에는 TV 드라마의 사운드트랙도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여명의 눈동자>(1991), <모래시계>(1995), <카이스트>(1999) 같은 작품이 드라마와 음악의 밀착형 성공 모델을 만들었고 영화계에서는 <은행나무 침대>(1995)와 <비트>(1997)가 새로운 경향을 제시하는 동시에 국제적인 저작권 논쟁을 촉발하기도 했다. <은행나무 침대>와 <쉬리>(1999)의 이동준의 음악 역시 100만 장 판매로 스코어 앨범의 시장성을 확인시키기도 했다.

영화음악, 경계를 넘다
2000년 이후에는 한국의 사운드트랙 시장이 협소해지면서 1990년대를 대표한 최경식, 송병준, 이동준의 입지도 좁아졌다. 영화음악은 흘러간 팝송으로 대체되고 있었는데, 이런 상황에서 조성우가 설립한 영화음악 전문 프로덕션 ‘M&F’와 장영규, 방준석, 달파란, 이병훈이 참여한 ‘복숭아 프로젝트’, 그리고 기타리스트 이병우가 한동안 영화음악계를 지배하다시피 한 점은 시사적이다. 대중음악과 영화음악의 경계가 흐릿해지는 어떤 경향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2010년을 전후로 등장한 김태성과 이지수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김태성은 <크로싱>(2008),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2010), <최종병기 활>(2011), <퍼펙트 게임>(2011), <코리아>(2012), <감기>(2013), <명량>(2014), <검은 사제들>(2015), <그날의 분위기>(2015)와 <명탐정 홍길동>(2016)으로 이어지는 경력을 선보이고, 이지수는 <겨울연가>(2002), <여름향기>(2003), <봄의 왈츠>(2006) 같은 드라마를 비롯해 <실미도>(2003)와 <올드보이>(2003)의 ‘우진의 테마’, <마당을 나온 암탉>(2011)과 <건축학개론>(2012) 등의 필모그래피를 보유했다. 김태성이 소리의 공간감에 주목하는 편이라면 이지수는 내러티브에 천착하는 인상인데, 비교적 선명하게 대비되는 두 사람의 특징이 한국 영화음악의 비전을 바라보게 하는 것이다. 두 사람 모두 오리지널 스코어가 영화적 경험을 극대화하는 것을 넘어 존재할 수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사실 오리지널 스코어는 영화의 배경음악과 독립된 음악 작품 사이에서 엉거주춤하는 인상도 있다. 상황에 대한 묘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스코어는 때때로 영상과 무관하게 독립된 음악으로서의 가치를 내뿜기도 한다. 게다가 21세기의 영화는 좀 더 복합적이고 감각적인 경험을 지향한다. 어디서든 영상을 보는 시대에 사람들이 극장에 가야 할 이유를 제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비주얼과 사운드가 더 중요해지는데, 디지털 테크놀로지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 같은 기술이 인간의 경험을 본질적으로 바꾸는 21세기에 영화음악은 더 많은 형식적 실험과 제작 과정의 변혁을 거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영화음악에 대해서는 더 근본적인 질문이 필요하지 않을까. 이를테면 이런 것. 영화음악은 어떻게 영화와 이별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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