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필 안내서]서문: 시네필의 세계로 들어서고 싶은 당신에게

by.정성일(영화감독, 영화평론가) 2016-04-06조회 64,101
가장 먼저 해야 할 말. 당신이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특집은 오로지 시네필의 세계에 ‘入門’하기 위한 분들을 위한 것이다. 말 그대로 ‘문에 들어서기’. 무엇보다 여기에 추천한 영화들과 책은 친절한 목록들이다. 그러니 먼저 세 부류의 사람들은 그냥 건너뛰시기 바란다. 첫째, 이 목록은 영화를 학문적으로 공부하는 아카데미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둘째, 영화를 만들고자 하는 초보들에게도 별로 도움이 안 될 것이다. 그런 결심을 한 분들이 있어야 할 곳은 극장이나 안방 모니터 앞이 아니라 길거리이다. 거기서 카메라를 들고 있어야 한다. 셋째, ‘덕후’들도 피하시기 바란다. 아마 당신들은 오래전에 이 단계를 지나쳤을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 특집은 입문자들을 위한 것이다.

누구든지 처음 시작할 때는 막막한 법이다. 예를 들 수 있다. 고전음악을 듣기 위해서 찾아간 음반 코너에서 길을 잃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 유명한 베토벤 교향곡 5번 음반을 살 때조차 어마어마한 레퍼토리 앞에서 질리게 된다. 심지어 고전음악을 한참 듣다가 갑자기 방향을 바꿔 하드 밥 재즈를 듣겠다고 결심했을 때 문득 자신이 오래전에 겪었던, 처음 시작할 때의 그 자리로 되돌아왔음을 깨달을 것이다. 문학을 알고 싶을 때 어디서부터 읽어나가야 할까. 제일 바보는 그때 문학전집을 사는 사람들이다. 철학을 배우고 싶을 때 플라톤에서부터 읽어나가는 것이 가장 좋은 시작이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다. 언젠가는 읽어야겠지만 거기서 시작하는 것은 좋은 선택이 아니다.

물론 가장 좋은 방법은 무작정 시작하고 참담하게 몇 번이고 실패해보는 것이다. 그러면서 하나씩 자신의 취향을 찾아가는 것이다. 다만 한 가지 문제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기서는 다소 시간을 절약하면서 요령 있게 시네필의 세계로 들어서기 위한 당신을 위해 약간의 도움을 드리고자 애써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목록을 제시하려고 한다. 물론 내가 진정 바라는 것은 이 목록을 훑어보면서 반발감을 갖고 스스로 당신 자신만의 목록을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그때 당신은 문득 더 이상 ‘入門’이 필요치 않은 세계로 들어섰음을 느끼게 될 것이다. 적어도 그날까지는 「영화천국」 이번 호를 늘 곁에 두고 차례로 목록을 지워나가주시기 바란다. 언젠가 모두 지웠을 때 당신은 호기롭게 웃으면서 이제부터는 내 목록을 써나갈 거야, 라고 호언장담할 것이다. 나도 그 목록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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